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언제나 ‘일은 했다’는 경찰

김태호 기자 2023. 7. 26.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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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부 기자는 경찰과 연락할 일이 잦다.

"기자님, 제가 지금 바빠서요 간단히 물어봐 주세요", "요새 야간 출동이 많네요", "사건이 끊임없이 밀려와 정신이 없어요" 지구대·파출소 경찰관부터 일선 경찰서 과장까지 으레 하는 말이다.

지난해 11월 30일 서울 미아지구대 경찰관들이 술에 취한 60대 남성을 공동주택 대문 앞에 방치해 죽게 한 사건이 있었다.

이에 일선 경찰들은 익명의 가림막 뒤에서 수뇌부를 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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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부 기자는 경찰과 연락할 일이 잦다. 취재차 전화를 걸 때, 명함을 주러 경찰서에 방문할 때, 처음 건네는 인사말은 “바쁘신데 수고 많으십니다”다. 경찰이 바쁘다는 건 소속 구성원들도 잘 안다. “기자님, 제가 지금 바빠서요 간단히 물어봐 주세요”, “요새 야간 출동이 많네요”, “사건이 끊임없이 밀려와 정신이 없어요” 지구대·파출소 경찰관부터 일선 경찰서 과장까지 으레 하는 말이다.

하지만 이렇듯 하루종일 바쁘게 일하는 경찰에 대한 국민의 신뢰는 그다지 높지 않다. 한국행정연구원이 지난해 펴낸 ‘2021년 사회통합실태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민의 경찰 신뢰도는 4점 만점에 2.5점을 기록했다. 경찰을 믿지 않는다고 응답한 비율은 44.7%에 달한다. 거칠게 말해 국민 2명 중 1명은 경찰을 신뢰하지 않는다. 아직도 경찰 관련 기사에는 경찰을 얕잡아 부르는 혐오 댓글이 달린다.

누가 경찰에 대한 신뢰를 좀먹었을까. 다름 아닌 경찰 자신이다. 지난달 24일 서울 도곡지구대가 한 시민의 신고를 접수하지 않은 일이 있었다. 한 배달기사가 서울 강남구 대치동의 상가 화장실에서 신원 미상의 남성이 쓰러져 있는 모습을 보고 도곡지구대에 방문해 이 사실을 알렸으나 야간근무를 하던 지구대 경찰관은 “이상 있었으면 다른 사람이 신고했을 것”이라고 말하며 배달기사를 돌려보냈다.

이 모습을 담은 영상이 유튜브에 공개되자 상급기관인 서울 수서경찰서에서 부랴부랴 후속 조치에 나섰다. 경찰은 “지난 15일 현장과 폐쇄회로(CC)TV 영상을 확인하고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고 밝혔다. 신고 후 3주가 지나서야 현장을 찾은 것이다. 또한 “당시 도곡지구대에서 범죄 혐의 정황이 없다고 판단해 출동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물론 결과적으론 아무 일도 없었다. 그러나 당시 한 생명이 위태했거나 범죄가 있었다고 생각하면 아찔하다. 경찰은 “유튜브 영상을 본 지역주민들이 불안해할 수 있어 불안감 해소를 위해 후속 조치했다”고 말했다. 어쨌든 ‘일은 했다’는 것이다.

지난해 11월 30일 서울 미아지구대 경찰관들이 술에 취한 60대 남성을 공동주택 대문 앞에 방치해 죽게 한 사건이 있었다. 이때도 경찰 내부에선 “그 정도 했으면 됐지, 경찰이 술 취한 사람 집 안까지 모셔야 하냐”는 비아냥이 있었다. 서울에 한파 경보가 떨어진 날, 기초생활수급자 노인을 죽게 했지만 역시나 ‘일은 했다’는 반응이었다.

지난해 핼러윈 참사 때도, 올해 오송 참사 때도 마찬가지다. 위험 징후를 알리는 신고가 들어와도 멀뚱히 바라만 보거나 엉뚱한 곳으로 출동해놓고는 “경찰은 최선을 다했다”는 식의 해명을 내놓았다. 참사 때마다 경찰 내부에서의 책임 돌리기도 반복된다. 경찰 수뇌부는 일선 경찰들에게 책임을 돌리기 일쑤다. 이에 일선 경찰들은 익명의 가림막 뒤에서 수뇌부를 욕한다. 어쨌든 자신들은 열심히 일했고 책임은 다른 곳에 있다는 태도다.

윤희근 경찰청장은 지난해 8월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국민이 신뢰하는 안심 공동체를 목표로 정진하겠다”며 “열과 성을 다해 직무에 헌신하겠다”고 말한 바 있다. 경찰도 서로를 믿지 못하는 데 ‘경찰이 내 몸을 지켜줄 것이다’는 국민의 신뢰는 어디서 구할 수 있을까. 도곡지구대 행태를 고발했던 유튜브 채널 이름처럼 ‘믿을 건 내 몸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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