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산행기] 자연 속 행복을 누린 나의 백두대간
처음으로 백두대간을 걸으며 했던 생각을 적어보고자 한다. 나의 몸무게는 98kg. 장거리 산행을 하는 건 쉽지 않았다. 그런 내게 백두대간 산행은 힘들고도 새로운 도전이었다.
모두 알다시피 홀로 백두대간을 걷는 것은 쉽지 않다. 휴대폰 지도가 있어도 뚜렷하지 않은 구간이 있고, 갈림길에서는 길을 헤매기 일쑤다. 또한 원점회귀가 불가능하고 대중교통이나 자동차로 이동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일을 하고 있어 일시종주는 무리였다. 그래서 나는 산악회를 통해 백두대간을 걸었다. 가장 현실적이고 안정적인 방법이었다.
산악회에서 만난 대간팀 사람들 중에는 고수들이 많았다. 그들은 정말 빨랐다. 남들보다 2~3시간은 일찍 목적지에 도착했다. 그들에게 속도의 비결을 묻자, 그들은 꾸준한 자기관리가 비법이라고 했다. 대간산행 고수들은 장거리 산행에서도, 오르막에서도 거침이 없었다.
반면, 나는 천천히 산에 올랐다. 내게 산행은 속도전이 아니었다. 누가 더 빨리 산에 오르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속도를 중요시 하는 건 내게 등산이 아니라 일종의 게임으로 여겨졌다. 물론 그렇게 빨리 갈 수 없었지만… 나는 내 방식대로 산을 즐겼다. 무리하지 않았고, 산을 제대로 느끼려고 했다.
백두대간을 걸으며 기억에 남는 몇몇 구간이 있다. 그중 하나는 댓재에서 백복령까지 이어지는 29.1km 거리의 구간이다. 2022년 11월 26일, 나는 12시간 걸려 이 구간을 걸었다. 출발하기 일주일 전부터 여러 블로그와 유튜브를 통해 내가 걸을 구간을 공부했다. 길이 힘들다는 소문을 들었기 때문에 철저히 준비하려 했다.
청옥산 정상으로 가는 길에 일출을 봤다. 산에서 맞이하는 일출은 자연의 일부가 된 듯한 기분을 선사해 신비롭다. 빵 한 조각으로 아침을 간단히 해결하고 서둘러 길을 나섰다. 잠시 후 연칠성령에 다다랐다. 이곳은 험한 산세로 인해 한번 오르면 빠져나갈 길이 없어서 난출령이라 불렸다고 할 정도로 깊은 산속이었다.
고적대 방향으로 보이는 풍경은 웅장했다. 발아래로 보이는 풍경은 내가 대간길을 걷고 있음을 느끼게 했다. 고적대 정상은 바람이 세차게 불었다. 그래도 견딜 만했다. 그날 나는 걷는 즐거움에 빠져 있었다. 남들보다 부지런히 걸었다. 그래서인지 이후의 산행은 쉽게 느껴졌다. 이기령, 상원산, 원방재까지 순식간에 돌파했다. 1022봉으로 가는 길은 조금 힘들었지만 한발 한발 내디디니 어느새 정상이었다. 정상에 오르니 자신감이 붙었다.
산악회에서는 13시간을 줬는데, 나는 총 12시간 걸려 백복령에 도착했다. 다른 팀원들에 비하면 느린 속도였지만 나는 만족스러웠다. 이 구간을 완주하니 왜인지 모르겠지만 의욕이 생겼다. 남은 대간산행도 무사히 잘 마칠 수 있을 것 같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는 괜히 흥이 났다. 일상에서 맛보기 힘든 희열을 느껴 행복했다.
백두대간을 걸으며 생각한 것들
안내산악회는 사회생활을 하는 현대인들에게 매력적인 상품이다. 가성비가 좋고 산행에 대한 정보와 교통 편의를 제공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나 역시 산악회에서 가지 못했던 몇몇 구간을 걷기 위해 안내산악회를 이용했다. 자차나 대중교통을 이용해 산에 가는 것보다 훨씬 저렴하고 편리했다.
불특정다수가 참여하는 안내산악회가 활성화된 것은 놀라운 일이다. 전체적인 시민의식이 발전되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 다만, 안내산악회가 제대로 된 산행문화를 견인하는지는 생각해 볼 지점이다. 시간에 쫓겨 산을 제대로 즐길 수 있는지, 그로 인해 산행 우선주의를 부추기고 있는 것은 아닌지 말이다. 안내산악회에서 모든 걸 만족할 수는 없다. 수반되는 편리함 이면에는 감수할 것들이 분명히 있다. 하지만 분명 안내산악회는 백두대간 종주에 큰 힘이 되었다.
산악회에서 만난 산대장들 또한 인상적이었다. 그들은 모두 산에 대한 지식이 굉장했고 책임감과 인내심이 뛰어난 사람들이었다. 누군가는 산대장의 전문성에 대한 의혹을 제기한다. 위험이 도처에 있는 산에서 이러한 의혹은 합리적이기도 하다. 제도적으로 전문성을 뒷받침해 줄 수 있는 무언가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산악회 산대장 자격증 제도는 어떨까? 민간 자격증으로 양성한다면 좋을 것이다. 그렇다면 안전성과 전문성을 갖춘 새로운 산행문화가 만들어질 수 있을 것이다.
산에 가는 즐거움은 무엇일까. 나는 무자비한 오르막을 올라 정상에서 환상적인 경치를 내려다볼 때 큰 만족을 느낀다. 산행하며 찍은 사진들을 집에 돌아와 볼 때 '내가 이런 곳에 갔었나?'하며 놀라는 재미도 있다. 이러한 정신적 만족감은 이전 산행의 피곤함을 잊고, 다음 주말을 기다리게 하는 원동력이다.
자연이 주는 감동은 일상에서 경험할 수 없고,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새로운 것이다. 언제 생겨났는지 가늠할 수 없는 태고의 자연, 거대한 바위와 울창한 숲, 이름 모르는 꽃과 선선한 바람. 가보지 못한 새로운 산에서 걷는 것은 더할 나위 없는 행복감을 선사한다.
대간 산행을 하며 나도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내 몸이 건강해지고 있다는 것 또한 느낀다. 더 이상 배가 나오지 않는 것도 덤이다. 중년의 나이에 이런 멋진 것을 하는 내 스스로가 자랑스럽다. 앞으로도 건강하게 오랫동안 산을 걷고 싶다.
월간산 7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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