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쿵푸보다 태권도!” 불가리아 옛 왕가, 태권도에 빠지다
3월 3일 불가리아 옛 왕실의 왕세손 시메온 하산 무뇨즈(16)가 이렇게 말하며 부모를 졸랐다. 무뇨즈는 이날 불가리아에서 열린 ‘제1회 불가리아 태권도 오픈’에서 선수들의 겨루기 경기를 참관하다 태권도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평소 동양권 무술에 관심이 많던 무뇨즈는 과거 중국의 쿵푸(功夫)를 배워봤는데, 발차기 동작이 주가 되는 태권도가 손을 많이 쓰는 쿵푸보다 더 멋지게 느껴진 것이다.
이후 무뇨즈는 불가리아 왕실이 태권도에 관심을 갖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됐다. 무뇨즈의 말을 들은 외할아버지 시메온 2세(86)는 박상현 불가리아태권도협회 명예부회장(46)에게 무뇨즈의 태권도 지도를 부탁했다. 무뇨즈는 태권도 사범이기도 한 박 부회장을 따라 4월 정식으로 태권도에 입문했다.
불가리아의 문화·외교 사절 역할을 일부 담당하는 옛 왕실이 한국의 국기(國技)인 태권도에 관심을 갖게 된 건 희소식이다. 세계어린이태권도연맹은 불가리아 왕실의 협력을 통해 태권도 세계화에 박차를 가하기로 했다. 무뇨즈의 어머니인 칼리나 공주(51)를 연맹의 명예총재로 임명해 태권도를 세계 각국 왕실에 알리는 일에 힘을 쏟아줄 것을 요청한 것이다. 세계어린이태권도연맹은 13세 이하 어린이들의 각종 태권도 활동을 지원하는 사단법인이다.
칼리나 공주의 남편인 키틴 무뇨즈(65)도 태권도 세계화를 위해 앞장서기로 했다. 키틴 무뇨즈는 유네스코(UNESCO·유엔교육과학문화기구) 집행위원회의 위원이자 친선대사다. 태권도의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ICH) 등재에 결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 인물이다. 태권도의 유네스코 ICH 등재를 위해서는 집행위원회의 심의를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칼리나 공주 내외는 태권도가 지닌 5대 정신 중 하나인 ‘예의’의 가치에도 주목하고 있다. 칼리나 공주는 “유럽에서는 최근 가족의 해체가 심화되면서 부모, 자식간의 화합과 존중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 유럽인들이 예의범절을 중시하는 태권도를 수련하다보면 찢어진 가족이 하나로 융합되고, 사회도 지금보다 안정을 찾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를 위해 칼리나 공주 내외는 ‘월드로얄컵’이라는 태권도 대회를 개최하기로 했다. 영국, 네덜란드, 덴마크, 사우디아라비아 등 왕실의 명맥이 이어지고 있는 왕가들과 논의 끝에 13세 이하 어린이 태권도 수련인과 그들의 부모가 함께하는 ‘가족 태권도 대회’를 기획한 것이다. 세계어린이태권도연맹이 주최하고 불가리아 왕실이 주관하는 제1회 월드로얄컵은 12월경 불가리아에서 막을 올릴 예정이다.
월드로얄컵의 핵심 가치가 가정의 화합인 만큼 일반적인 태권도 대회와는 평가 기준이 다르다. 기술 평가는 전체 점수의 30%에 불과한 대신 부모와 자식간 연대와 화합 항목이 70%를 차지한다. 품새 종목의 경우 부모와 자식간 합을 얼마나 잘 맞추는지가 주된 평가 요소다. 겨루기 종목에서는 부모가 코치를 맡고, 자녀가 선수로 출전하게 되는데 대결에서 이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부모와 자녀 사이의 대화와 인사 등 언행을 통해 매기는 점수가 훨씬 크게 반영된다.
박수남 세계어린이태권도연맹 총재(76)는 “칼리나 공주의 연맹 명예총재 임명을 계기로 태권도의 세계화가 가속화될 것으로 보인다. 연맹은 태권도가 유네스코 ICH에 등재되고, 월드로얄컵도 매년 개최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강동웅 기자 lep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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