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변호사 살인사건 다시 ‘미제’로 남아
“정황증거만으로 살인 고의 인정 어렵다”
20년 만에 떠오른 사건 다시 수면 아래로
광주고등법원 제주 제1형사부(재판장 이재신 부장판사)는 26일 살인 등의 혐의로 기소된 김 모씨(57)에 대한 파기환송심에서 무죄를 선고한 대법원의 판결을 확정했다. 이번 재판은 대법원이 유죄로 판단한 원심(광주고법)을 파기, 사건을 다시 광주고법으로 보내면서 진행된 것이다.
이번 파기환송심 과정에서 검찰 측은 추가 증거 제시는 물론 김씨에 대한 피고인 심문도 하지 않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 부장판사는 “정황증거만으로는 살인의 고의나 공모 사실을 인정하기 어렵다”며 “즉 검찰이 제시한 증거 만으로는 살인 혐의를 인정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이번 판결로 20년 만에 수면 위로 다시 떠오른 변호사 살인사건은 다시 미제사건으로 분류된다.
검찰은 김씨가 성명불상자로부터 “이승용 변호사를 혼 내줘라”는 취지의 지시를 받고 A씨와 함께 범행을 공모한 것으로 보고 있다.
서울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한 이승용 변호사는 사법연수원 14기로 김진태 전 검찰총장과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 홍준표 국회의원과 동기이며, 서울지검 등에서 검사로 재직하다 1992년 고향 제주로 내려와 변호사 사무실을 개업했다.
이후 이 변호사는 1998년 지방선거 당시 제주도지사 후보 측으로부터 금품을 받았다는 인물의 양심선언을 돕고, 제주지역 폭력조직이 도지사 선거에 개입했다는 의혹을 제기한 바 있다.
사건 직후 수사본부를 설치한 경찰은 형사는 물론 의경까지 동원, 현장 주위를 포위해 증거물 찾기에 나섰고 현상금도 걸었다.
심지어 반상회까지 열어가면서 사건 해결에 강한 의지를 보였다.
그러나 우발, 원한, 치정 등 어디에서도 실마리는 나오지 않아 사건은 미제 살인사건의 표본으로 남았다. 당시 이 변호사 사건 기록은 6000페이지에 달하는데, 2개의 라면상자에 담겨 봉입된 채 제주경찰 문서고에 보관됐다.
하지만 김씨가 지난 2019년 10월 SBS의 ‘그것이 알고 싶다’에 출연하며 반전을 맞았다.
김씨가 방송에서 “이 변호사에 대한 상해를 사주받고 A씨와 함께 범행했는데 일이 잘못돼 이 변호사가 사망했다”는 취지로 인터뷰를 한 것이다.
경찰은 이후 재수사에 나서 캄보디아에 불법 체류 중이던 김씨를 체포했다. 그러나 지난해 2월 1심에서는 김씨의 협박 혐의(방송 PD 협박)만 유죄로 인정하고 살인 혐의에 대해선 무죄로 선고했다.
당시 1심 재판부는 “성명불상의 사주가가 발각될 위험을 감수하고 살인을 지시했을지부터가 의문”이라며 “특히 검찰이 제시한 증거가 상당 부분 가능성에 관한 추론뿐이지 직접적인 증거는 없다. 즉 피고인에 대한 범죄 증명이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반면 항소심에서는 상황이 반전됐다.
같은 해 8월 항소심 재판부는 “김씨가 범행을 모의·실행하는 과정에서 A씨의 행위로 이씨가 사망할 수도 있다는 점에 대해 미필적 인식이나 예견을 하고 이를 용인하며 기능적 행위지배를 통해 실행 행위를 분담했다”며 징역 13년 6개월(살인 12년·협박 1년 6월)을 선고했다.
기능적 행위지배란 두명 이상이 범죄 수행에 필수 불가결한 역할을 분담했을 때 공모 관계를 인정할 수 있다는 형법 이론이다. 예를 들어 절도 범죄에서 물건을 훔치지 않고 망만 봤다고 해도, 망보는 것도 절도에 꼭 필요한 역할을 분담한 것이기 때문에 방조범이 아니라 절도죄의 공범으로 처벌된다.
항소심 판결로 20여년 만에 사건이 해결될 것으로 보였지만, 대법원의 판단은 또 달랐다.
올해 1월 12일 대법원 2부(주심 천대엽 대법관)는 “김씨의 제보와 진술 주요 부분이 객관적 사실과 배치되고, 범행 현장 상황 등만 종합하면 A씨와 김씨의 살인 고의 및 공모를 인정하기 어렵다”며 “A씨가 피해자와 몸싸움 과정에서 흉기를 휘둘러 숨지게 했더라도 살인의 미필적 고의만 인정될 수 있다. 즉 이 변호사가 사망한 것은 싸움 과정에서 발생한 것이기 때문에 현장에 있지도 않던 김씨에게까지 살인의 고의와 공모 사실을 인정할 수 없다”며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광주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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