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테 파파와 ‘헬육아’[뉴스와 시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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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일은 있을 수 없어요. 부모 중 한 명은 반드시 시간을 낼 수 있어요."
"일하는 부모는 아이를 데리러 오기 힘들지 않냐"고 한국 취재진이 묻자 엘리자베트 발스트룀 교장은 "스웨덴 상황에 맞지 않은 질문"이라면서 이렇게 답했다.
부모 중 한 사람이 일찍 퇴근해 아이를 하원시킬 수 있는 '유연근무제'가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이에 정부는 1990년부터 아이 한 명당 부모 육아휴직 총 480일 중 90일은 남성만 쓰도록 의무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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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일은 있을 수 없어요. 부모 중 한 명은 반드시 시간을 낼 수 있어요.”
지난달 스웨덴 나카 코뮌에 있는 ‘부 고드’ 푀르스콜라(취학 전 유아학교). 이곳 하원 시간은 여느 푀르스콜라처럼 오후 5시다. “일하는 부모는 아이를 데리러 오기 힘들지 않냐”고 한국 취재진이 묻자 엘리자베트 발스트룀 교장은 “스웨덴 상황에 맞지 않은 질문”이라면서 이렇게 답했다. 부모 중 한 사람이 일찍 퇴근해 아이를 하원시킬 수 있는 ‘유연근무제’가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성립되지 않은 질문처럼 통용되지 않는 말도 있었다. ‘경력단절’ ‘전업주부’ 등이다. 스웨덴 여성의 80% 이상이 일하면서 전업주부가 사라져 가는 것처럼 경력단절이란 개념도 없었다.
‘보육 천국’이 하루아침에 이뤄진 건 아니다. 스웨덴은 한때 유럽에서 가장 가난했다. 여성 인권 의식도 높지 않았다. 뒤늦게 산업화되자 많은 여성이 일하기를 원했지만, 일과 가정의 양립은 어려웠다. 출산율은 세계 최저치로 떨어졌다. 화두를 던진 것은 스웨덴의 경제학자 군나르 뮈르달과 사회학자 알바 뮈르달 부부다. 1934년 공동 집필한 저서 ‘인구 위기’를 통해서다. 이들은 처음으로 출산을 개인이 아닌 사회공동체 문제로 보고 양성평등과 사회복지 강화를 해법으로 내놨다. 이는 집권당의 정책으로 현실화했다. 1974년에는 세계 최초로 부모 육아휴직제를 도입했다. 하지만 휴직하는 남성은 드물었다. 의무가 아닌 권고였기 때문이다. 이에 정부는 1990년부터 아이 한 명당 부모 육아휴직 총 480일 중 90일은 남성만 쓰도록 의무화했다. 육아휴직 중 급여는 75% 이상 지급됐다. 약 20년 동안 한 자릿수였던 남성 육아휴직률은 최근 25%까지 올랐다. 한 손에는 커피, 한 손으로 유모차를 끄는 ‘라테 파파’는 50년 넘게 노력한 산물이다.
뮈르달 부부의 의제는 우리 사회에도 유효하다. 이들은 저출산을 해결하기 위해선 세제 혜택 등 몇 가지 정책에 매달릴 게 아니라 ‘근본적인 사회개혁’이 필요하다고 봤다. 아이를 낳지 않으려는 경제·사회적 원인을 없애야 한다는 것이다. 이미 한국의 젊은 세대들에게 결혼과 출산은 불합리한 ‘선택’이다. 결혼을 위해 비싼 집값과 대출을 떠안았는데 아이까지 낳으면 ‘헬육아’에 시달려야 한다. 저출산 대책이 다양하다고는 하지만, 혜택을 체감했다는 사람은 거의 없다. 육아휴직이라도 할라치면 소득은 줄고 경력은 단절되기 십상이다. 직장 내 차별은 덤이다. 한국의 남성 육아휴직률이 4%에 불과한 이유다. 사실상 죽은 정책이란 얘기다.
저출산을 단숨에 해결할 묘책은 없다. 교육, 일자리, 주거, 환경적 요인 등이 복잡하게 얽힌 문제인 만큼 사회 인식 변화가 오랜 시간 동반돼야 해서다. 사회 분위기를 바꾸려면 정책이 뒤따라줘야 한다. 양육 비용과 사회적 부담을 줄이지 못한다면 결국, 출산에 대한 반감만 커지게 된다. 부부가 아이를 기르다가 복직해도 불이익을 받지 않고 직업적 성취를 거둘 수 있는 권리를 보장받을 때 출산율 반등은 가능하다. 이제는 사회공동체가 사람들이 아이를 낳지 않는 원인에 대해 끊임없이 물으면서 제대로 된 정책으로 답해야 할 때다. 골든 타임이 얼마 남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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