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컬 인사이드] 밭으로 출근하는 셰프... ‘달콤한 카펫 위의 구운 여름’은 어떤 맛일까?
탐스럽게 익은 토마토, 반짝반짝 윤이 나는 보랏빛 가지, 향긋한 복숭아...
여름만큼 자연의 생명력을 강렬하게 느낄 수 있는 시기가 있을까요.
자연의 향이 가득한 제철 채소를 텃밭에서 바로 식탁으로 올리는 ‘특별한 식당’이 충북 괴산에 ‘반짝’ 문을 열었습니다.
오롯이 자연의 힘으로 길러낸 채소들을 제철의 모양대로 온전하게 접시 위에 담아내는 건 ‘하지희 셰프’의 몫입니다.
프랑스 ‘르 꼬르동 블루’를 수료한 실력자이기도 한 그녀는 이곳에서 유럽 가정식 비건 요리를 손님에게 내놓습니다.
농촌마을의 작은 식당이 ‘미식 트렌드’를 이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요.
이 모든 건 괴산의 젊은 농부들과 ‘제철의 즐거움’을 전하는 일에 의기투합한 결과입니다.
밭으로 출근하는 셰프, 하지희 씨의 ‘괴산살이’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Q. 괴산의 젊은 농부들과 인연을 계기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계시죠. ‘계절의 식탁’, 간단히 소개를 해주세요.
계절의 식탁은 매주 금요일과 토요일 저녁만 운영하는 팝업 식당이에요, ‘유럽 가정식 채식 코스 요리’를 맛보실 수 있고요. 지역 농산물로 요리를 해서 제공하고 있어요.
Q. 요리명이 굉장히 ‘쁘띠’합니다. 그리고 생소하고요. 직접 개발한 메뉴들인가요?
프랑스에서는 요리 이름을 좀 독특하게 시적으로 짓는 걸 좋아하더라고요.
제가 좀 아쉽다고 느껴졌던 게 비건 요리는 일반 요리를 빌려와서 앞에 비건을 붙이는 경우가 많은데, 그러면 원래 그 음식을 원하던 사람은 자기가 알던 맛이 아니라고 생각해서 부정적으로 느끼는 경우가 꽤 많았어요.
그래서 아예 새로운 이름을 붙여보자 해서 요리 이름을 붙이는 걸 고집하고 있어요.
Q. 비건이 아니더라도 새로운 문화의 음식을 접하는 건 일종의 즐거운 경험이잖아요. 충북 괴산에서 맛보는 ‘유럽 가정식’ 어떨지 궁금한데요?
제가 학교에서 배웠던 것도 있고요, 제가 남편이랑 유럽 여행을 좀 오래 다녔었는데 곳곳에서 가정식을 배운 게 좀 있어요. 그런 것들을 조합해서 구할 수 있는 재료들로 조금 변형을 해서 만들고 있어요.
지역 특성에 따라서 작물이 가지고 있는 맛이나 작물 종류도 많이 달라져서 저희가 계속 개발을 하는 수밖에 없더라고요.
Q. 사실 ‘비건’ 메뉴만을 그것도 코스 요리로 맛볼 수 있는 식당은 비수도권에서 찾아보기 힘든데요. ‘비건’을 고집하는 이유가 있으신가요?
저희 부부는 둘 다 비건이에요.
제가 식당 일을 오래 해보니까 버려지는 음식이나 쓰레기 문제가 심각한 게 계속 눈에 보여서 관심을 좀 가졌었는데... ‘환경’ 때문에 비건이 된 셈이에요.
비건이 된 지는 몇 년 됐는데 사실 채식을 고집한다기보다 저희가 먹고 싶지 않은 걸 식당에 내는 건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해서... 그냥 저희가 먹고 싶은 요리를 만들고 있어요.
Q. 지역 분들도 그렇고 타지에서 일부러 찾아오는 분들도 많다고 들었어요. 기억에 남는 손님 있으세요?
늦봄에 저희가 가오픈을 했을 때인데, 아이들이 온다고 해서 좀 걱정을 했었어요. 채식이기도 하지만 그때 메뉴가 봄나물을 많이 활용했거든요. 두릅이라든지 미나리라든지...
아이들이 그다지 선호하지 않는 재료들인데 저희는 메뉴가 하나뿐이어서 아이들이 먹을 게 있을까 했는데 오히려 정말 잘 먹어주는 경우가 많아서 깜짝 놀랐어요.
비슷한 느낌으로 남성분들 중에 끌려오신 분들이 몇 분 계셨어요.
자신은 원래 굉장한 육식주의자인데 아내가 궁금해서 왔다는 분이 있었는데, 그분들이 나가면서 “나는 사실 김치도 안 먹는 사람인데 오늘 정말 잘 먹었다”라고 해주셔서 그게 좀 기억에 남는 것 같아요.
Q. 괴산살이는 어떤지 들어보고 싶어요. 먼저, 프랑스에서 충북 괴산으로 오게 된 이야기가 궁금해요.
제가 프랑스에서 식당 일을 하다가 번 아웃이 왔어요. 그래서 ‘다 내려놓고 다른 일을 좀 해보자’ 해서 일을 그만두고 3년 동안 작은 봉고차 같은 밴을 캠핑카로 개조해서 여행을 다녔어요. 여행을 다니면서 다른 유럽 국가에 있는 요리들을 맛보는 기회가 됐죠.
한국으로 들어온 건 작년 12월 쯤이에요. 충북은 저희가 전혀 모르다가 저희 친정 부모님이 충북 쪽으로 이사를 오셔서 저도 처음 둘러봤는데 되게 고즈넉한 느낌이 좋더라고요. 그래서 충북 지역으로 알아봐도 괜찮겠다 하다가 괴산이 유기농 산업이 발전돼 있다는 걸 듣고 관심이 갔어요. 저희도 비건을 선택한 이유가 환경과 관련이 있으니까 저희와 연계성이 좀 있겠다 싶었어요.
둘러보니까 재미있는 일들이 많은 것 같아서 구경 왔다가 그날 바로 집을 구했어요. 귀농인의 집이요. 운 좋게 자리가 있어서 들어왔어요. 조만간 이사를 가야 되지만, 괴산으로 오는 데 상당히 큰 역할을 한 것 같아요.
Q. 끝으로 셰프님의 앞으로 계획, 괴산에서 어떤 삶을 이뤄나가고 싶은지 얘기해주세요.
일단 ‘계절의 식탁’ 프로젝트는 작물이 날 때까지 운영할 계획이라서요. 11월 정도까지 운영할 예정입니다.
저희가 원래 괴산에 들어왔을 때 식당 겸 카페 이런 곳을 열고 싶다는 생각으로 들어왔어요. 그런데 있다 보니까 지역 분들이 원하는 것과 또 제가 원하는 삶을 절충할 수 있는 방안이 여러 가지가 있는 것 같아요. 식당 일 말고 클래스라든지 케이터링 이런 것도 조금씩 하고 있거든요. 글 쓰는 것도 계속하고 싶고, 다양한 일들을 해보면서 재미있게 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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