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변호사 살인사건' 공모 무죄 전 조폭 "마녀사냥 당해"
"공익을 빙자해 마녀사냥해서는 안 된다. 저 같은 사람이 더는 안 나왔으면 좋겠다."
26일 제주의 대표적인 장기미제 사건인 '이승용 변호사 살인사건' 공범으로 기소돼 2년 가까이 재판을 받아온 김모(56)씨가 한 말이다. 지난 1월 대법원에서 무죄 취지로 파기 환송한 데 이어 이날 파기환송심 선고 공판에서도 무죄를 받자, 김씨는 기자들과 만나 그간의 힘들었던 점을 토로했다.
"원치 않았던 방송, 법적 조치 고민"
이날 파기환송심 무죄 선고 직후 김씨는 제주지방법원 인근 카페에서 기자들과 만나 어렵게 얘기를 꺼냈다. 김씨는 처음에는 인터뷰를 거절했으나 기자들의 거듭된 요청에 취재에 응하게 됐다.
김씨는 캄보디아에 머물렀을 때 이뤄졌던 모 방송사 취재에 대해서 얘기했다. 해당 방송사는 김씨 진술과 전문가 의견을 토대로 '이승용 변호사 살인사건'과 관련해 3차례 보도했다. 김씨는 방송 나가는 것을 원치 않았는데도 방송됐고 이 때문에 수사까지 받으며 명예가 훼손됐다고 주장했다.
김씨는 "언론은 수사기관이 아니다. 제보자면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는 게 아닌가. 경찰에 자료를 넘겨가지고 자문 구하고 '내가 범인이다'라고 단정 지었다. (수사기관도) 깊이 수사 안 하고 인터뷰 내용대로 재판에 넘겼다. 언론 보도 이후 수사까지 마녀사냥을 당한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방송 이후 경찰 수사를 받는 과정에서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아버지는 쓰러져서 반신불수 상태가 됐다고 토로했다. 김씨 자신 역시 경제 활동도 못하고 육체와 정신이 피폐해졌다고 말했다.
김씨는 "제 잘못이라면 첫 방송사 인터뷰 때 제가 들은 얘기를 과장돼서 말한 것뿐이다. 재판받을 때는 이러다 정말 큰일 나겠다 싶어서 진실을 말한 것이다. 당시 인터뷰에 응한 것은 제가 들은 사건 내용이 유가족에게 전달되기를 바랐던 것이다. 유족의 한이 풀어지길 바랐을 뿐"이라고 했다.
김씨는 마지막으로 "오늘 인터뷰에 응한 이유는 그간 나왔던 잘못된 내용을 바로잡고 싶어서다. 검찰과 경찰이 수사를 제대로 안 했다. 다시는 저 같은 피해자가 나오지 않기를 바란다. 제 인터뷰를 보도한 방송국을 상대로 명예훼손과 위자료 청구소송 등 법적 조치를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장기미제 '이승용 변호사 살인사건'은
'이승용 변호사 살인사건'은 제주의 대표적인 장기미제 사건이다. 이승용 변호사(당시 44세)는 지난 1999년 11월 5일 오전 6시 48분쯤 제주시 삼도2동 제주북초등학교 인근에 세워진 자신의 쏘나타 승용차량에서 흉기에 수차례 찔려 숨진 채 발견됐다. 이 중 하나는 흉골을 관통해 심장이 찔렸다.
당시 경찰은 수사본부를 설치하고 7개 팀 40여 명으로 이뤄진 전담 수사팀을 꾸려 수사에 나섰지만, 결국 범인을 잡지 못했다. 1년 뒤 수사본부도 해체되며 수십 년간 미제 사건으로 남았다.
하지만 지난 2020년 6월 방영된 모 방송사 시사프로그램에서 이 사건을 다루며 재수사가 이뤄졌다. 당시 이 방송에서 김씨가 도내 한 조직폭력배 두목인 백모씨(2008년 사망)로부터 이승용 변호사 살해 지시를 받고 동료인 손모씨(2014년 사망)에게 시켜 살해했다고 인터뷰한 내용이 나온다.
인터뷰 내용을 토대로 수사를 벌인 경찰은 김씨를 살인교사 혐의를 적용해 검찰에 송치했으나, 검찰은 범행에서 피의자의 역할, 공범과의 관계 등을 고려해 김씨를 살인 공범으로 기소했다.
공소장에는 김씨는 조직폭력배로 활동하던 지난 1999년 8월과 9월 사이 불상자의 지시를 받아 동료 손씨와 구체적인 범행방법을 상의하고 이 변호사를 미행해 동선을 파악했다. 이후 손씨가 11월 5일 새벽 제주북초등학교 인근 거리에서 이 변호사를 흉기로 찔러 살해한 것으로 나왔다.
김씨가 범행에 사용된 것과 비슷한 모양의 흉기를 직접 그려서 보여주고, 이 변호사의 이동 동선과 범행 장소인 골목의 가로등이 꺼진 구체적인 정황까지 알고 있다며 검찰은 주장했다.
1심 '무죄'→2심 '유죄'→3심 '무죄'
지난해 2월 1심은 "피고인이 방송에서 밝힌 제보 진술 외에는 별다른 증거가 없고, 제출된 증거 중 상당 부분은 가능성과 추정일 뿐이다. 범죄의 증명이 없는 경우에 해당한다"며 김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다만 선고 직후 재판장은 "법률적 판단에 따른 무죄"라며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하지만 지난해 8월 2심은 "피고인이 범행을 모의하고 실행하는 과정에서 적어도 손씨의 행위로 피해자가 사망할 수 있다는 점을 미필적으로 인식하고 실행 행위를 분담했다"며 유죄로 판단했다. 2심은 유죄 근거로 김씨가 살인사건 직후 손씨에게 범행 도피 자금을 제공한 점 등을 들었다.
올해 1월 대법원은 김씨를 유죄로 본 2심 판결을 무죄 취지로 파기하고 사건을 광주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다. 대법원은 "피고인의 제보 진술은 주요한 부분에 관해 객관적 사실과 배치되는 사정이 밝혀졌다. 나머지 진술의 신빙성을 인정할 다른 추가 증거가 충분히 제출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어 "합리적 의심을 배제하고 공소사실을 입증할 정도의 신빙성을 갖췄다고 볼 수 없고 범행 현장 상황 등 정황증거만을 종합해 피고인의 살인 공모 사실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이날 파기환송심에서도 광주고등법원 제주제1형사부(재판장 이재신 부장판사)는 대법원 판단대로 김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2년 가까이 끌어온 이승용 변호사 살인사건 재판이 마무리됐다. 수십 년간 장기미제로 남았던 이 변호사 살인사건은 이날 무죄 선고로 다시 미궁 속에 빠지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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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CBS 고상현 기자 kossang@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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