고객님, 저희도 사람입니다…콜센터는 언제 좋은 일터가 될까
“감정노동의 가치는 알아주지 않더라도, 사람이 일할 수 있는 환경은 원청이 만들어줘야 하는 것 아닙니까?”
국세청 민간위탁 콜센터에서 일하는 이현정씨는 일을 할 때마다 머리 위가 불안하다. 천장에서는 최근 장마철에도 비가 샜다. 센터에 있는 카펫은 오래됐지만 비싼 청소비용 때문에 청소가 잘 되지 않는다. 이씨는 “만성 기침에 고통받는 상담사들도 있다”며 “국세청은 임시방편으로 소형 공기청정기만 2~3대 설치해주고 개선해줬다고 여기고 있는데 어이가 없다”고 했다.
콜센터 노동자들이 저임금과 고용불안, 부족한 휴식, 과도한 콜수 압박, 고객의 폭언·욕설, 신체·정신적 건강 이상 등 ‘총체적 난국’에 처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대부분 대기업·공공기관의 업무를 위탁받아 수행하는데, 간접고용 구조 탓에 노동조건 개선은 계속 제자리걸음이다.
민주노총은 26일 이 같은 내용을 담은 ‘2023년 콜센터 노동자 건강권 실태조사 보고서’를 발표했다. 민주노총은 4월24일부터 5월29일까지 서울·경기·대전·부산 등의 콜센터 밀집지역에서 콜센터 노동자 1278명을 대상으로 실태조사를 벌였다. 민주노총·한국노총 등 노조 조합원이 660명, 노조 비조합원이 618명이었다. 응답자의 93.0%는 여성이었다.
콜센터 노동자들의 평균 월 소득(세후)은 220만6000원으로 최저임금을 간신히 넘겼다. 여성(219만8000원)이 남성(233만9000원)보다 약 15만원 적었다. 상여를 받는다는 응답은 22.0%였다. 65.7%는 “회사가 노사 교섭 없이 일방적으로 임금을 결정한다”고 답했다.
콜센터 노동자 44.9%는 계약직으로 일하고 있었다. 계약직의 74.4%는 1년 단위로 계약을 맺었다. 한인임 정책연구소 이음 이사장은 “상시 지속업무에 1년 단위 계약이 발생하는 노동시장”이라며 “극도의 고용불안을 낳을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휴식권은 제대로 보장되지 않았다. 점심시간 포함 실제 휴식시간이 ‘1시간 미만’이라는 응답이 39.4%에 달했다. 11.5%는 30분도 쉬지 못했다. ‘아파도 병가나 연차를 내지 못한 경험이 있다’는 응답은 한국 전체 노동자 평균인 17.2%의 2배가 넘는 39.2%로 나타났다. 아파도 쉬지 못한 이유를 물으니 ‘관리자에게 밉보일까 봐’가 26.7%로 가장 높았다. ‘소득이 줄어들까 봐’가 25.2%, ‘동료에게 미안해서’가 24.1%, ‘회사가 병가·휴가를 못 쓰게 해서’가 13.1%로 뒤를 이었다.
쉬지도 못하는데 업무 압박은 심각했다. 응답자들은 하루 평균 82.7콜을 처리했다. 54.6%는 ‘목표콜수제’를 운영하고 있었다. ‘하루에 처리해야 할 콜수가 벅차다’는 응답은 58.9%로 나타났고, ‘대기시간이 길어지면 불안하다’는 응답도 59.3%에 달했다.
열악한 환경은 건강 악화로 이어졌다. 지난해 목·어깨·팔 등 상지 통증을 경험했다는 비율은 69.7%로 한국 노동자 평균인 24.0%보다 높았다. 허리 통증 경험 비율은 66.6%로 한국 노동자 평균인 11.5%의 6배 수준이었다. 만성피로는 67.5%. 방광염은 31.9%, 성대결절은 26.7%, 우울·불안장애 등 정신과 질환은 31.0%가 경험했다. 하지만 법정 산업안전보건교육(월 2시간 또는 분기 6시간)을 채운 경우는 3%뿐이었다. 사측이 조사해 노동자에게 알려줘야 하는 ‘근골격계질환 유해요인조사’ 결과를 공지받지 못했다는 응답은 80.1%에 달했다.
감정노동의 부담도 상당하다. 주1회 이상 인격무시를 당했다는 응답은 36.7%, 주 1회 이상 언어폭력을 당했다는 응답은 33.9%였다. 업무 외적 요구는 30.4%, 악의적 컴플레인은 22.0%, 위협·협박은 18.7%, 성희롱 등 성폭력은 6.1% 수준이었다. 하지만 63.5%는 ‘고객 전화 유입 시 노동자 보호 안내 멘트가 없다’고 했고, 53.8%는 ‘고객 폭력에 노출됐을 때 전화를 끊을 권리가 보장되지 않는다’고 했다. 66.3%는 고객의 폭력에 노출된 뒤 최소 30분의 휴게시간도 보장받지 못한다고 했다.
노동자 10명 중 9명이 여성인데 모성보호 조치는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 ‘자유로운 육아휴직이 불가능하다’는 응답은 32.7%, ‘자유로운 임신이 불가능하다’는 응답은 23.9%로 나타났다. ‘출산후 복귀자의 수유시간 확보가 불가능하다’는 응답은 53.4%, ‘출산 후 복귀자의 노동시간 단축이 불가능하다’는 응답은 40.4%를 기록했다.
콜센터 노동자들은 주요 스트레스 요인(다중응답)으로 ‘부족한 임금’(74.9%), ‘업무실수 부담’(51.4%), ‘고객 컴플레인’(51.1%), ‘과도한 업무량’(45.2%) 등을 꼽았다.
민주노총은 “50만 명으로 추정되는 우리 사회 콜센터 노동자의 사회적 중요성은 날로 높아가고 있으나 간접고용, 열악한 처우는 개선되지 않고 있다”며 “전국 콜센터 노동자의 실태를 파악하고 분석해 개선 요구에 나설 것”이라고 했다.
조해람 기자 lennon@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김문기의 추석 선물’ ‘딸에게 보낸 동영상’···이재명 ‘선거법 위반’ 판결문
- 조국 “민주주의 논쟁에 허위 있을 수도···정치생명 끊을 일인가”
- 최현욱, 키덜트 소품 자랑하다 ‘전라노출’···빛삭했으나 확산
- 사라진 돌잔치 대신인가?…‘젠더리빌’ 파티 유행
- “민심의 법정서 이재명은 무죄”···민주당 연석회의 열고 비상행동 나서
- 40대부터 매일 160분 걷는 데 투자하면···수명은 얼마나 늘어날까?
- 드라마인가, 공연인가…안방의 눈과 귀 사로잡은 ‘정년이’
- 중학생 시절 축구부 후배 다치게 했다가···성인 돼 형사처벌
- 은반 위 울려퍼진 섬뜩한 “무궁화꽃이~”···‘오징어게임’ 피겨 연기로 그랑프리 쇼트 2위
- ‘신의 인플루언서’ MZ세대 최초의 성인···유해 일부 한국에 기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