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태로운 ‘모래 제방’의 한국경제[이민종의 시론]

2023. 7. 26.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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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종 산업부장
잇단 참사에 경제력 훼손 논란
위기대응, 성장동력 미비 결과
중국 리오프닝 기대마저 찬물
반도체 등 첨단 패권 다툼 치열
산업 대변혁기 놓치면 곧 낙오
초격차 확보·쇄신 고삐 죄어야

천재지변은 물론이거니와 사건·사고, 경제현상에도 반드시 원인이 있다. 외적 변수로만 돌리지 말고 배경을 철저히 분석해 전철을 밟지 않아야 벼랑으로 떨어지는 우(愚)를 피할 수 있다. 충북 청주시 흥덕구 오송읍 궁평2지하차도 참사를 부른 부실 대응 논란 속에 교권 침해 실태가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그 와중에 한국 경제는 소리소문없이 추락했다. 지난 12일 한국은행 발표를 보면 2022년 한국의 명목 국내총생산(GDP)은 전년 대비 7.9% 감소한 1조6733억 달러로 세계 13위를 기록, 3년 만에 10위 권 밖으로 밀려났다.

일련의 일들은 우연이 아니다. 정치·경제·교육 전반의 위기대응 시스템 오류와 미작동, 성장동력의 쇠락, 훼손이 겹쳐 쓰나미처럼 몰아쳤을 뿐. 폭우 피해나 교권 침해도 분명한 사전 징후나 경보음이 있었을 것이다. 물이, 숨이 턱밑에 차오를 때까지 책임을 떠넘기거나 외면하거나 회피했을 가능성이 크다. 관재(官災), 인재(人災)다.

경제 역시 예외가 아니다. 수출 부진과 내수 침체, 3고(고물가·고금리·고환율)의 역습으로 수년째 지지부진, 저성장 국면에 처해 올해는 ‘상저하고(上低下高)’로 경기 흐름이 반등하길 학수고대하고 있지만, 대외여건은 결코 녹록지 않다. 2분기 실질 GDP 성장률은 사력을 다했는데도 0.6%에 그쳤다. 수출보다 수입이 더 줄어든 ‘불황형 성장’인 데다, 그나마 버텨 줬던 민간소비마저 꺾인 것으로 나타났다.

설상가상, 최대 교역국인 중국 경제마저 리오프닝(경제활동 재개) 효과를 거두지 못한 채 실망감을 안겼다. 지난 12∼14일 열린 대한상의 주최의 제주포럼에서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중국이 리오프닝을 한다고 했는데 그만큼 효과가 안 난다. 우리의 기대가 너무 컸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고 했다. 특히, 이창용 한은 총재는 같은 포럼에서 “우리 경제가 중국 특수에 중독돼 구조조정의 시기를 놓쳤다”고 뼈아픈 지적을 했다.

이는 상품 하나 풀어 놓으면 인구 대국이 소화해 양적 승부를 볼 수 있을 것이란 발상이 더는 중국 시장에서 통하지 않을 것이란 점을 시사한다. 1990년대부터 시작됐던 차이나 특수가 종식을 고했음을 의미한다면 지나칠까. 그사이 중국의 기술 경쟁력은 괄목할 만큼 상승했다. “한국의 대(對)중국 교역 수지가 악화했는데 코로나19, 글로벌 경기 영향이 일부 반영됐겠지만, 중국의 교역 경쟁력 상승이 동반되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적절한 대응이 시급하다”(현대경제연구원)는 지적이 나온 배경이다.

세계 각국은 반도체, 전기차, 배터리, 인공지능(AI) 등 첨단산업 기술 분야에서 패권을 쥐기 위해 숨 막히는 경쟁과 추격전을 펼치고 있다. 적도, 동지도 없다. 안주하는 순간, 덜미를 잡히고 좌초한다. 일본은 지난 23일부터 첨단 반도체 제조장비 23개 품목에 대해 대중 수출 규제에 돌입했다. 미국과 보조를 맞추며 대중 포위망에 가담한 셈이다. 미국은 이달 말 중국에 AI 반도체 수출을 통제하는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고 한다.

산업 패러다임을 주도하기 위한 기술 초격차 다툼은 총성만 없다뿐이지 전쟁터와 다름없다. 저성장 국면에서 갈피를 못 잡는 사이 한국을 앞질러 치고 나온 11위 브라질과 12위 호주의 질주는 무엇을 말하는가. 경제 성장에서 도태되는 순간 종속은 시간문제다. 상황은 이런데, 구직을 포기한 청년은 50만 명이 넘고 고갈 위기인 연금에 의존해야 하는 고령층은 두꺼워지고 있다. 냉엄한 사각의 링에서 국제 경쟁력의 견고하면서도 냉정한 승부를 기대할 수 있을지 매우 회의감이 든다. 사실 답은 나와 있다. 다만, 속도감 있는 실행이 문제다. 대중 수출 전략 전환과 경쟁적 구도에 놓인 산업 부문의 비교우위 확보를 포함한 전체 수출 구조의 쇄신과 새로운 먹거리가 될 성장동력 발굴, 국가 위기의 진원지인 인구 감소 대책의 획기적 전환, 초격차 기술과 초일류 기업 양성 및 지원을 위한 규제 완화와 투자 확대를 추진하고, 연금과 노동, 교육 등 3대 구조개혁의 고삐를 바짝 죄어야 한다. 가뜩이나 활력 없이 늙어가는 한국 경제, 변변한 보호의 둑조차 없이 거친 폭우 속에 모래 제방, 사상누각(沙上樓閣)에 방치된 형국이다. 누가 책임을 질 것인가. 시간은 우리 편이 아니다. 기다리지 않고 초조하게 흐르고 있다.

이민종 산업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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