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이파일] 염소를 유혹한 사과

김재형 2023. 7. 26. 1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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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김현수

스포츠팬 사이에서 염소라는 뜻의 '고트(GOAT)'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Greatest Of All Time)의 앞글자를 딴 말입니다.

설명이 필요 없는 축구 스타, 리오넬 메시를 언급할 때 자주 사용하는 표현입니다. 그런데 염소(GOAT) 메시가 사과(APPLE)를 한입 베어 물고 미국으로 향했습니다. 여기서 사과는 미국 테크 기업 애플을 의미합니다.

◆ '오일머니' 밀어낸 애플의 '파격 투자'

메시는 6천억 원 안팎의 천문학적 연봉을 제시했던 사우디의 러브콜을 뒤로하고 미국행을 선택했습니다. 마이애미 구단에서 메시의 연봉은 사우디기 제시한 연봉의 10분의 1 수준인 5천4백만 달러, 700억 원 수준으로 알려졌습니다.

이렇게 큰 손해를 감수하고 메시가 미국행을 선택했을 때는 연봉 차액을 상쇄할만한 무엇인가가 있기 때문이겠죠. 그 무엇인가는 빅테크 기업 애플의 파격적이고 이례적인 투자입니다.

지난해 6월 애플과 메이저리그사커(MLS)는 글로벌 판권을 포함한 독점 중계권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향후 10년간 최고 25억 달러(한화 3조 2천억 원)를 투자하는 그야말로 초대형 계약입니다. 기존 중계권 사인 ESPN, FOX 등이 계약한 중계권료가 연간 6천만~6천5백만 달러였으니까 연간 2배 정도 인상된 금액입니다.

◆ 애플의 당근...이례적 인센티브

애플은 자사 OTT 플랫폼인 '애플TV'를 통해 메이저리그사커를 독점 중계합니다. 이를 통해 애플은 애플TV의 구독자를 늘릴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애플TV에서 메이저리그사커 시즌 패스 구독권 가격은 월 14.99달러 또는 연간 99달러로 책정됐습니다. 기존 애플TV 구독자에겐 할인 혜택이 제공됩니다.

메시의 계약에는 메이저리그사커, 그리고 메이저리그사커의 중계사인 애플 TV와 수익 분배 관련 조항이 포함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구독자가 늘어나는 만큼 영화의 러닝 개런티 처럼 메시에게 수익의 일부가 인센티브로 지급되는 방식입니다.

메시와의 수익 공유 인센티브 계약에는 메이저리그사커의 스폰서인 아디다스도 포함됐다고 미국 언론은 전하고 있습니다.

◆ 단지 구독자 증가 위해 3조 투자?

빅테크 기업 애플의 파격적인 투자, 단순히 구독자 증가를 노린 전략일까요? 그러기엔 10년간 3조 2천억 원에 달하는 중계권 금액이 너무 어마어마합니다. 애플의 계산기를 들어다보겠습니다.

2023년 2분기 기준 애플의 매출은 948억 4천만 달러, 이 가운데 주력 상품인 아이폰 매출이 513억 3천만 달러입니다. 약 54%로 절반이 넘습니다. 애플의 핵심 비즈니스는 여전히 제품 판매, 그 중에서도 아이폰에 의존하고 있는 게 현실입니다.

애플 수익 분석
미국에서 사용되는 스마트폰의 50% 이상은 아이폰, 하지만 남미와 인도 등 인구 밀집 지역에선 여전히 안드로이드 제품이 시장을 장악하고 있습니다. 몇 년에 한 번씩 스마트폰을 바꾸는 상황에서 애플이 새로운 활로를 마련하지 않는다면 성장에 한계점이 올 것이 분명합니다. 아이폰의 연간 매출 추이에선 이런 한계점, 즉 정체 현상이 명확히 보입니다.
아이폰 판매 대수
◆ 애플의 큰 그림

그래서 애플이 생각한 솔루션이 바로 라이브 스포츠 중계입니다. 애플은 초초초 글로벌 스타인 메시에게 투자하는 것이 더 많은 아이폰을 판매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메시의 영향력과 팬 흡입력을 고려할 때 메시의 경기를 보고 싶어 하는 전 세계 팬들은 많을 겁니다. 메시의 경기는 애플tv를 통해 독점 중계되고 모바일 디바이스(기기)를 통해 메시의 경기를 보기 원하는 안드로이드폰 사용자는 아이폰으로 바꿔야만 메시의 경기 중계를 볼 수 있습니다.

정리하면 메시 경기를 독점 중계하는 애플TV를 유인책으로 활용해 주력 상품인 아이폰 판매를 늘리고 여기에 애플tv 구독 서비스로 정기적인 부가 수익까지 챙기는 '꿩 먹고 알 먹는' 개념입니다.

구독 서비스를 통해 반복적인 수익원을 창출하는 동시에 메시 경기를 통해 새로운 고객을 아이폰 또는 애플 제품으로 끌어들이는 효과가 발생하는 겁니다. 애플에게 메시는 걸어 다니는 광고판인 셈입니다.

마이애미 유니폼을 입은 리오넬 메시 / AFP연합뉴스
◆ 메시가 인도할 '애플 생태계'

같은 맥락에서 애플은 최근 하드웨어 플랫폼에서 고객 유입을 늘리려는 목적의 서비스 개발에 공을 들이고 있습니다. 애플 뮤직, 애플 뉴스, 애플 팟캐스트 등이 대표적입니다. 흔히 '애플 생태계'로 불리는 부분입니다.

실제로 애플은 올해 2분기 실적에서 200억 달러 이상을 이런 부가 서비스 분야에서 발생시켰습니다.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아이폰 판매 다음으로 높습니다. 무엇보다 서비스 분야별로 구독자가 늘면서 매출이 우상향 곡선을 그리고 있는 점이 고무적입니다. 여기에 서비스 분야 마진율은 아이폰 등 제품 판매의 2배에 이릅니다. 1만 원당 7천2백 원이 남는 구조입니다.

서비스 분야 애플 수익
◆ 가상 현실과 만날 스포츠 중계?

하나 더 있습니다. 최근 공개한 가상현실 헤드셋 '비전 프로'와 연계할 경우 새로운 생태계가 열릴 수 있습니다. 빅테크와 스포츠 마케팅 업계에선 창조적 혁신을 이어온 애플이 스포츠 중계와 애플 생태계를 융합하는 방법으로 극적인 경험을 제공해 수익 다변화라는 목적을 이룰 수 있다는 기대감도 존재합니다.

◆유입 효과? 메시 한 명이면 충분해

애플의 야심찬 계획이 현실이 되려면 메시에게 그만큼의 유입 효과가 있어야겠죠.

메시가 이적하기 전 마이애미 구단의 인스타그램 팔로워는 약 1백만 명이었습니다. 메시의 이적 가능성만으로 팔로워가 급증하더니 7월 24일 기준 1,191만 명으로 폭증했습니다. 불과 몇주 만에 1천만 명이 증가한 겁니다. 미국 스포츠팀을 통틀어 3번째로 많은 팔로워입니다.

여기에 메시의 개인 인스타그램 팔로워는 4억 8천만 명, 메시의 전전 소속팀인 인기 구단 FC 바르셀로나가 약 1억2천만 명인 점을 고려하면 어마어마한 인기입니다.

2만2천 전 석이 매진된 메시의 데뷔전 / AFP 연합뉴스
◆ MZ가 열광하는 'MLS 그리고 아이폰'

애플이 주목한 또 다른 분석 자료에 따르면, 미국 메이저리그사커는 다른 스포츠에 비해 인기가 적지만 팬층의 대다수, 약 70%가 MZ세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더불어 MZ 세대는 스트리밍 플랫폼을 선호하고 애플 제품에 대한 높은 관심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러한 점들을 고려할 때, 애플은 메이저리그사커의 중계를 통해 새로운 사업 가치를 찾을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이는 애플이 추구하는 '다르게 생각하라(Think Different)'의 철학과 잘 어울립니다.

애플TV의 메시 경기 독점 중계 광고
◆ 이제 시작일 뿐? 스포츠 시장 노리는 애플

애플의 스포츠 중계 시장 진출은 지난해 3월 메이저리그 야구 중계를 스트리밍하면서 시작됐습니다. 7년 동안 매년 8천5백만 달러, 한화 1,088억 원을 투자하는 내용이었습니다. 미국, 캐나다, 일본, 호주, 영국 등 8개국에서 금요일 밤 2경기를 독점 중계하는 권리였는데 올해부턴 서비스 지역을 60개국 이상으로 확대했습니다.

메이저리그사커와 독점 중계권 계약을 맺은 애플은 영역을 확장하고 있습니다. NBA 중계권 입찰에 참여하는가 하면 글로벌 인기 스포츠인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와 프랑스 리그1 중계도 고려하고 있습니다.

지역별 그리고 플랫폼별 다양한 상품으로 중계권을 판매하고 있는 프리미어그와 애플이 손을 잡는다면 스포츠 산업 시장에 또 하나의 사건으로 기록될 전망입니다.

물론 스포츠 중계 시장에 대한 애플의 파격적인 투자가 지속가능할지 의심하는 시선도 적지 않습니다. 중계권 계약에 있어 장기적인 안정성을 중요시하는 스포츠 선진국들의 특징 때문입니다.

다만, 디즈니나 폭스 등 엔터테인먼트 업체 중심이던 기존 스포츠 중계권 사업자와 비교할 때 공룡과도 같은 애플이 상상 이상의 금액으로 기존 경쟁자들을 압도한다면 얘기는 달라질 수 있습니다.

메시와 애플
◆ 스포츠 산업과 애플의 '차별화 전략'

2026년 미국, 캐나다, 멕시코는 피파 월드컵을 공동 개최합니다. 전체 경기의 70% 이상이 미국에서 열려 사실상 미국이 개최하는 월드컵입니다. 최고의 축구 이벤트를 앞두고 미국에서 축구에 대한 관심과 시청자 수가 급증할 수 있는 대외적 호재는 분명 있습니다.

그렇다해도 애플이 미국 메이저리그사커의 특정팀, 그것도 특정 선수를 영입하는 계약에 참여한 것은 굉장히 이례적인 일입니다.

10년간 3조 원을 쏟아부어야 하는 애플.

'Think Different' 故 스티브 잡스가 남긴 명언, '다르게 생각하라'라는 기조 아래 혁신을 거듭해온 애플의 도전인 만큼 차별화된 다름이 있을 것이란 기대가 지배적입니다.

애플 TV와 넷플릭스 같은 스트리밍 플랫폼들의 공통된 고민은 시청들이 좋아하는 오리지널 콘텐츠를 어떻게 매일 지속적으로 공급할까입니다. 그런 면에서 뉴스와 함께 매일 새로운 오리지널 상품을 내놓는 유일한 상품인 스포츠는 스토리텔링이 가능한 독점적이고 강력한 무기입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래픽: 김현수, 이형근

▲참고자료: The Athetic, Athletic Interest

YTN 김재형 (jhkim03@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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