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죄 시효 만료 노리고 자수한 조폭, 검찰 수사로 거짓 드러나

유영규 기자 2023. 7. 26.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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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사건 공소시효 만료를 노리고 밀항시기를 거짓 진술한 조직폭력배가 검찰 재수사로 덜미를 잡혀 살인죄로 처벌받게 됐습니다.

28년 전 서울 강남의 한 호텔에서 조직폭력배들이 집단으로 상대 조직원들에게 흉기를 휘둘러 4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사건으로 당시 조직원 대부분이 검거됐으나 2명은 도주했습니다.

이 중 1명은 지난해 공소시효 만료를 예상하고 자수했다가 검찰 수사로 살인죄 처벌을 받게 됐으며, 잠적한 다른 1명은 검찰이 공개수배했습니다.

2022년 3월 중국 선양 한국영사관에 50대 남성이 찾아와 밀항 범죄를 저질러 이곳에 왔다고 자수했습니다.

이 남성은 서 모(55) 씨로, 28년 전 서울 강남구 '뉴월드호텔 조폭 살인사건'으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폭력조직 영산파의 행동대원이었습니다.

이 사건은 영산파 조직원 12명이 1994년 서울 강남의 호텔 결혼식에 참석한 다른 조직 폭력배들에게 흉기를 휘둘러 4명의 사상자를 낸 사건입니다.

1991년 자신들의 두목이 살해당한 사건에 대한 보복이었지만 사실을 오인해 엉뚱한 폭력조직원을 상대로 무차별 폭력을 행사해 영산파 조직원 12명 중 10명이 붙잡혔고 무기징역에서 5~15년의 징역형을 선고받았습니다.

공범 중 달아난 2명은 사건 이후 자취를 감췄는데 이중 서 씨가 지난해 갑자기 중국에서 자수했습니다.

국내로 압송돼 해경의 수사를 받은 서 씨는 중국 밀항 시기를 2016년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서 씨 말대로라면, 뉴월드호텔 살인사건 발생 시기인 1994년 기준으로 살인죄 공소시효인 15년이 이미 지나 서 씨를 살인죄로 처벌할 수 없습니다.

결국 불법 밀항 혐의만 적용돼 불구속 상태로 입국해 검찰로 넘겨진 서 씨는 자유인이 돼 1년이 넘도록 일반 시민들 틈에서 생활했습니다.

뉴월드호텔 살인사건 조폭들


해경으로부터 사건을 넘겨받은 광주지검은 전담수사팀을 꾸려 서 씨의 밀항 시기부터 조사했습니다.

서 씨와 관련자들의 27년 치 계좌 정보를 확인하고, 공범들의 14년 치 교도소 접견 녹취록 등을 분석해 2005~2007년 중국에서 서 씨를 봤다는 다수의 목격자 진술과 공범들의 교도소 접견 발언 등을 증거로 확보했습니다.

자수 후 1년간 전남의 한 지역에서 살던 서 씨를 긴급체포한 검찰은 이렇게 확보한 증거를 서 씨 앞에 들이밀었고, 서 씨는 밀항 시기를 속인 사실을 자백했습니다.

조사결과 서 씨는 1994년 사건 직후 도주해 숨어 지내다가, 2003년 가을 전북 군산에서 선박을 타고 중국으로 밀항했습니다.

중국 공안의 눈을 피해 공장 등을 전전하며 도피 생활을 하면서도, 함께 검거되지 않았던 영산파 행동대장 정 모 씨와도 중국에서 수차례 만나고, 가족까지 중국으로 불러들여 재회하는 등 대범한 도피행각을 이어갔습니다.

약 20년간 오랜 해외 도피 생활에 지친 서 씨는 밀항 시점을 살인사건 공소시효(15년) 완성 이후인 2016년으로 주장하면 살인죄 처벌을 피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허위 시나리오를 꾸며 자수했습니다.

하지만 서 씨 밀항 시기가 2003년이면 '형사처분을 면할 목적으로 국외에 있는 경우'에 해당해 해외 체류 기간 공소시효는 정지됩니다.

여기에 2015년 살인죄 공소시효까지 폐지돼 서 씨는 28년 전 저지른 살인죄에 대한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검찰은 결국 서 씨를 올해 6월 살인과 살인미수 혐의로 구속기소 해 현재 재판을 받고 있고, 오늘(26일) 밀항단속법위반죄도 추가 기소됐습니다.


검찰은 뉴월드호텔 살인사건에서 달아난 주범 정동섭(55)을 오늘(26일) 공개수배했습니다.

영산파 행동대장이었던 정 씨는 서 씨와 마찬가지로 범행 후 국외 도피 사실이 확인됐으나, 압수수색 등 검찰 수사가 시작되자 눈치채고 잠적했습니다.

검찰은 서 씨와 정 씨의 밀항과 도주 행각을 도운 다른 영산파 조직원 등에 대해서도 다각도로 수사하고 있습니다.

서 씨의 오랜 해외 도피도 뉴월드호텔 사건으로 와해한 것으로 보였던 영산파가 사실은 여전히 건재했기 때문에 가능한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영산파 조직원들은 서 씨와 또 다른 도주 공범의 도피 생활을 지원했고, 국내에서는 서 씨의 경조사까지 챙겼습니다.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현재도 수감 중인 조직원에게도 영치금과 가족 생활비로 10년간 3억 2천300만 원을 지원하며 교도소 접견도 계속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광주지검 관계자는 "'검·경 조직범죄 대응 수사기관 협의회'를 구성해 경찰의 적극적인 협조를 받아 도주 중인 조직폭력배 정동섭을 끝까지 추적해 죄에 상응하는 처벌을 받도록 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사진=광주지검 제공, 연합뉴스)

유영규 기자 sbsnewmedia@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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