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쿠오카 현장] ‘세계 6등’ 이호준, 한국 수영계에 나타난 복덩이
전문가 “둘은 파트너이자 라이벌. 앞으로 같이 성장할 것”
혼자 가면 빨리 갈 수 있지만, 함께 가면 멀리 갈 수 있다.
이호준(22·대구시청)은 25일 열린 2023 후쿠오카 세계수영선수권대회 경영 남자 자유형 200m 결선(일본 마린 메세 후쿠오카홀)에서 1분46초04라는 기록을 작성하며 최종 6위로 레이스를 마쳤다.
메달을 목에 걸진 못했다. 그러나 뚜렷한 족적을 남겼다. 황선우(20·강원도청·동메달)와 함께 한국 수영 역사상 처음으로 경영 종목 세계선수권 결선에서 두 명의 한국 선수가 물살을 가르는 새로운 역사를 합작했다.
그동안 한국 선수들은 결선에서 항상 외로웠다. ‘선배’ 박태환(34)과 황선우는 언제나 혼자 결선에서 고군분투해야 했다. 역영을 마치고 “수고했다”고 편안하게 대화를 주고받을 선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젠 두 명의 한국 선수가 최고의 무대에서 마지막 순간을 함께하는 모습을 더 자주 볼 수 있을 전망이다. 그만큼 한국 수영이 상향평준화 된 채 발전해왔다는 뜻이다.
이호준은 경기 뒤 취재진의 양해를 구하며 물을 벌컥벌컥 들이마셨다. 이틀(24·25일)간 전력으로 세 번의 레이스(예선·준결선·결선)에 온 힘을 쏟아 부었기 때문이다. 그는 “세계선수권 개인전 결선에 진출한 것도 처음이고, 이틀 동안 3번 연속 200m 경기를 뛴 것도 처음이라 걱정이 많았다. 오늘 기록이 안 나오면 어떡하지 걱정했는데, 정신적으로 잘 이겨낸 것 같다”면서 “올해 (9월) 있을 (항저우) 아시안게임뿐 아니라 내년 파리 올림픽을 준비하는 데도 큰 도움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세계 6위라는 호성적은 이호준조차 예상 못한 성적이다. 그는 결선에 앞서 본인은 다른 선수들에 비해 많이 부족하고, 도전하는 입장이라고 거듭 밝히며 자신을 낮췄다.
지난 세계수영선수권에서 아픈 기억들도 있었다. 이호준은 영훈고 3학년이던 2019년 광주 대회에 처음 출전해 자유형 200m에서 31위, 400m에서 22위에 그쳐 예선에서 연거푸 고배를 마셨다. 세계의 벽은 높았다. 3년 뒤 열린 지난해 부다페스트 대회에선 개인전엔 이름도 못 올리고, 단체전(계영 800m)만 뛰었다.
하지만 이호준은 좌절하거나 겁먹지 않고 착실하게 물살을 가르며 도약했다. 그는 황선우 등 다른 동료들과 함께 지난 2월 초부터 한 달 넘게 호주에서 ‘지옥’ 훈련을 했다. 현지에서 그는 호주 경영 대표팀 지도자 출신 리처드 스칼스 가르침을 받았다. 스칼스 코치는 캐머런 매커보이(29·2015년 카잔 세계대회 자유형 100m 2위), 일라이자 위닝턴(23·2022 부다페스트 대회 자유형 400m 1위) 등 세계적인 수영 선수들을 길러낸 명장. 야외 수영장에서 전보다 2배 가까운 강도의 연습을 소화하며 체력과 지구력을 보완했다. 얼굴이 검게 그을릴 정도였다.
땀은 배신하지 않았다. “결선에 진출할 수 있을까라는 의심이 많이 들었다. 근데 시합은 끝날 때까지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걸 (이번 대회를 통해) 배운 것 같다”며 “다음 대회는 더 철저히 준비하겠다”고 예고했다.
황선우와 이호준의 동반 상승은 한국 수영계에 호재다. 김동현 국민대 체육대 교수(상하이 동아시안게임 자유형 200m 은메달리스트)는 “황선우와 이호준이 서로 함께 갈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됐다”며 “박태환은 혼자 독보적으로 잘했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해외로 눈을 돌려 훈련을 하고 그래야 했다. 둘은 파트너이자 라이벌이다. 앞으로 같이 성장을 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주목했다. 스포츠에서 선의의 경쟁은 투지를 불태우게 만든다.
이호준은 본인에게 엄격하다. 좀처럼 자랑을 늘어놓지 않는다. 세계 6등인데도 말이다. 기자는 이호준에게 자신에 대한 칭찬을 좀 해달라고 부탁했다. “작년 선수권대회가 끝나고 나서부터 ‘결과에 상관없이 열심히 준비하자’라는 마음을 많이 먹고 준비를 했고, 그런 마음이 계속 이어져 와서 이번 대회에서 정말 좋은 성적을 거뒀다. 이런 제게 칭찬을 많이 해주고 싶다”면서 “만족은 없습니다. 그래도 한 해 한 해 성장해 나가는 것 같아요. 앞으로도 멈추지 않고 계속 성장해 나가겠습니다.”
이호준의 성장은 물론이고 도전도 계속된다. 이호준은 이제 28일 열리는 남자 계영 800m 경기를 준비한다. 황선우, 김우민(22), 양재훈(25·이상 강원도청) 네 선수가 자유형을 200m씩 헤엄쳐 최종 시간을 합산해 순위를 가리는 종목이다. 이들은 최초로 이 종목에서 세계선수권 입상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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