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호·스’ 의 계절… 펼치면 서늘해진다

박동미 기자 2023. 7. 26. 09:15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 국내 대표 ‘추·호·스’ 출판사가 추천하는 ‘원픽 작가’
여름이다. 그리고 추리, 호러, 스릴러(‘추호스’) 소설의 계절이다. 무엇이든 읽고 싶지만, 막막한 독자들을 위해 국내 대표 ‘추호스’ 전문 출판사들로부터 ‘원 픽’ 작가와 작품을 꼽아달라 했다. 세상은 넓고, 서늘하고 오싹한 작품은 넘치지만, 올 여름, 단 한 권만 읽어야 한다면 말이다. 출판사 대표도, 직원도, 그리고 독자들도 ‘덕후’인 게 ‘추호스’의 세상이다. 길을 잃지 않도록, ‘덕후’들의 도움을 받아보자. 이곳에 내비게이션이 있다면, 맞춤한 안내 말은 이것이다. “이 작가를 따라가시오.”
게티이미지뱅크

■ 북스피어 PICK - 고이케 마리코 ‘이형의 것들’

日 호러 장르의 대가가 쓴 ‘명품 괴담집’

북스피어출판사의 ‘간판 작가’는 일본 미스터리 소설 거장 미야베 미유키다. 하지만 출판사는 올여름, ‘픽’하고 싶은 작가로 다소 낯선 이름을 꺼냈다. 고이케 마리코. 미야베에 비해 국내 인지도는 떨어지지만, 데뷔부터 화려했고, 줄곧 그 행적도 화제인 인물이다. 또, 70대인 지금도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으니, 여러모로 흥미롭고 귀한 작가다.

본래 출판사 직원이었던 고이케는 작가가 되고 싶어 퇴사 후 첫 책 ‘지적인 악녀를 권함’으로 히트를 치고, 이른바 ‘셀럽’이 된다. 1970년대 ‘남자에게 휘둘리지 말라’ ‘결혼은 필요 없다’ 등을 설파한 책은 당시 70만 부가 팔리며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다. 그러나 유명세는 이내 조리돌림이 됐고 ‘남자를 잡아먹는 악녀’가 된 고이케는 수년간 잠적한다. 그리고 소설가로 재등장해 추리작가협회상을 받더니, 연애소설의 새 지평을 열었다는 ‘사랑’으로 나오키상까지 받아버린다. 지금은 ‘호러 소설의 명수’. “서늘하지만 따스하고 무섭지만 어딘가 그리운 느낌.” 이 기묘한 평이 궁금하다면, ‘이형의 것들’이 있다. “명품 괴담”이라 불리는 고이케식 괴담 6편이 실려있다.

■ 엘릭시르 PICK - 김진영 ‘마당이 있는 집’

드라마로 역주행하는 영화감독의 첫 소설

최근 가장 화제인 소설은 단연 ‘마당이 있는 집’이다. 김태희, 임지연 주연의 동명 드라마 덕에 ‘역주행’ 중이기 때문이다. 드라마가 방영된 첫 주 판매량이 그 전주에 비해 7.5배 뛰어올랐고, 현재 교보문고 주간 베스트 소설 분야 10위를 차지하고 있다.

엘릭시르출판사는 드라마 원작을 쓴 김진영 작가를 올여름 가장 주목할 작가로 소개했다. 더 이유가 필요할까. 단숨에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를 통해 전 세계인을 만나게 된 ‘이야기’는 바로 김 작가의 소설 데뷔작이다.

김 작가는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영화과를 졸업한 후 본래 영화를 연출하고 시나리오를 써왔다고 한다. 지난해엔 직접 각본을 쓰고 연출한 영화 ‘미혹’이 개봉되기도 했다. 아이를 입양한 뒤 벌어진 일을 그린 작품이다. ‘마당이 있는 집’ 역시 처음에는 영화 시나리오로 쓰기 위해 구상한 이야기였다. 그러다 한국콘텐츠진흥원 스토리창작소재 발굴과정에 선정되면서 소설로 쓰게 됐다. 소설은 마당에서 이상한 냄새가 나는 것을 시작으로, 두 가족을 둘러싼 미스터리를 속도감 있게 풀어간다.

■ 블루홀6 PICK - 오승호 ‘스완’

‘란포상’ 수상 재일교포의 미스터리 소설

©Keita Hayashi

현재 일본에서 가장 주목받는 추리소설 작가를 대라면, 이 사람의 이름이 빠지지 않는다. 재일교포 작가로는 처음으로 일본 추리작가 등용문인 ‘에도가와 란포상’을 수상하고, 수없이 나오키상 후보에 오르며 돌풍을 일으킨 오승호(고 가쓰히로) 작가다. 오 작가는 1981년 일본에서 태어난 재일교포 3세다.

2015년 ‘도덕의 시간’으로 란포상을 수상하며 화려하게 데뷔한 오 작가는 본격적인 조명을 받기 전까지 전화상담원 등 여러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며 어렵게 지냈다고 한다. 오사카 예술대학 영상학과를 졸업하고 영화 쪽 일을 하려 했으나 기회를 잡지 못했던 것이다. 그의 작품은 재미뿐만 아니라 인간의 본능과 우리 사회를 향한 날카로운 질문을 품고 있다.

블루홀식스의 송호준 대표는 “재일교포 3세로서 어려움을 겪어온 오 작가의 모든 이야기는 저항이자 극복이다. 미스터리 소설을 통해 사회를 이야기하는 이 작가를 주목해달라”고 말했다.

대표작은 ‘스완’이다. 대형 쇼핑몰에서 발생한 총격 사건에서 살아남은 소녀의 고독한 투쟁을 그린 미스터리 작품이다.

■ 아작 PICK - 김현중 ‘묘생만경’

얼굴 없는 작가의 처절한 ‘가축 복수극’

“얼굴 본 사람이 없어요.” 나성채 아작 에디터는 ‘묘생만경’을 쓴 김현중 작가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50대 남성 작가, ‘묘생만경’을 원작으로 한 웹툰이 인기이고, 소설이 발표된 지 13년이 흘렀는데도, 전자책 플랫폼에서 꾸준히 사랑받고 있다는 것, 정보라 작가 등 다양한 장르 소설 작가들이 활동하는 웹진 ‘거울’에서 활동하다가 최근 행방이 묘연하다는 것. 김 작가에 대해 알려진 것은 이 정도다. 10여 년 전 인터뷰 조각이 흩어져 있지만, 퍼즐은 좀처럼 잘 맞춰지지 않는다. “그러니까 더 알려야죠.” 나 에디터가 절판된 김 작가의 소설집을 재발간하게 된 이유다. 그는 “한국 장르문학 100선을 만든다면 반드시 들어갈 작품이다”고 강조했다.

초복, 중복을 지나 본격적인 무더위가 시작되려는 때. 흥미롭게도, 아니 오싹하게도 표제작인 ‘묘생만경’에 주로 등장하는 건 닭들이다. 이들은 어떤 복수극에 휘말려 모두 죽임을 당하게 된다. 화자는 인간보다 뛰어난 지능을 가진 고양이다. 집필 동기에 대한 작가의 말이 웃기면서도 섬뜩하다.

“정신 안 차리면 모두 저 닭들 같은 처지가 된다.”

■ 나비클럽 PICK - 홍선주 ‘푸른 수염의 방’

스릴러 덕후의 반전·희열 뒤섞인 단편집

‘추호스’계 작가들은 대부분 데뷔 전 ‘덕후’였다는 공통점이 있다. ‘더는 읽을 게 없어서’ 작가가 됐다는데, 이게 농담이 아니라 진짜다. 에어비앤비 사업도 하고, 북펀딩으로 장편소설을 출판하기도 했던 홍선주 작가도 ‘덕후’의 완성 단계라는 ‘창작’의 세계에 들어온 사례다. 계간 ‘미스터리’를 발간하며 국내 작가들의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주고 있는 나비클럽이 강력하게 추천하는 작가는 바로 홍 작가다. 2020년 계간 미스터리 신인상을 수상한 홍 작가에 대해 한이 미스터리 편집장은 “여성 독자들의 ‘니즈’를 파악하는 감각, 두려움 없는 소설 전개 방식과 그 힘, 그리고 실제로 작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현실에서 해내는 추진력 등 모든 면에서 ‘새로운 세대’의 작가다”고 했다.

홍 작가의 작품 세계는 최근 발간된 ‘푸른 수염의 방’에서 만날 수 있다. 가출팸을 꾸리는 여성과 연쇄 살인범 사이의 복수극을 그린 표제작 등 전 편을 아우르는 ‘반전’이 압권. 역시, 공포 소설의 묘미는 ‘뒤통수’를 맞는 ‘희열’이다.

■ 안전가옥 PICK - 조예은 ‘테디베어는 죽지 않아’

MZ작가의 귀엽고도 치밀한 ‘잔혹극’

안전가옥의 ‘원 픽’은 조예은 작가다. 최근 나온 조 작가의 세 번째 장편소설 ‘테디베어는 죽지 않아’는 출간된 지 한 달 만에 2쇄를 찍을 만큼 반응이 뜨겁다. ‘묻지마 테러’로 독이 든 떡을 먹고 9명이 사망한 사건으로 엄마를 잃은 소녀가, 몸을 잃고 곰 인형에 영혼이 갇힌 소년과 만나 펼쳐지는 이야기를 담은 소설. 곰 인형이라는 친근한 소재 덕에, 복수가 더 잔혹하게 느껴진다.

금속공예학을 전공한 조 작가가 ‘귀엽고 잔혹한 복수극’을 쓰는 작가로 변신할 수 있었던 데에는 다소 엉뚱하고 단순한 이유가 있다. 그것은 “취직 준비가 싫어서”였고, 그래서 글을 썼다고 한다. ‘이야기’를 향한 재능이 ‘자기소개서’를 벗어나 꽃 피운 셈이다. 2016년 황금가지 타임리프 소설 공모전에 당선되면서 본격적인 창작 활동을 시작한다. 전작 ‘칵테일, 러브, 좀비’(2020)는 예스24 추리·미스터리 베스트셀러 3위에 올라있는 스테디셀러다. 남자친구에게 맞추려 노력했지만 돌아온 것은 무너진 자존감뿐인 여성의 이야기가 여성 독자들의 큰 공감을 샀다.

■ 황금가지 PICK - 다카노 가즈아키 ‘건널목의 유령’

日 추리거장이 파헤치는 61년전 열차사고

©Yuji Hongo

일본 대표 사회파 추리작가로 각종 추리·미스터리 관련 상을 휩쓸던 다카노 가즈아키. 소설 자체도 재미있지만, 한국에 우호적인 감정을 소설 속에 자주 드러내 수많은 한국 팬들을 확보하고 있다. 대표작 ‘제노사이드’에는 일본 도쿄 지하철역에서 일본인을 살리고 숨진 고 이수현 씨를 떠오르게 하는 캐릭터도 등장해 주목받았다. 황금가지는 올여름 11년 만에 돌아온 그의 최신작 ‘건널목의 유령’을 선보였다. 거장의 귀환만으로도 독자들은 들썩이고 있는데, 마침 전작인 ‘6시간 후 너는 죽는다’의 영상화 확정 소식까지 전해져, 두 작품 판매가 동반 상승하고 있다. ‘6시간 후 너는 죽는다’ 속 초능력을 지닌 주인공으로 NCT 재현이 발탁돼 더욱 화제다. 신작의 배경은 1994년 겨울, 도쿄. 한때 잘 나가던 일간지 사회부 기자였다가 지금은 중년의 월간지 계약직이 된 주인공이 건널목에서 찍힌 유령 사진을 바탕으로 취재를 이어나간다. 160명의 사망자 중 단 한 명의 신원이 아직도 밝혀지지 않은 1962년 ‘미카와시마 열차 사고’를 모티브로 해 썼다.

박동미·박세희 기자

Copyright © 문화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