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광장] 최저임금의 합리적 결정
지난 19일 오전 6시, 최저임금위원회는 2024년 적용 최저임금을 올해보다 2.5% 인상한 ‘시급 9860원’으로 결정했다. 역대 최장기간인 110일의 심의를 거쳐 표결 순간까지 노사가 팽팽한 입장 차이를 보인 지난(至難)한 과정을 통해 결정된 것이다.
우리 최저임금은 최근 수년간 빠르게 올랐고, 그 수준도 이미 세계 최상위권에 이르렀다. 2000년 1600원에서 2023년 9620원으로 연평균 8.1% 인상됐는데, 이는 같은 기간 물가상승률(2.5%)의 약 3.2배에 달한다. 특히 2018년과 2019년 2년 사이 29.1% 오른 것을 비롯해 2018년부터 올해까지 48.7% 올랐고 이는 동기간 G7국가 평균 인상률 23.3%의 2.1배에 달한다.
이처럼 가파른 인상으로 실질적인 최저임금 수준을 의미하는 근로자 중위 임금 대비 최저임금 비중은 2022년 62.2%에 달해 G7국가 평균 49.8%보다도 월등히 높아졌다(OECD 기준). 이는 일반적으로 전문가들이 최저임금 적정 수준의 상한선이라고 지적하는 60% 수준을 넘어선 것이다. G7국가 중에서도 프랑스만이 60%를 약간 넘긴 수준을 오랫동안 유지하고 있을 뿐 다른 국가는 아직 60%에 도달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보면 우리 최저임금 수준을 판단할 수 있다.
이러한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과 높아진 수준은 최저임금의 주요 지급 주체인 영세 중소기업과 소상공인들에게 집중적인 부담으로 작용했다. 중소기업의 49.2%가 영업이익으로 이자비용조차 감당하지 못하는 상황(2022년 기준, 한국은행)에서 최저임금은 이제 영세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에게는 생존과 직결된 문제가 됐다.
특히 높은 최저임금 인상과 더불어 사업체 특성 차이를 무시한 일률적인 최저임금 적용이 이 영세 중소기업들과 소상공인들의 부담을 더 가중시켰다. 경제가 성장하면서 업종 등에 따라 지불능력, 생산성에서 큰 격차가 발생하는 것이 현실임에도 우리 최저임금은 단일 기준 적용을 고수해왔다. 이에 따라 2022년 기준 법정 최저임금액인 9160원을 받지 못하는 근로자 비중인 최저임금 미만 비율이 숙박·음식점업은 31.2%, 5인 미만 사업장은 29.6%에 달할 정도로 높았다(통계청 경제활동인구 부가 조사 기준). 이는 이 업종들과 규모에서 최저임금이 제대로 수용되지 못하고 있음을 방증한다.
OECD 19개국이 연령·지역·업종 등 다양한 기준을 활용해 자국 노동시장에 적합한 형태로 최저임금 구분 적용을 시행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우리 최저임금제도는 너무 경직적이고 획일적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최저임금은 사용자와 근로자가 합의로 최저임금보다 낮은 임금을 지급하더라도 법 위반이 되는 강행 규정으로, 시장에 미치는 파급력이 그만큼 크다. 우리 사회가 감내할 수 있게 운용되지 못하면 순기능보다 더 큰 부작용을 초래할 수밖에 없다. 올해 우리 경제성장률 전망치는 1980년 오일 쇼크, 1998년 외환위기,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과 같은 경제위기 때를 제외하고는 가장 낮은 1%대에 불과하다. 경제가 빠르게 성장하고 일자리가 늘어나던 시기와 달리, 지금과 같은 저성장 시대에는 생산성 증가분을 월등히 뛰어넘는 고율 최저임금 인상으로 중소 영세기업의 인건비 부담과 취약계층의 일자리 불안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1966년 미국 의회가 최저임금을 1.25달러에서 1.60달러로 28.0% 인상하자 노벨상 수상자인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Milton Friedman)은 “최저임금 인상은 피상적 사고의 힘을 보여주는 기념비”라고 비판했다. 이는 최저임금이 가난한 사람을 돕는 것이라는 대중의 선의와 믿음을 앞세워 정책으로 구현됐지만 이러한 믿음에는 사업주 부담 심화, 일자리 감소 등과 같이 최저임금 인상으로 야기되는 심각한 부작용이 충분히 고려되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인한 노동시장 변화를 면밀히 살펴보지 않고 저임금계층 보호라는 명분으로 최저임금을 급격하게 인상했던 우리 최저임금 결정 기조를 보더라도 60년 가까이 된 프리드먼의 이러한 비판은 여전히 유효한 것이 아닌가 싶다.
물론 취약계층 보호는 매우 중요한 사회적 과제지만 이는 최저임금 인상보다는 소득이 적은 근로자에게 장려금을 제공해 사업주의 직접적 부담을 덜어주는 근로장려세제(EITC) 확대와 같은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프리드먼이 지적했듯이 법이나 정책을 시행할 때 ‘의도’를 ‘결과’보다 앞세우는 실수를 더는 반복해서는 안 된다. 2024년 최저임금은 이미 결정됐지만 향후 최저임금 결정 시에는 기업 지불능력을 충분히 반영하고 업종별 구분 적용을 시행하는 등 시장의 상황이 보다 종합적으로 반영될 수 있도록 제도가 운용돼야 한다. 또한 지금과 같이 노사의 격렬한 갈등을 유인하는 최저임금 결정 체계를 개선하기 위한 고민도 필요할 것이다.
이동근 한국경영자총협회 상근부회장
zzz@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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