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세의 산정무한] 나 태어난 용화 골짜기, 68년 만에 가다

김윤세 2023. 7. 26.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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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룡산 관음봉 고개에서 바라본 삼불봉과 동학사 골짜기.

지난 6월 한 달 동안 이 산, 저 산을 오른 것이 8차례이고 올해 들어 지난 6월 말까지 모두 42차례 산에 올랐다. 지난 6월 10일에는 우리나라 4대 명산의 하나인 계룡산을 홀로 등반했다.

이날 산행은 계룡산 서남쪽 용화 골짜기에서 태어나 그곳을 떠난 지 68년 만에 다시 발길을 들여놓은 것이다. 물론 서울이나 대전, 함양 등 타지에 살면서도 왠지 친근감이 들고 포근한 감을 느껴 다른 산들에 비해 자주 찾았던 산이다.

청주의 모 죽염회사에서, 죽염을 제조 생산하는 기업 대표들로 구성된 한국죽염공업협동조합 이사회 겸 단합대회를 개최했는데 회의에 참석했다가 그곳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계룡산을 찾은 것이다.

늘 함께 등반하는 아내(우성숙)는 마침 서울에서 열리는 행사에 참석하는 일정이 있어서 오랜만에 나 홀로 계룡산 종주 산행을 했다.

계룡산은 충청남도 공주시·계룡시·논산시와 대전광역시에 걸쳐 있는 산이다. 산의 이름은 주봉인 천황봉(846.5m)에서 연천봉(739m)·삼불봉(775m)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마치 닭 볏을 쓴 용의 모양과 닮았다고 하여 붙여졌다고 한다.

우리나라 4대 명산

한때, 계룡산의 이름에 관해 풍수에 밝으셨던 아버지 인산 선생께서는 '황금 닭이 알을 품고 있는 형상金鷄抱卵'에, '나는 용이 여의주를 희롱하는 형국飛龍弄珠'의 산인지라 금계의 계鷄 자와 비룡의 룡龍자를 합쳐 계룡산으로 부르게 된 것이라는 이야기를 내게 들려주신 바 있다.

아무튼 계룡산은 풍수지리상 우리나라 4대 명산으로 꼽힐 뿐 아니라, 관광지로도 제5위를 차지해 1968년 12월 31일자로 지리산에 이어 두 번째의 국립공원으로 지정받았다.

계룡산은 <정감록>에 등장하는 산이다. <정감록> '감결'에서 이심이 "…산천의 뭉친 정기가 계룡산에 들어가니 정씨 800년의 땅이다"라고 하여 한양에 도읍한 이조李朝 500년이 지나면 계룡산에 도읍한 정조鄭朝 800년의 시대가 온다고 기술했다.

'감결'의 부록인 '삼한산림비기三韓山林祕記'에도 "계룡산에 도읍지가 있으니 정씨가 이곳에 나라를 세운다. 그러나 복덕福德은 이씨에 미치지 못하지만 다만, 밝고 의로운 임금이 많이 나와 불교가 크게 일어날 것이다"라고 했다.

계룡산은 예로부터 계람산鷄藍山·옹산翁山·서악西嶽·중악中嶽·계악鷄嶽 등 여러 가지 이칭으로 불렸다. 계람산이라는 이름은 계곡의 물이 쪽빛같이 푸른 데서 나온 것이다.

통일신라 이후에는 이른바 '신라 5악' 중의 서악으로서 제를 올려 왔다. 조선 시대에는 묘향산의 상악단上嶽壇, 지리산의 하악단과 함께 이 산 신원사 뒤편에 중악단을 설치하고 봄가을에 산신제를 올렸다.

계룡산 종주는, 승용차로 신원사 정문을 통과해 소림원을 지나 금룡암 마당에서 하차해 산행을 시작했다. 약 20분 걸어서 고왕암 바로 밑 지점 계곡에 당도하니 큰 바위 위에 앉아서 쉬던 늙수그레한 등산객이 인사하면서 말을 걸어온다.

잠시 뒤 아들이 공무원인데 승진 시험에 합격해 충청남도 도청 국장으로 재직하고 있다며 아들 자랑을 늘어놓는다. 이야기가 잠시 그친 틈을 타서 작별 인사를 하고 또 오르기 시작했다. 연신 비지땀을 흘리며 거의 연천봉 고개에 다다를 무렵 앞서거니 뒤서거니 산길을 가던 부부가 휴식을 취하고 있는 계단에서 발길을 멈췄다.

연천봉에서 관음봉으로 가는 도중의 이정표.

갈증 식혀준 산객의 캔맥주

부인인 듯한 여성이 땀을 뻘뻘 흘리며 힘겨워하는 나를 보더니 "상당히 더우시죠? 집에서 얼려 온 캔 맥주가 있는데 드시겠어요?"라고 제의한다. 산에서 다른 이들에게, 배낭에 담아간 탁여현이나 맥주를 드시겠냐고 제의해 상대방이 원하면 제공한 적은 숱하게 많았지만 다른 이가 내게 제의한 적은 거의 기억나지 않을 정도여서 익숙하지는 않지만, 갈증도 심한 터라 체면 돌보지 않고 "네, 주시면 감사히 마시겠습니다"라고 대답했다.

맥주 한 캔을 다 들이켜고 연천봉 아래에서 통계 담당 공무원인 그 남편과 한동안 정치 이야기를 나눈 뒤 다시 오르막 산길을 오른다.

연천봉 고개를 지나 관음봉 고개를 넘고 매우 가파른 경사의 내리막길을 조심스레 내려가는데 내리막길임에도 오르막 못지않게 힘들고 땀이 비 오듯 쏟아진다. 은선폭포를 지나면서 이제 내리막 경사 길을 다 내려왔겠거니 여겼는데 다시 오르막길이 시작되고 오른 만큼 내리막 경사길이 더욱 길게 느껴지면서 한 걸음, 한 걸음이 더욱 힘들고 괴로울 따름이다.

지친 사람에게는, 평탄한 길을 다시 한참 오르게 한 뒤 급경사 또는 데크 계단을 길게 내려오도록 길을 돌린 국립공원 관계자들이 야속하게 느껴진다.

함양 인산가에서 저녁 무렵 만나기로 한 미국 시애틀의 박요셉 '요셉 한방병원' 원장이 도착했다는 전화를 받으니 갑자기 마음이 바빠지는데 갈 길은 아직 멀고 몸은 지쳐 동학사 입구 주차장에서 기다리는 아내에게 승용차를 동학사로 보내달라고 하여 시간을 다소 절약할 수 있었다.

이날 산행은 시작점에서 고도차 589m를 올라 763m 고지를 넘어 총거리 5.1km를 걸었으며 모두 6시간 43분이 소요되었다.

비단에 수놓은 꽃처럼 아름다운 산하山河, 신선들이나 노닐 법한 계룡산의 선경仙境을 거닐면서 중국 당나라 때 천태산에 머물면서 주옥같은 시를 읊었던 한산의 시 한 수가 떠올라 읊어본다.

한산이 깃들어 사는 곳, 깊은 산속이라

사람 발자취 끊겨 아무도 찾아오지 않네

때때로 숲속에서 새를 만나면

다 같이 어울려 산 노래를 부르나니

계곡에는 온갖 풀들이 상서로운 빛을 발하고

노송은 우뚝 솟은 산봉우리 베고 조나니

볼 만하구나, 일 없이 자연을 즐기는 나그네

너럭바위에 앉아서 한가로이 쉬고 있네

寒山棲隱處한산서은처

絶得雜人過절득잡인과

時逢林內鳥시봉임내조

相共唱山歌상공창산가

瑞草聯谿谷서초연계곡

老松枕嵯峨노송침차아

可觀無事客가관무사객

憩歇在巖阿게헐재암아

무더위 속 손수건을 머리에 쓰고 산행하는 필자.

인산가 김윤세 회장

인산가는 독립운동가이자 사상가였던 인산仁山 김일훈金一勳 (1909~1992) 선생의 유지를 펴기 위해, 차남인 김윤세 現 대표이사이자 회장이 1987년 설립한 기업이다. 인산 선생이 발명한 죽염을 비롯해 선생이 여러 저술을 통해 제시한 물질들을 상품화해 일반에 보급하고 있다. 2018년 식품업계로는 드물게 코스닥에 상장함으로써 죽염 제조를 기반으로 한 회사의 가치를 증명한 바 있다. 김윤세 회장의 대표적인 저서로는 〈내 안의 의사를 깨워라〉, 〈내 안의 自然이 나를 살린다〉 등이 있으며, 최근에는 노자 사상을 통해 질병에 시달리는 현대인에게 올바른 삶을 제시한 〈自然 치유에 몸을 맡겨라〉를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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