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러에게는 특별한 것이 있었다

김종수 2023. 7. 26. 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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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A 역대 최고의 슈터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름은 단연 스테판 커리다. '3점슛에 관해서는 혼자만 다른 세계에서 놀고있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양(역대 최다 성공)과 질(각종 개인 수상기록, 우승)에서 단연 어나더레벨에 올라있다. '대 3점슛 시대' 서막의 깃발을 올린 장본인이기도하다. 이른바 트랜드를 바꾼 것이다.


커리가 확고부동한 정상의 자리를 굳히고있는 가운데 클레이 탐슨, 데미안 릴라드, 트레이 영 등 거리와 타이밍을 가리지않는 역대급 슈팅 마스터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커리어를 만들어가고 있다. 커리의 가장 큰 업적중 하나는 오랜 세월동안 조연의 위치에 있던 슈터를 주연으로 끌어올렸다는 부분이다.


이전까지 NBA에서 슈터는 대부분 조연 역할에 그쳤다. 팀내 에이스를 돕는 지원군 포지션이 대부분으로 당연히 슈터가 리그 스타 반열에 오르는 경우도 찾아보기 힘들었다. 그런 가운데 슈터로는 드물게 많은 팬들의 사랑을 받던 이전 선수가 있었으니 레지 밀러(58‧201cm)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깡마른 체형의 밀러는 커리어만 놓고보면 특별할 것이 없어보인다. 올-NBA 서드 팀 3회, 올스타 5회가 주요 수상 내역의 전부이며 유일한 자랑거리였던 3점슛 누적기록도 레이 앨런, 스테판 커리 등에 의해 진작에 깨진지 오래다. 3점슛을 워낙에 많이 쏘는 최근 트랜드를 감안했을때 밀러의 3점슛 순위는 계속해서 밀릴 일만 남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슈터하면 밀러를 떠올리는 이들이 많다. 커리 이전에는 '슈터=밀러' 비슷한 말같이 여겨졌으며, 커리가 3점의 모든 것을 바꿔놓은 이후에도 밀러의 이름은 잊혀지지않고 있다. 많은 시간이 흘러 밀러가 3점슛 성공 개수에서 10위권 밖으로 밀려나는 일이 생기더라도 슈터로서의 이미지는 그대로 갈 공산이 크다. 피트 마라비치, 오스카 로버트슨 등처럼 선구자같은 느낌이 강하기 때문이다.


밀러는 은퇴한지 20년이 가까워지고 있음에도 여전히 많은 후배들의 존경을 받고 있다. 커리도 그중 한명이다. 최근 라디오 방송에 출연한 커리는 '본인이 가진 우승반지를 나눠주고 싶은 선수가 있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우승을 못한 과거 선수들을 염두에 둔 발언이었다. 이에 커리는 2명의 선수를 지목했는데 그중 하나가 밀러였다. 밀러에 대해 커리는 "아버지(델 커리)가 이 말을 들었으면 서운할지도 모르겠지만 밀러의 플레이를 보는 것을 어린시절부터 좋아했고 적지않은 영향을 밝았다"고 밝혔다.


인디애나 페이서스의 에이스였던 밀러는 제 1옵션으로서는 드물게 볼을 오래 소유하지 않으면서 플레이하는 스타일의 선수였다. 경기내내 엄청난 활동량으로 볼없는 움직임을 가져갔고 공격 기회를 잡았다싶으면 짧고 간결하게 득점을 성공시켰다. 많이 던지기보다는 정확성으로 승부하는…, 저격수같은 느낌으로 찰나의 순간을 놓치지않았다.

 

 


스크린을 타고 돌아다니며 순간적인 노마크 찬스를 만들고, 패스를 받아 빠르고 정확하게 캐치앤 슛을 던지는 테크닉과 요령은 역대 최고 수준으로 평가받고 있다. 밀러는 대부분의 선수 생활동안 수준급 볼핸들러와 함께 하지 못했다. 때문에 엄청난 활동량을 바탕으로 스크린을 타면서 3점슛을 던지는 밀러의 장기는 인디애나의 주 공격패턴이었다. 이러한 밀러의 슈터로서의 다양한 움직임은 후대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는 분석이다.


슈터로서의 이미지가 워낙 강해서 그렇지 다른 능력치도 두루두루 괜찮은 수준이었다. 탑 슬래셔까지는 아니었지만 3점슛을 막기위해 수비수가 붙으면 유연하게 제치고 돌파를 성공시키거나 미드레인지를 꽂아넣었다. BQ가 높은 선수답게 시야나 패싱능력 등도 준수했으며 수비실력도 나쁘지않았다.


대놓고 강하다기보다는 누구와 붙어도 쉽게 당하지 않는 근성이 돋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 동부 컨퍼런스에서 시카고 불스, 뉴욕 닉스같은 터프한 팀들과 경쟁하면서 팀을 이끌려면 수비는 필수였다. 전성기 시절 마이클 조던과 맞붙었어도 움츠려들지않고 악착같이 덤벼들었을 정도다.


밀러하면 떠오르는 또 다른 이미지중 하나로는 ‘프랜차이즈 스타’가 있다. ‘왕은 왕국을 버리지 않는다’는 말을 남긴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는 18년 선수 생활 동안 인디애나 페이서스 한팀에서만 뛰었다. 다른 팀은 쳐다도 보지않았다. 지금보다 원클럽맨이 많았던 시절이었음을 감안하더라도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선수가 커리어 내내 데뷔 팀에 애정을 보이기도 쉽지않거니와 본인이 남겠다고해도 트레이드 등 타의로 옮기는 경우도 적지않게 발생하기 때문이다. 더불어 금전, 우승 여부 등에서도 어느 정도 희생할 각오가 필요하다. 밀러와 팀 모두가 서로를 소중하게 생각했기에 가능한 결과다. 덕분에 인디애나는 ‘밀러를 배출한 팀’이다는 훈장을 달게됐다.


무수한 원클럽맨 후보들이 커리어 막판에 우승을 찾아 스스로 전당포 멤버를 자처한 것을 비롯 프랜차이즈 스타를 자신의 캐릭터로 밀던 데미안 릴라드마저 타팀 이적을 원한다고 나서는 상황에 비쳐봤을 때 밀러의 우직한 농구인생은 여러 가지면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더불어 많은 이들이 그를 존경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글_김종수 칼럼니스트​​​​​​​ ​​

#사진_NBA 아시아, 농구카툰 크블매니아(최감자 그림/케이비리포트 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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