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산행기] 돌다리도 두드리고 건너자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진다'는 속담이 있다. 모든 일에는 아무리 재주가 많고 실력이 출중하다 해도 실수하는 때가 있는 것이다. 수십 년 동안 높고 험한 산길로 다니면서 소소한 찰과상 정도는 입었지만, 큰 부상은 입지 않았다. 체력과 신중성이 뒷받침되었기 때문이라고 자만했다. 하지만 그건 착각이었다. 자만심으로 가득 찬 부주의는 큰 사고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그날이 그랬다. 높지도, 험하지도 않은 산행을 하면서 큰 부상이나 생명을 잃을 수 있는 사고가 일어났다.
조그마한 봉우리가 온통 돌부리로 이루어져 있는 암봉이었다. 정상석에서 사진을 찍고 봉우리 아래의 의자에서 점심을 먹으려고 돌비탈을 내려섰다. 그때! 갑자기 몸이 아래로 쏠렸다. "딱!"하는 소리도 귀에 선명히 들렸다. 순간적으로 바위에 머리를 부딪혔다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통증이 심했다. 몸을 일으켜 머리를 만져 보았다. 손바닥엔 피가 흥건했다. 급하게 손수건으로 지혈하고 의자에 앉았다. 주변에 있던 등산객들이 다가와 지혈을 도와주었다. 나는 안경이 벗겨져 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 그들에게 안경을 찾아달라 부탁했다. 안경은 바닥에 떨어져 있었고, 안경알 한쪽은 안경테에서 떨어져 땅바닥에 뒹굴고 있었다. 안경테는 구겨져 사용할 수 없는 상태. 등산객들은 안경을 비닐봉지에 넣어 주었다.
119에 구조를 요청했다. 시간이 지나니 머리의 상처가 어느 정도 지혈이 됐다. 나는 등산객들에게 수건을 부탁했다. 한 분이 목에 두르고 있던 머플러를 풀어주었다. 나는 그것으로 머리를 감싸서 묶었다. 옆에 있던 등산객들이 이마에도 큰 멍울이 생겼다고 말했다. 바위에 부딪히면서 찰과상과 함께 생긴 상처 같다. 손으로 만지니 불거진 상처가 만져졌다. 그들은 가지고 있던 휴지와 물티슈로 피 묻은 손과 이마를 닦아주었다. 옷에 묻은 흙먼지까지 털어줬다. 아! 이렇게 고마울 수 있을까! 모두가 자기 일인 양 발 벗고 나서서 도와주었다.
순식간에 일어난 것이라 경황이 없었다. 의자에 앉아 정신을 가다듬고 머리 이외에 다친 곳이 없는지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다행히 다른 곳은 크게 다치지 않았다. 119에서 전화가 걸려 와서 나의 위치와 부상 정도를 확인했다. 옆에 있던 등산객들은 그들에게 빨리 오라고 재촉했다. 다른 큰 사건, 사고도 잦을 것인데 구조대원들에게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나를 도와주었던 등산객들은 안산으로 하산한다고 했다. 그들은 나를 부축하며 함께 산을 내려갔는데, 하산길 내내 옆에서 배낭도 들어주고 이상이 없는지 확인해 주었다. 119구조대원들과 만나는 곳까지 함께해 준 그분들에게 다시 한번 머리 숙여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린다.
119구조대원들은 구조 차량이 있는 곳까지 내려오면서 어지럽지 않은지, 구토가 나지 않았는지, 여러 가지 질문을 했다. 응급실에서도 의사는 같은 질문을 했다. 나는 이상이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CT 촬영도 하고 찢어진 부분의 봉합수술도 했다. 다행히 CT 촬영 결과 머리에 별다른 이상은 없었다.
나는 행운아다. 다리를 다치지 않아서 스스로 하산할 수 있었기에 천만다행이었다. 얼굴에 큰 부상을 입었다든지 다리가 골절되었더라면 상당 기간 병원 신세를 졌을 것이다. 정말이지 불행 중 다행이었다.
붕대를 감은 내 모습을 본 아내는 깜짝 놀랐다. 자초지종을 설명하니 "앞으로는 산에서 더 조심하라"고 했다. 명색이 건설현장 안전담당자인데, 이런 사고를 당해 부끄러웠다. 이런 나를 보고 아내는 "앞으로 산에 갈 때는 현장에서 쓰는 안전모를 쓰고 가라"고 힘주어 말했다. 그 말에 나는 "맞는 말 같은데, 그건 산이 아니라 건설현장에서 쓰는 거야"라고 했지만, 그날 이후 안전모는 내 머리에서 지워지지 않게 됐다.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너라'는 말이 있다. 급한 것도 없었는데 무엇이 문제였을까. 어찌 보면 자만 때문이었을 것이다. 사고는 잠깐의 부주의에서 발생한다. 이번 사고를 계기로 항상 돌다리를 두드리는 심정으로 산행에 임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월간산 7월호 기사입니다.
Copyright © 월간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