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소시효 만료' 조작해 자수한 '살인 조폭'…'수사 불씨' 살린 검찰(종합)
중국 밀항해 19년간 '호화' 해외도피…공범은 공개수배
(광주=뉴스1) 이수민 김동수 서충섭 이승현 기자 = 폭력조직 간 보복살인을 저지르고 중국으로 밀항했던 조직폭력배가 28년 만에 구속기소됐다.
서울 강남 한복판에서 일어난 조직폭력배들 간 보복살인인 '뉴월드호텔 사건'은 4명의 사상자를 내면서 온국민에게 충격을 안겼다.
당시 대부분의 조직원은 검거돼 처벌받았으나 주범 2명은 도주해 행방이 묘연했다.
이 중 한명은 지난해 공소시효 만료를 노리고 자수했다가 검찰의 수사 끝에 결국 살인죄로 처벌을 받게 됐다.
남은 건 당시 영산파 행동대장이었던 정동섭(55)이다. 검찰은 26일 그에 대해 체포영장을 발부받고 공개수배하기로 결정했다.
◇휴일 대낮 강남 한복판서 조폭 칼부림…어쩌다 이런 일이?
1991년 10월7일 서울 강남 팔레스호텔 나이트클럽에서는 '영산파'와 '신양파' 조직폭력배들 간 시비가 붙어 집단 패싸움이 벌어졌다.
당시 영산파 조직을 이끌던 두목 최모씨는 신양파 조직원인 박모씨에 의해 살해된다.
영산파 조직원들은 두목을 살해한 박씨에 대해 복수를 다짐하고 치밀한 보복살인 계획을 세웠다.
이들은 1994년 12월4일 서울 강남 뉴월드호텔에서 박씨가 한 조직폭력배의 결혼식에 참석한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보복살인을 저지르기로 한다.
영산파 조직원들은 결혼식 당일 호텔 주변에서 흉기와 몽둥이를 들고 잠복했다가 결혼식을 마치고 나오는 신양파를 급습, 2명을 살해하고 2명에게 중상을 입혔다.
노태우 정부는 1990년 조직폭력배들이 사회문제를 일으키자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했지만 실제 조폭들의 세력이 줄어들고 크게 위축된 결정적 계기는 바로 이 사건 때문이다.
◇중국으로 도피한 주범들…가족 초대하고 사업도 벌인 '호화생활'
당시 범행에 가담한 영산파 두목과 고문, 행동대장, 대원 등 조직원 10명 대부분은 무기징역 혹은 10년 이상의 징역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영산파 행동대원 A씨와 행동대장 정동섭은 살인 범행 직후 도주해 수사기관의 감시망을 피해 숨어 지냈다.
이들은 국내에서 덜미가 잡힐 것을 예상해 밀항한 뒤 중국에서 지냈는데, 수사 이후 대담한 도피행각과 호화로운 생활이 밝혀졌다.
A씨는 2003년 가을 군산에서 선박을 타고 중국으로 밀항한 뒤 중국 이불공장 등에서 일용직으로 일했다. 가족을 중국에 초대해 만남도 가졌으며, 국내에서 그의 경조사가 있을 땐 조직원이 대신 챙겨주기도 했다.
행동대장 정동섭도 A씨와 마찬가지로 범행 후 국외 도피했다. 정확한 밀항시점은 특정되지 않았지만, 검찰이 조사 결과 공소시효가 남아있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정씨는 도피 기간 중국에서도 생수와 안마방 사업을 하며 상당한 돈을 번 것으로 알려졌다. 또 국내에 입국한 뒤에도 투자 사업을 하고, 한 건설회사에 임원(이사)로 등재되는 등 성공한 사업가로 지냈다.
또 이들이 도피생활 만난던 것과 영산파 조직원들이 밀항, 도피 과정에서 조력한 정황도 드러났다. 영산파 조직원과 그들의 고향 선후배들은 A씨와 정동섭이 범행 후 중국으로 도주하자 중국을 왕래하며 조직 차원에서 도피생활을 도왔다.
◇공소시효 만료 노리고 '날짜 거짓 진술'…검찰 수사로 진실 밝혀져
지난해 3월 오랜 도주생활에 지친 A씨는 중국 심양 영사관에 나타나 중국 밀항사실을 자진신고했다. 밀항 시점은 1994년으로부터 22년이 지난 2016년 9월이라고 주장했다.
만약 A씨의 밀항 시기가 실제로 2016년이었다면 뉴월드호텔 살인사건의 살인죄 공소시효 15년이 이미 지난 뒤로 그를 살인죄로 처벌하는 것을 불가능했다.
공범 중 일부가 재판 중이면 시효가 연장되면서 해당 사건의 공소시효는 1994년으로부터 17년이 지난 2011년에 종료됐다.
검찰은 A씨가 공소시효가 완성되기 이전에 중국에 밀항했을 가능성을 열어두고 검사와 수사관 20여명으로 구성된 전담수사팀을 꾸려 전면 재수사를 벌였다.
용의자가 형사처분을 피하기 위해 국외에 체류할 경우 그 기간 공소시효는 정지된다.
특히 2015년 살인죄에 대해서는 공소시효를 적용하지 않는 법 개정이 이뤄졌기 때문이다.
검찰은 공소시효 완성 이전인 2003년 중국에서 A씨를 봤다는 다수의 진술을 확보할 수 있었다. 또 이미 공범으로 무기징역을 살고 있는 조직원들도 A씨의 밀항 사실을 증언했다.
결국 A씨도 2003년에 밀항한 사실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검찰은 지난달 28일 A씨를 살인죄로 구속 기소하고 26일 밀항단속법 위반 혐의로 추가 기소했다.
◇행동대장 '정동섭' 오늘부터 공개 수배 …향후 수사 계획은?
행동대장 정동섭은 아직도 행방이 묘연하다. 정씨는 당시 조직원들이 사용할 범행도구를 준비하고, 피해자들을 쫓아가 흉기를 휘두르는 등 주도적 역할을 했다.
그는 지난달 7일 이 사건에 대해 압수수색 등 검찰 수사가 시작되자 재차 도주해 현재 소재가 불분명하다. 마지막 발견지는 서울 서초구다.
검찰은 정씨에 대해 체포영장을 발부받고 이날부터 공개수배하기로 결정했다.
키 180㎝에 80㎏의 건강한 체격인 그는 주된 거주지가 서울 송파구와 경기도 고양시 일대다. 왼쪽 팔부터 등까지 이어지는 문신이 있고, 왼쪽 귀 뒤에 수술 자국이 있다.
검찰 관계자는 "'검·경 조직범죄 대응 수사기관 협의회'를 통해 경찰의 적극적인 협조를 받아 도주 중인 조직폭력배 정동섭을 끝까지 추적, 죄에 상응하는 처벌을 받도록 할 방침이다"고 밝혔다.
또 A씨와 정동섭의 밀항·도주행각을 도운 영산파 조직원 등에 대해서도 다각도의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breath@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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