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 사랑 ‘각별’… 음식 배달 전단지 볼때마다 늘 선생님 생각[그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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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배달앱이 발달되어 음식점 전단지를 보기가 쉽지 않다.
그래도 여름이면 냉면이나 막국수 같은 음식 전단이 종종 아파트 입구에 붙는데 전단지를 볼 때마다 늘 장영희 선생님이 생각난다.
그때 선생님께서 나를 부르시며 "얘 미란아, 이리 와봐. 이거 내가 다 준비해 놓은 거야" 하며 쌓아놓은 음식점 전단지 한 움큼을 목발로 툭툭 치며 보여 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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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배달앱이 발달되어 음식점 전단지를 보기가 쉽지 않다. 그래도 여름이면 냉면이나 막국수 같은 음식 전단이 종종 아파트 입구에 붙는데 전단지를 볼 때마다 늘 장영희 선생님이 생각난다.
2002년 1학기 ‘19세기 미국소설’ 강의는 영문 비평들을 하나씩 외워 쓰는 쪽지시험을 보고, 한 주에 소설 한 권씩 나가는 꽤 벅찬 수업이었다.
학생들이 지칠 무렵이면 선생님은 특유의 하이톤으로 우스갯소리를 하시며 솔깃한 제안들을 하셨다. 학기가 끝나갈 무렵 기말 페이퍼에 대한 부담을 팍팍 주시던 중 아주 솔깃한 초대 제안을 하셨다.
“얘들아, 우리 아부지(고 장왕록 교수)가 명예교수로 계시던 춘천 한림대 앞에 연구실로 쓰시던 집이 있거든. 방학 동안 거길 내 연구실로 쓰려고 하는데, 너희 기말 페이퍼 다 내면 내가 춘천으로 초대할게. 짐 정리하는 것 도와주고 맛있는 것도 먹고 그러자. 어때, 그러려면 빨리 기말 페이퍼를 내야겠지?”
7월 어느 날 10여 명의 학우와 춘천 선생님 댁으로 향했다. 그런데 점심때가 되었는데도 식탁에 음식이 없었다. 그때 선생님께서 나를 부르시며 “얘 미란아, 이리 와봐. 이거 내가 다 준비해 놓은 거야” 하며 쌓아놓은 음식점 전단지 한 움큼을 목발로 툭툭 치며 보여 주셨다.
“너희들이 온다는데 내가 뭐 음식을 할 수 있겠니. 근데 여기가 학교 앞이라 음식점 전단지가 엄청 많이 와. 너희 오면 시켜주려고 문틈이나, 길바닥에 있는 것들을 목발로 밀어서 모아뒀어. 맛있겠지? 얘, 여기가 특히 괜찮을 거 같아. 보쌈을 주는데 서비스가 막국수래. 다른 것들도 보고 너희 먹고 싶은 거 다 시켜. 그 쟁반 막국수 주는 보쌈은 꼭 시켜라. 나도 먹어보고 싶더라.”
그리하여 막국수 주는 보쌈에, 중국요리 등 이것저것을 시켜 배불리 먹었다. 선생님께서는 막국수를 주는 보쌈에 큰 기대를 하셨는데 “얘, 사진이랑 완전 다르다. 흥!” 하시면서 샐쭉한 표정으로 실망감을 드러내셨다.
연구실에 인터넷을 설치하고, 워드 프로그램도 깔아드리고, 자주 찾으시는 사이트 즐겨찾기도 해드리고, 두루마리 휴지 같은 생필품도 손닿는 곳에 정리해 놓고, 혼자 계시는 동안 덜 불편하시도록 정리를 도와드리고 다시 서울로 오기 위해 우르르 나왔다. 나오면서 쓰레기를 정리하다가 선생님께 조심스레 여쭤보았다.
“선생님, 이 전단지들 버릴까요, 어디에다 둘까요?”
“얘, 그건 이제 버려야지. 너희 주려고 모아둔 거지, 뭐 혼자서 내가 시켜 먹겠니. 막국수도 사진만 그럴싸하고 뭐. 너희 맛있는 거 사주려고 했는데 그냥 나가서 사 먹을 걸 그랬나”라며 살짝 머쓱해 하셨다.
서울에서 춘천까지 오는 제자들을 초대하시고서 선생님은 얼마나 고심하셨을까. 편치 않으신 몸으로 낯선 동네에서 식당도 잘 몰라 답답하셨을 텐데, 멀리서 오는 제자들 먹이겠다고 여기저기 붙어있는 전단지들을 목발로 툭툭 밀어 모아두셨을 생각을 하니 차마 전단지들을 그냥 버릴 수 없어 내 가방에 넣었다.
생전에 늘 제자들을 맛집에 데려가 주시고, 심지어 돌아가시기 직전에도 당신 장례식에서 고생할 제자들을 염려해 학생들에게 맛있는 거 사주라고 가족들에게 150만 원을 따로 맡겨두셨던 살뜰하셨던 선생님. 이번 여름엔 춘천에 가서 선생님이 그토록 드시고 싶어 했던 막국수를 먹고 싶다. 살얼음 뜬 국물 한입 들이켜면 입속은 얼얼한데, 눈시울이 뜨거워질까 봐 그게 걱정이다.
제자 이미란(롯데문화재단 홍보책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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