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피들을 지나, 사람을 공부하러 가다 [본헌터⑩]
한국의 광주와 테헤란의 미국 대사관이 몸살을 겪던 그해 1980년
*편집자 주: ‘본 헌터’는 70여년 전 국가와 개인 사이에 벌어진 집단살해사건의 수수께끼를 풀어가는 이야기다. 아무데나 버려져 묻힌 이들과, 이들의 행방을 추적하며 사라진 기억을 찾아나선 이들이 주인공이다. 매주 2회, 월요일과 수요일 인터넷 한겨레에 올린다. 극단 신세계가 글을 읽어준다.
히피들의 천국이었다.
선주의 눈에는 낯설기만 했다. 대학 정문 앞 길 너머 공원에는 늘 노숙자 차림의 젊은이들이 있었다. 공원 숲 안에 텐트를 치거나 골판지를 깔고 누워 생활 터전으로 삼았다. 해가 뜨고 학생들이 들어오면 히피들은 대학 정문 옆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 앞 광장에서는 노란 승복을 입고 징 같은 악기를 두드리며 종교의식을 하거나 피리로 쉼없이 제3세계 음악을 연주하는 히피들로 북적거렸다.
누군가는 노래를 했고, 누군가는 정치 연설을 했고, 누군가는 퍼포먼스를 했다. 아무도 그들을 무시하거나 하대하는 시선으로 보지는 않았다. 머리도 좋고, 집안도 좋은 이들이라고 했다. 전쟁보다는 평화를 추구한다고 했다. 인간이란 무엇인지를 깊이 탐구하다가 현실에서 도피해 버린 이들이라고 했다.
학생운동의 본산이었다.
1964년 9월 학생들이 캠퍼스 안에 책상을 하나 설치하고 대학당국과 긴장을 빚으면서 사건은 시작되었다. 책상 위에는 시민운동의 권리와 관련된 책이 놓였고 기금을 모집한다는 문구가 적혔다. 10월 대학당국이 책상을 치우고 경찰을 부르자, 학생들이 강경하게 저항한다. 그 대치는 장장 32시간 이어진다. 이 싸움에서의 부분적 승리는 이 대학 학생운동의 강력한 전통이자 뿌리가 되었다.
그리고 1968년 베트남전 반전 운동에서 다시 한번 불타오른다. 이때 히피는 평화운동의 주역 중 하나였다. 선주는 대학 주변의 은행 창문이 매우 높다는 사실을 기이하게 여겼다. 낮은 창문이 한때 데모대가 던진 돌맹이에 다 깨져나가면서 건물 설계를 바꾼 거였다.
1980년, 선주는 캘리포니아 버클리 대학에 입학했다. 선주에게는 히피의 천국, 학생운동의 본산으로서 버클리가 생경하고 신기했다. 하지만 그 이유로 여기에 오지는 않았다. 선주에게는 ‘인류학 분야 랭킹 탑’이라는 말이 더 끌렸다. 그래서 버클리 인류학 박사과정에 도전했다.
1979년 5월 입국한 뒤, 샌프란시스코 시티 컬리지를 다니며 ‘잉글리시 원’ 과정을 들었다. 한국으로 치면 ‘대학 국어’ 였다. 그곳에서 영어 페이퍼 쓰는 법을 집중적으로 배웠다. 입학원서에는 대학 때부터 어떤 활동을 했는지 깨알같이 적었다. 그 중심에는 대학 박물관에서 손 선생과 함께 다닌 답사가 자리했다. 무엇보다 손 선생의 추천서가 큰 구실을 했다. 손 선생이 버클리 출신이라는 점이 절대적인 유리함을 가져다주었다. 최종합격자는 세 명이었다. 선주, 그리고 에티오피아와 일본에서 온 학생들.
바야흐로 1980년이었다. 미국과 한국은 권력의 교체기를 맞이했다. 선주가 미국에 간 지 5개월 만인 1979년 10월26일, 박정희가 궁정동 안가에서 김재규의 총에 맞아 죽었다. 그보다 4일 전엔 이란의 팔레비 국왕이 미국에 도착했다. 이슬람 혁명세력에게 쫓겨나 이집트와 모로코 등을 전전하다 10월22일 뉴욕에 왔다.
미국의 카터 행정부는 한국의 독재자에게는 엄격한 편이었으나 이란의 독재자에게는 관대했다. 그 관대함은 한 달 뒤 이란 대학생들이 테헤란의 미국대사관 정문의 쇠줄을 자르고 담장을 넘어가 점거하는 초유의 사태로 이어졌다. 70명의 미국 외교관이 인질로 잡혔다. 이란 대학생들은 팔레비의 송환을 요구했다. 한 달 여 뒤인 12월12일, 서울 한복판에서는 신군부 세력의 쿠데타가 벌어졌다.
선주는 1980년 봄의 어느 날, 텔레비전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대형 헬리콥터들이 하늘을 날았다. 테헤란 미국대사관의 인질범을 제압하려는 미군 특수부대의 무력시위였다. 4월이었다. 얼룩무늬 군복을 입은 한국의 공수부대원들이 광주에서 살벌한 광경을 연출했다. 5월이었다. 미국 대사관 점거시위는 444일을 버텼다. 미군의 인질범 진압작전은 실패했다. 신군부의 광주 도청 시위대 진압작전은 성공했다. 1980년, 미국에서는 ‘강력한 미국’을 내건 보수주의자 레이건이, 한국에서는 무력으로 등장하여 ‘정의사회구현’의 구호를 내건 전두환이 권력을 잡았다.
늘 시끄럽고 생동감 넘치는 대학 정문을 통해 강의실 쪽으로 들어오면 버클리는 딴 세상이었다. 학구적 분위기가 넘쳐났다. 1980년 봄, 선주는 명성으로만 전해 듣던 글린 아이작(1937~1985) 교수와 마주앉았다. 입학원서에 “꼭 가르침을 받고 싶다”고 쓴 꾹꾹 이름을 눌러쓴 그 교수였다. 모잠비크를 현장으로 하여 아프리카 구석기 시대를 연구한 학자였다. 선주는 체질인류학을 공부하고 싶다고 했다. 글린 아이작 교수는 고개를 저었다. 그는 말했다. “나는 고고학자다. 체질인류학을 하려면 하월한테 가라.”
프란시스 하월(1925~2007) 교수는 세계에서 다섯 손가락에 꼽히는 체질인류학자라고 했다. 그는 중기 구석기 시대와 유럽의 호모 네안데르탈인 연구로 학문적 업적을 쌓아온 인물이었다. 인류학의 한 분야인 체질인류학(Physical Anthropology)은 과거에서 현재까지 인류를 포함한 영장류에 대한 생물학적 특징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체질인류학에 유전학을 더하면 생물인류학이었다.
선주는 대학원 석사과정 시절을 떠올렸다. 1973년 2월, 폐결핵을 이겨내고 마침내 학부를 졸업했다. 대학원에 들어갔다. 고고학 전공이었다. 고고학이란 유적과 유물이라는 불완전한 재료를 통해 인류의 소멸된 문화를 재현하는 학문이다. 고고학과 학생들 중엔 돌, 즉 연모를 연구하는 학생이 많았다.
그 다음은 동물이었다. 선주는 사람을 공부하는 체질인류학을 하고 싶었으나, 참고할 책이 거의 없었다. 1940년대 어니스트 앨버트 후튼이 쓴 ‘유인원으로부터’(Up From the Ape)라는 영어책이 유일했다. 광화문 사거리, 영어원서를 파는 범한서적에 가보았더니 ‘체질인류학 개론’같은 두툼한 책 한 권 뿐이었다. 읽어도 당최 무슨 소리인지 알 수 없었다.
손 선생에게도 물었다. 자료를 뒤적여 몇개 주었다. 집에 와 읽어보니 문화인류학에 관한 거였다. 문화인류학은 문화에 방점이 찍혀 있다. 우리나라 문헌도 뒤져보았다. 의과대학 해부학 교수들이 쓴 책이 있었다. 나세진 서울대 의대 교수가 필진으로 참여한 ‘한국문화사대계’(고려대 민족문화연구소, 1964년 출간)였다. 여러 사람이 공동집필했다. 나 교수가 책 맨 앞에 쓴 ‘한국 민족의 체질인류학적 연구’라는 챕터를 읽어보았다. 한국인의 골격과 머리뼈에 관해 서술이 나왔다. 서울대로 나 교수를 찾아갔다. 은퇴한 상태였다. 그 제자가 주임교수를 맡고 있었다.
‘한국문화사대계’는 한국 체질인류학계의 바이블처럼 추앙되고 있었다. 그런데 읽어보니 주석이 다 일본말이었다. 1915년에 일본에서 나온 정기간행물 ‘인류지’를 번역한 책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일본 학자들은 1910~1920년대 식민지 조선을 지배하기 위한 연구의 한 방편으로 전국을 돌아다니며 조선 사람들의 체질을 조사했고 ‘인류지’엔 그 결과물이 담겨있었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독일이 나왔다. 체질인류학은 독일에서 우생학과 함께 발전했다. 체질인류학의 어두운 과거였다. 일본 학자들이 독일로 체질인류학을 배우러갔다는 자료도 나왔다.
하월 교수는 선주를 연구실로 안내했다. 가장 안 쪽엔 하월 교수의 방이 있었고, 가운데가 회의실이었다. 마지막 하나의 방에 박사과정생들이 있었다. 하월 교수는 그곳에 선주의 자리를 마련해주었다. 선주는 버클리 학생운동의 전통이 빛나는 정문 앞 광장에서 히피들을 지나 하월 교수의 방으로 등교했다.
하월은 워싱턴대학의 해부학과에서 첫 경력을 쌓은 인물이다. 해부학 교실. 선주에게 아련한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단어였다.
다음 회에 계속
글쓴이 소개
사회부 기자.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를 맡고 있다. ‘유혹하는 에디터’, ‘굿바이 편집장’, ‘대한국민 현대사’라는 책을 썼다. 2000년 베트남전 시기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에 관한 미군 비밀문서를 최초 보도했고 ‘베트남전쟁 1968년 2월12일’ 한국어판과 일본어판, 베트남어판을 냈다. 베트남전에 이어 이번엔 한국전쟁이다.
고경태 기자 k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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