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죽음, 분노·슬픔에 주름처럼 앉은 존재들의 눈물을 생각한다”···정은귀 에세이

김종목 기자 2023. 7. 26. 1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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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은귀(한국외국어대 영문학과 교수)는 에세이집에서 가까이는 수년, 멀리는 수백 년 전 옛 시에서 지금 한국 현실을 끄집어내 이야기한다. 루이즈 글릭 등 영시를 번역하고, 이성복 등 한국 시를 영역한 번역가이자 영문학자가 산문에 펼친 현실 비평은 날카롭고 예리하다. 이 비판은 적대와 증오, 절망이 아니라 연대와 나눔, 희망과 기도의 언어를 토대로 한다.

최근 발간한 <나를 기쁘게 하는 색깔>(마음산책, 이하 <나를~>)과 <다시 시작하는 경이로운 순간>(민음사, 이하 <다시~>)은 “읽고 쓰고 같이 또 읽고 같이 쓰면서” “이 세계의 버려진 작은 조각들을 깁고 잇는” 작업이다.

정은귀는 신작 에세이집에서 “하루하루를 성실과 올곧음으로” 버티다 죽은 노동자들을 애도한다. 세계 산업재해 사망 노동자 추모의 날인 2019년 4월 28일 경기도 남양주 모란공원에서 열린 ‘청년 노동자 고(故) 김용균 동지 묘비 및 추모조형물 제막식’에서 고인의 어머니 김미숙씨가 아들 사진을 보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우철훈 선임기자

정은귀가 바라보는 건 ‘작은 조각들’ ‘무너져가는 것들’ ‘낡고 망가진 것들’이다. 이 시선을 ‘나를 기쁘게 하는 색깔’이란 제목에 담았다. 윌리엄 카를로스 윌리엄스의 시 ‘목가’에서 따왔다. “삐죽삐죽 선이 안 맞는 지붕,/ 오래된 닭장 철조망과 재,/ 못 쓰게 된 가구들이/ 잡다하게 들어찬 마당,/ 울타리, 통나무 널빤지와// 상자 조각들로 지은/ 바깥 화장실, 그 모두를,/ 고맙게도 말야,/ 적절히 풍화된/ 푸르스름한 초록 얼룩이/ 모든 색깔 중에서/ 가장 나를 기쁘게 하네.// 이것이/ 이 나라에 제일 중요하다는 걸/ 아무도 믿지 않겠지만”. 정은귀는 “정치를 하는 사람들이 세심하게 들여다보아야 할 색도 화려한 금빛이 아닌 그 초록 얼룩이고 세월에 풍화되고 마모된 사람들”이라고 말한다.

‘마모된 사람들’은 산재 노동자, 성소수자, 난민 같은 약자들이다. “하루하루를 성실과 올곧음으로” 버티다 “기계에 몸이 끼여 죽은 청년 노동자(김용균)” 등 “너무 많은 죽음”을 두고 정은귀는 이렇게 썼다.

“자본의 가치 대신 인간의 가치를 내세웠더라면, 타인의 희생과 착취 위에서 얻어지는 이익이라는 절대 목표 대신 함께 잘 살아가는 공생과 나눔의 가치를 내세웠더라면 막을 수 있었을 죽음입니다.”


☞ ‘마녀 풀’의 목소리와 선언···정은귀·신형철이 읽은 루이즈 글릭 <야생 붓꽃>
     https://m.khan.co.kr/culture/book/article/202211271349001

세상은 절망에 빠진 듯 보인다. 정은귀는 “우리가 살고 있는 곳이 지속 가능한 삶의 터가 아니라 이 세계의 가장 약한 부분부터 죽음으로 몰아가는 폭력의 순환이라는 것을, 결국에는 모두를 죽게 만들 죽음의 공간이라는 것을 새삼 인지하게 하는 아픈 현실 속에서 망연해졌다”고 했다.

<다시~>에선 난민 문제와 ‘무관심의 세계화’를 지적한다. “내 뼈조차 덜커덕거리며 같이 여윈다/ 한 소녀를 안으니 몇 만 개의 뼈가 글썽거린다”는 구절이 든 송재학의 시 ‘난민’을 인용하며 정은귀는 이렇게 말한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저 일이 나하고 무슨 상관이냐며 이웃의 고통에 점점 더 무감해졌습니다. ‘무관심의 세계화’는 우리 모두를 무책임한 ‘익명의 사람들’로 만들고 소녀를 안은 몸에서 느껴지는 뼈의 고통에 눈감게 합니다.”

예멘 난민이 온 제주도, 난민 수백 명이 배 전복으로 죽은 이탈리아 람페두사 섬 앞바다, 아시아인 이민자 천막 막사가 있던 샌프란시스코 천사섬은 “국가와 인간됨의 문제, 이 세계에서 함께 살아가는 인간에 대한 환대를 어떻게 구현할 것인가 하는 질문”을 던지는 곳이다.

코로나19라는 재난까지 겹쳤다. 정은귀는 <나를~>에서 팬데믹이란 말의 양면을 살핀다. 그리스어에서 ‘모든(all)’을 뜻하는 ‘pan’과 ‘사람들(people)’을 뜻하는 ‘demos’가 결합된 단어다. ‘모든 사람들’이란 어원을 지닌 이 좋은 말엔 “불안과 공포, 고립과 고통, 마비, 증오와 혐오, 죽음”이 함께한다. 팬데믹은 인종, 지역, 계급, 지위, 부, 권력의 유무를 가리지 않는다. 정은귀는 확진자 수 및 치명률에서 히스패닉계나 흑인 등 유색인종의 비율이 월등히 높은 점을 확인한다.

그는 팬데믹을 마주하면서 “지금까지 우리가 그토록 맹목적으로 매달려온 부와 성장, 문명의 신기루가 삶의 본질이 ‘아님’을 분명히 알게 된다”고 했다.

이런 자각에서, 재난의 전선에서 싸우는 이들을 통해 “우리는 이 재난이 묶어주는 큰 사랑과 희생, 나눔과 연대의 가능성도 봅니다. 이런 것들이 삶의 본질적인 것들입니다”라고 했다. “우리는 이 세계 안에 하나로 묶여” 있다는 “자각 위에서 앞으로는 경제적 이익이나 공공의 자산을 분배하는 일도 더 평등한 방식을 지향”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나를 기쁘게 하는 색깔들>과 <다시 시작하는 경이로운 순간>을 펴낸 정은귀 한국외국어대 교수. 민음사 제공

<다시~>에서도 장애아 학교 설립 반대에 부딪혀 무릎을 꿇고 비는 엄마들, 휠체어가 지하철, 버스, 기차에서 가로막힌 사람들, 권력과 권위가 있는 이들이 행하는 폭력과 멸시를 오롯이 받아내야 하는 사람들, 굶주림 때문에 일당 몇만 원을 훔치고서 감옥에 있어야 하는 사람들, 성추행을 당하고도 신고조차 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이야기한다.

“아픔은 왜 늘 약하고 힘없는 자들의 것일까요?” 정은귀는 브레히트의 ‘살아남은 자의 슬픔’에 얽힌 이야기들을 풀어가며 말한다 “살아남은 자의 건강한 부끄러움이 힘없는 자의 희생과 눈물과 슬픔을 함께 떠안을 수 있습니다.” 그는 “정당한 권력의 행사가 혹 타인의 상처를 먹고 이루어지는 것은 아닌지, 다시 보고 또 봐야 합니다”라고 했다.

정은귀는 “시의 힘, 문학의 힘을 믿는 사람”이다. 그는 “시를 통과한 느낌과 사유를 나누기 위해 매일 쓰고 매일 번역한다. 때로 말이 사람을 살리기도 한다는 것과 시가 그 말의 뿌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믿으며 공부 길을 걷는다”(<나를~> 중)고 했다.

무엇보다 시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시를 곰곰 따져서 생각하는 그 시간의 충만한 느낌은, 어떤 다른 것과도 바꿀 수 없는 기쁨이라 저는 시를 사랑하고 시를 빤히 바라보고, 시와 함께 걷고, 시와 함께 웃습니다. 매일 시를 기다립니다”(<다시~> 중) 그 시간이 평화롭지만은 않다. “시작도 끝도 이 세계의 불합리와 불화이며 재난이며 불운이며 분노이며 슬픔이며 죽음과 함께 하니까요. 그 속에 주름처럼 앉은 존재들의 눈물을 생각합니다. 시의 기도는 그 눈물과 함께합니다.”

정은귀는 가톨릭 신자다. 문학평론가 신형철은 <나를~>을 추천하며 “시는 아름다운 핑계이고, 정은귀는 기도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정은귀는 “무릎걸음의 피먼지로 기도하는 분들”을 떠올리며 다시 평화를 기도한다. “증오와 혐오가 아니라 서로 달래고 어루만지는 일. 상처 입고 소외받은 이 땅의 보이지 않는 목소리들에 귀 기울이는 일. 젖은 자리에서 힘없이 살아가는 이들을 살피는 일. 권력이 아닌 아무것도 아닌 자들에게 손을 뻗는 일이 모든 일들이 평화의 걸음걸이입니다.”(<다시~> 중)

김종목 기자 jom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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