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보는 게 정말 당신이 보는 것일까”…해학적 작품으로 기존관념을 깨다

도재기 기자 2023. 7. 26.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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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움미술관, 김범 작품전 ‘바위가 되는 법’
최대 규모 개인전, 다양한 장르 70점 선보여
기존 인식·지각에 의문 제기···‘다르게 보는 법’ 제안
김범 작가의 ‘임신한 망치’(1995, 목재, 철, 5×27×7㎝. 개인 소장. 왼쪽) 전시 전경(사진 도재기)과 ‘현관 열쇠’(2001, 캔버스에 아크릴, 22×33.5㎝. 백해영갤러리 소장). ⓒ김범. 리움미술관 제공

미술전을 찾은 관람객이 작품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은 여러 가지다. 그중 하나는 자신이 알게 모르게 지닌 고정관념, 편협된 인식을 깨는 일이다. 그리하여 세상과 사물을 이전과 다른 시각으로, 새롭게 바라볼 수 있는 계기를 갖는 것이다. 작가의 상상력, 예술적 감각, 치열한 연구 끝에 만들어진 작품은 관객의 상상력, 감각도 벼리고 일깨우기 마련이다.

한국 개념미술사에서 중요 작가인 김범(60)의 작품은 ‘당신이 보는 게 정말 당신이 보는 것이 맞냐’고 묻는 것으로 유명하다. 당신이 보는 게 아니라 당신이 가진 고정관념, 국가·사회가 만든 틀, 길들여진 주입식 교육 시각으로 보는 것 아니냐는 물음이다. 무의식적으로, 당연하게 받아들인 관습이나 체제·관념에 의문을 제기하고 전복시켜 내가 보는 게 진실이나 전부가 아닌 일면에 불과함을 깨닫게 해 성찰로 이끈다.

김범 작가의 작품전 ‘바위가 되는 법’이 27일 삼성문화재단 리움미술관에서 개막한다. 작가의 최대 규모 작품전이자 13년 만의 국내 개인전이다. 30여 년에 걸친 회화와 조각, 설치, 영상 등 모두 70여점이 선보인다. 워낙 작품을 적게 하는 작가라 신작은 없지만 국내외 미술관·개인 소장품까지 모아 작가의 예술세계를 살펴볼 수 있다.

기존 관념을 뒤집는 작가의 작업 토대 중 하나는 생명이 없는 사물을 생명체로 여기거나 의인화하는 물활론적 사고다. ‘임신한 망치’가 대표적이다. 평범한 망치의 자루 중간을 불룩 튀어나오게 만들어 공구로써 망치가 가진 생산적 기능을 동물의 생명력과 연결시킨 작품이다. 돋보이는 재치와 해학이 관람객을 피식 웃게 만들면서 갖가지 생각을 하게 한다.

김범의 ‘자신이 새라고 배운 돌’(2010, 돌, 목재, 목재 탁자, 12인치 평면 모니터에 87분 30초 단채널 비디오, 가변 크기. 클리브랜드 미술관 소장(루이스 D. 카카리프, M.D. 펀드 2010.263. 왼쪽)의 전시 전경 일부(사진 도재기)와 ‘ 바다가 없다고 배운 배’(2010, 모형 배, 플렉시 글라스 상자, 목재 탁자, 12인치 평면 모니터에 91분 41초 단채널 영상, 가변 크기. 매일홀딩스 소장). 제공 리움미술관. ⓒ김범. 촬영 이의록, 최요한.

작가의 대표적 설치작 ‘교육된 사물들’ 연작도 그렇다. 나뭇가지 위에 새처럼 놓인 돌과 그 돌에게 돌이 아니라 새라고 가르치는 영상으로 구성된 ‘자신이 새라고 배운 돌’, ‘정지용의 시를 배운 돌’, 모형 배에게 여러 지식을 알려주면서도 정작 지구가 육지로만 이뤄졌다고 가르치는 ‘바다가 없다고 배운 배’ 등이다. 돌·배를 가르치는 강사의 유독 진지한 자세와 표정을 통해 교육의 부조리를 해학과 풍자로 꼬집는다. 우리들이 받는 교육과 그렇게 교육받은 모습, 교육의 중요성을 새삼 돌아보게 한다.

‘라디오 모양의 다리미, 다리미 모양의 주전자, 주전자 모양의 라디오’는 국내는 물론 해외에도 많이 알려진 작품이다. 기존 관념에 균열을 일으키며 사물과 개념·실재의 관계, 정체성을 파고 물으며 새롭고 다르게 보기, 상상력을 자극한다.

김범의 ‘무제’(1995, 캔버스에 잉크, 31×31㎝, 왼쪽)와 ‘바위가 되는 법’의 전시 전경 일부. 제공 리움미술관. ⓒ김범. 촬영 이의록, 최요한.

조각·설치뿐 아니라 캔버스 작품에서도 작가는 우리의 인식과 지각에 의문을 제기한다. 작품 ‘현관 열쇠’는 열쇠의 골을 확대한 그림이다. 작품명을 보기 전에는 모두가 산의 능선을 표현한 것으로 인식한다. ‘무제’(1995)는 도대체 무엇을 표현한 것인지 답을 찾기 힘들다. 작가가 소가 돼 자신의 몸을 내려다본 모습을 그렸다. ‘서있는 여성’ ‘누드’ 등도 무엇을 그린 것인지 한참 들여다보게 만든다.

캔버스를 찢어 다시 실로 벽돌 담장처럼 꿰맨 ‘벽돌 벽 #1’, 통닭 형상의 구멍을 내고 철망으로 대체한 ‘철망 통닭 #1’ 등은 그의 실험정신을 대변한다. 캔버스 물성을 탐구해 캔버스 자체를 이미지, 작품화함으로써 캔버스가 그저 그림을 그리는 것이라는 기존 생각을 깨뜨린다. 캔버스에 이미지 없이 관람객에게 지시·권유하듯 영어 텍스트만 있는 작품들도 흥미를 자극한다. 푸른 하늘, 나무들, 흘러가는 강 등을 바라보라는 문장들을 통해 관람객은 저마다 상상의 풍경화를 그려낸다. 관람객의 적극적 참여가 있어야 완성되는 ‘인터랙티브’ 작업이라 할 수있다.

김범의 ‘두려움 없는 두려움’(1991, 종이에 잉크, 연필, 가변 크기, 왼쪽)과 ‘무제(친숙한 고통 #5)’(2008, 캔버스에 아크릴, 83×57.5㎝. 매일홀딩스 소장). 제공 리움미술관. ⓒ김범. 촬영 이의록, 최요한

전시장에는 이밖에 사나운 개가 벽을 뚫고 달아난 흔적을 표현한 입체 작품같지만 평면작업인 ‘두려움 없는 두려움’, 해학적이면서도 예술가의 노력·애환이 느껴지는 ‘노란 비명 그리기’, 실제 디자이너 등과 협업을 통해 상품을 만들어 판매도 하는 ‘폭군을 위한 인테리어 소품’ 프로젝트, 작가의 다양한 관심과 실험을 엿보게 하는 설치작업들도 나왔다. 언어적 감각이 돋보이는 작품명으로도 유명한 작가는 조각가 고 김세중과 시인 김남조 부부의 아들이기도 하다.

전시 기획자인 김성원 리움미술관 부관장은 “한국 동시대 미술에 큰 영향을 준 김 작가는 소박하고 무덤덤한 표현, 특유의 재치, 농담처럼 툭 던지는 의미심장한 이미지로 자기 성찰의 장을 열어주고 세상을 다르게 보는 법을 제안한다”며 “찬찬히 오래 보는 적극적인 관람으로 작품의 진면목을 느끼고, 전시와 연계한 다양한 프로그램도 즐기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사전 예약을 권장하는 전시는 유료이며, 12월3일까지다.

김범의 ‘폭군을 위한 안전가옥 설계안’(2009, 청사진, 매일홀딩스 소장, 왼쪽)과 ‘쥐와 박쥐 월페이퍼(폭군을 위한 인테리어 소품 중)’(2016). 제공 리움미술관. ⓒ김범. 촬영 이의록, 최요한.
‘바위가 되는 법’의 전시 전경 일부, ‘제조 #1 내부/외부’(2002, 혼합 매체) 전시 전경, 세부 모습, 인물상 종이 오리기 작업 세부 모습(사진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 사진 도재기). 제공: 리움미술관. ⓒ김범. 촬영: 이의록, 최요한.

도재기 선임기자 jaek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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