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목소리, 그리고 희대의 패션 아이콘

2023. 7. 26.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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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프랑스를 대표하는 수많은 예술가들 중 유독 제인 버킨의 위치는 독보적이었다. 

심지어 그녀는 영국 런던 출신이었고 2001년도에는 대영 제국 훈장을 받기도 했다. 실제로 본인 또한 프랑스어를 할 때 영어 악센트가 없었다면 자신의 경력이 다르게 전개되었을 것이라 말했다. 

모델과 영화 배우로 경력을 시작한 제인 버킨은 가수이자 활동가였고 동시에 한 시대의 아이콘에 다름 아니었다.

지난 2019년 스위스 팔레오 페스티벌서 공연하는 제인 버킨 (사진=저작권자(c) EPA/MARTIAL TREZZINI/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1946년, 제인 버킨은 런던에서 군인인 아버지와 배우인 어머니 사이에 태어났다. 

모델로 활동하다가 17세 무렵 그레이엄 그린의 연극에 출연했고 이후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의 걸작 <욕망>에도 얼굴을 비췄다. 이후 영화 음악가 존 배리를 만나면서 19세 무렵 존 배리와 결혼한다. 

제인 버킨이 스타덤에 올라설 수 있었던 것은 세르쥬 갱스부르와의 예술적, 개인적 관계 때문이기도 했다. 

제인 버킨은 존 배리와 이혼한 이후 1968년 프랑스로 건너오면서 프랑스 영화 <슬로건>을 통해 세르쥬 갱스부르와 만났다. 

이후 이 두 사람은 세기의 커플이 됐는데 결혼은 하지 않았고 사실혼 관계를 유지하면서 샬롯 갱스부르를 낳았다. 

이 커플은 영화는 물론 음악활동까지 함께했다. 특히 두 사람이 함께 부른 1969년도 싱글 ‘Je t’aime…moi non plus’는 노골적이고 도발적인 가사로 인해 대부분의 국가는 물론 교황청에서도 금지했던 것으로 유명하다. 

외설시비 때문에 금지됐지만 정작 싱글은 수백만 장씩 팔려 나갔고 세르쥬 갱스부르는 교황청을 두고 “우리의 가장 위대한 홍보인”이라 칭하기도 했다. 

사랑에 목숨 건 프랑스인 특유의 분위기가 곡 내내 전개되는데, 곡은 UK 차트 1위에 등극하고 제인 버킨은 프랑스로 이주해 불어로 부른 노래로 영국 차트 정상을 차지하는 진기록을 남기게 됐다. 

사실 이는 세르쥬 갱스부르가 과거 불륜 관계였던 브리짓 바르도를 위해 만든 노래였지만 헤어지면서 이후 함께 영화를 찍던 제인 버킨에게 한 옥타브 높게 불러줄 것을 요청하면서 녹음된 것이었다. 

제인 버킨의 히트곡 ‘Je t’aime…moi non plus’를 수록한 앨범 <Jane Birkin/Serge Gainsbourg>에는 쇼팽의 ‘전주곡 4번 마단조’에서 영향 받은 또 다른 히트 곡 ‘Jane B’, 그리고 과거 프랑스 갈에게 줬던 ‘Les sucettes’ 등을 수록하면서 시대를 대표하는 앨범이 됐다. 

당시 음악 제작 의욕이 정점에 달했던 세르쥬 갱스부르의 감각과 노래하는 즐거움이 전면에 드러난 제인 버킨의 가성이 가장 이상적인 곳에서 만난 작품이었다. 세르쥬 갱스부르, 제인 버킨의 전성기였고 또한 프렌치 팝이 가장 빛나고 있던 시기였다. 

배우 제인 버킨(왼쪽)과 세르쥬 갱스부르가 1974년 5월 16일 프랑스 칸 영화제에 참석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저작권자(c) AP/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유독 국내에서 사랑받았던 제인 버킨의 곡들이 있다. 영화 <끌로드 부인>의 주제곡 ‘Yesterday Yes A Day’는 특히 프렌치 팝/샹송 애호가들을 넘어서는 사랑을 받았으며, 1973년도 앨범 <Di doo dah>의 타이틀 곡 또한 90년대 과자 CF에 삽입되는 등 그 인기를 쉽게 확인할 수 있었다. 

세르쥬 갱스부르와 이별한 이후에도 꾸준히 좋은 앨범들을 내놓았는데, 아랍과 북아프리카 음악에 영향받은 <Arabesque>, 성공적인 듀엣 모음집 <Rendez-Vous>, 세르쥬 갱스부르의 곡들을 오케스트라 편곡으로 재구성한 <Birkin/Gainsbourg: le symphonique> 등 모든 앨범에서 일관된 아름다움을 뿜어냈다. 

그리고 마치 삶의 끝을 내다보는 듯한 2021년 작 <Oh! Pardon tu dormais>는 결국 그녀의 마지막 앨범으로 남겨졌다. 존 배리 사이에서 낳았던 딸 케이트 배리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이 앨범, 그리고 그녀의 건강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끼쳤다. 

캐주얼하면서 포멀한 룩으로 앵글로-프렌치 스타일을 정착시켰던 제인 버킨이었고, 그녀를 모르더라도 ‘버킨 백’은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었다. 

과거 제인 버킨은 시장에서 구입한 투박한 등나무 바구니를 시상식장에까지 들고 다닐 정도로 애용했는데, 1984년 무렵 H사의 CEO 장-루이 뒤마가 우연히 제인 버킨의 비행기 옆자리에 앉게 되면서 제인 버킨의 요청대로 ‘뭐든지 들어가는 가방’을 제작해 주기로 약속한다. 

그렇게 실용적이면서도 스타일리시한, 하나의 상징이 되어버린 버킨 백이 탄생했다. 그녀는 가방의 판매 수익에서 얻은 로얄티를 사회에 환원했고 자신의 가방에는 아웅산 수지의 스티커 같은 것을 붙이고 다니면서 과거 등나무 가방처럼 거칠게 사용했다. 

제인 버킨은 자신의 목소리로 세계를 매료시켰고 뿐만 아니라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이들을 대신해 활동가로서의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아웅산 수지의 석방운동 및 각종 정치적인 시위에 참여했고 망명으로 인한 이민자 지원, 그리고 환경운동 또한 직접 전개시켰다. 일본 대지진때도 일본을 방문해 모금을 도왔다. 자신 소유의 버킨 백 또한 경매에 내놓아 자선단체에 기부했다.

2023년 7월 16일, 제인 버킨은 파리에 위치한 자택에서 눈을 감았다. 심장병을 지니고 있었고 2021년에는 가벼운 뇌졸중을 앓기도 했다. 그 무렵 건강상의 이유로 콘서트가 취소됐다. 

한동안 제인 버킨에 대한 소식이 뜸하자 그녀 답게 SNS에 “미안, 자고 있었어요!”라는 유머러스 한 글을 남기기도 했다. 당시 그녀는 요양 중이었다. 

영국 출신 가수 겸 배우 제인 버킨이 지난 16일(현지시간) 향년 76세로 별세한 가운데 한 시민이 버킨의 프랑스 자택을 찾아 추모하고 있다. (사진=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제인 버킨의 죽음에 수많은 이들이 애도를 표했는데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또한 “프랑스의 아이콘이자 결코 우리 곁을 떠나지 않을 완벽한 예술가”라며 추모하는 글을 남겼다.  

아마도 가장 유명한 프랑스의 목소리가 바로 제인 버킨일 것이다. 포크와 사이키델릭, 그리고 프랑스 특유의 쉬크함과 눈부신 소리가 제인 버킨의 음악에 고루 분포되어 있다. 

속삭이는 창법, 그리고 매력적인 목소리 톤을 바탕으로 위대한 갱스부르 시대, 그리고 이후 자신만의 스타일을 완성한 시기를 거치면서 사망 직전까지 매우 신중하고 유쾌하게 스스로의 커리어를 굳건히 이어갔다. 

들으면 들을 수록 마음에 남는, 매우 충실한 감정의 떨림을 지닌 그녀의 노래들이 여전히 아득하게 세상을 취하게끔 유도한다. 

☞ 추천 음반

◆ Baby Alone in Babylone (1983 / Philips)

세르쥬 갱스부르와의 이별, 그리고 화해를 거쳐 세상에 나온 작품. 

타이틀 트랙의 경우 브람스의 <교향곡 3번> 멜로디에 갱스부르의 가사를 올린 형태로 완성됐는데 이는 G사의 2019년 S/S 파리 패션 위크에서 직접 제인 버킨에 의해 불려 지기도 했다. 

국내에도 당시 정식 발매됐으며, 그녀의 앨범들 중 가장 많이 판매된 작품이기도 하다.

◆ Ex fan des sixties (1978 / Fontana)

앨범에 수록된 ‘L’aquoiboniste’의 경우 일본 드라마에 삽입되면서 일본에서 인기를 끌기도 했으며, 제목만큼이나 우울감으로 가득한 ‘Depressive’는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8번 <비창>에서 그 멜로디를 가져왔다. 

본 앨범 녹음 당시 제인 버킨은 심적인 어려움을 겪었다는데 결국 녹음을 중단하고 6개월 후 에서야 다시 시작할 수 있었다고 한다.

◆ 한상철 밴드 ‘불싸조’ 기타리스트


다수의 일간지 및 월간지, 인터넷 포털에 음악 및 영화 관련 글들을 기고하고 있다. 파스텔 뮤직에서 해외 업무를 담당했으며, 해외 라이센스 음반 해설지들을 작성해왔다. TBS eFM의 <on the="" pulse=""> 음악 작가, 그리고 SBS 파워 FM <정선희의 오늘 같은 밤> 고정 게스트로 출연하기도 했다. 록밴드 ‘불싸조’에서 기타를 연주한다. samsicke@hanmail.net</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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