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기영 응용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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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배우가 배역을 고민하며 일상에 집중을 못한다고도 하는데저는 반대예요. 일상 속 강기영의 행복을 잘 지켜야죠.저는 그래야 일도 잘되고 연기도 잘한다고 생각해요.”
최근 대세 스타만 출연한다는 <유 퀴즈 온 더 블럭>(이하 <유퀴즈>)에 나가셨습니다.
저도 작가님께 그렇게 얘기했어요. 여기는 업적을 기리는 곳 아니냐고. 작가님이 원래 홍보로도 많이 출연한다고 하시더군요. 그래도 초대를 받고 감회가 새로웠어요. 이번에 <유퀴즈>를 촬영했을 때는 내가 진짜 연예인 같다고 생각했어요. 물론 활동을 해서 계속 연예인이긴 하지만 ‘나 진짜 연예인 같은데’ 이런 .
어떤 말씀인지 약간 이해가 갑니다.
<유퀴즈>에 일반인 분들도 나오지만 커리어가 확실한 분들이 출연하셨잖아요.
김연아, 손흥민 아버지 손웅정 님...
그런 분들이 나가는 곳에 ‘아이고 저를’ 같은 기분이었죠.
한창 바쁘시겠네요. 작품 <경이로운 소문2: 카운터 펀치>(이하 <경이로운 소문2>)도 방송을 앞두고, 촬영도 하시고요.
작품 3개가 겹쳤어요. 이것도 해야 되고 저것도 해야 하는데 저는 좋더라고요. 육체적으로는 힘들었는데 정신적으로 너무 행복했어요. 배우가 의기투합해서 한다는 느낌이 확 들었어요. 감독님과도 잘 맞았고요.
현장에서 연출의 의도를 파악하는 게 중요할 테고 감독님마다 연출 방향도 다르겠죠. <경이로운 소문2> 유선동 감독과의 호흡은 어떠셨어요?
감독님 첫인상은 까칠해 보였어요. 샤프하고 <파이트 클럽>의 브래드 피트 같아요. 옴므파탈 느낌. 그런데 너무 자상하셨어요. 디렉션이 명확해서 편했고요. 저는 긴 호흡의 빌런 연기는 처음이라 제가 생각하는 빌런의 그림이 모니터에서는 안 나오더라고요. 그런 걸 많이 잡아주셨어요. “내가 무조건 해쳐야 되는 인물인데 내게도 똑같은 아픔이 있다고 생각을 한번 해 주세요” 같은 식으로요.
쉽지 않을 텐데도 안 해본 역할을 승낙한 이유는 무엇이었습니까?
안 해본 역할에 대한 갈증이 컸어요. 그동안은 많은 분들이 보신 재미나고 유쾌한 캐릭터를 했죠. 저도 그게 즐겁고 제 성향과 맞아 편하기도 했고요. 그게 쌓이다 보니 저도 고갈되는 것 같고, 배역이 아니라 강기영으로 재미난 사람을 만드는 것 같았어요. 그게 반복되면 대중이 식상해할까 걱정도 했습니다. 다행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라는 드라마가 잘돼서 기회가 생겼고, <경이로운 소문2>처럼 스펙트럼을 넓힐 수 있는 작품이 들어온 거죠. 처음에는 고민했어요. 하던 배역과는 180도 다른 변화니까요. 그래도 그냥 잘하고 싶은 마음으로 했죠.
아직 공개되지 않은 작품이지만 어떤 부분을 보는 게 재미있을까요?
이번 드라마는 긴 호흡으로 빌런 연기를 했어요. 보통 빌런은 조금 임팩트 있게 시작하다 장렬하게 전사하는 식인데, 이 드라마는 12부 동안 빌런이 엎치락뒤치락해요. 이 상황을 어떻게 표현했을지 저도 기대됩니다.
빌런 역을 오래 하고 촬영 끝난 후 집에 가면 아직 내 마음속에 빌런이 남아 있습니까?
저는 그런 스타일은 아니에요. 일상에까지 영향을 주고 싶지 않아요. 육체가 힘들 때 피곤한 상태로 귀가할 수는 있지만, 악인을 연기했다고 그 악인을 들고 집으로 가는 건 싫어요. 많은 배우가 배역을 고민하며 일상에 집중을 못한다고도 하는데 저는 반대예요. 일상 속 강기영의 행복을 잘 지켜야죠. 저는 그래야 일도 잘되고 연기도 잘한다고 생각해요.
저도 그렇게 생각하는데 제 개인적인 상황에서는 그게 잘 안 돼요. 배우님은 일상의 내가 중요한 걸 언제 깨달으셨어요?
가족이 만들어지고 생겼어요. 혼자 있을 때야 우울하거나 일상과 일이 뒤섞여도 상관없는데, 제가 집에 와서 우울해하면 지금은 그 영향을 받는 사람이 있으니까요.
저는 결혼한 분들이 저보다 어려도 무조건 인생 선배라 생각해요. 이 말씀을 들어도 그런 기분이 듭니다.
저도 똑같이 생각했어요. 저도 미혼일 때 아이가 있는 친구를 보고 ‘나는 따라갈 수 없는 어른이야’라고 생각했는데 그렇게 어른도 아닙니다. 일상이 좀 단순해진 거예요. 저녁 약속 없고, 눈치 조금 보게 되고, 책임감이 조금 생기고요.
그게 어른이죠. 프로필을 찾아봤더니 2009년 연극 <나쁜 자석>으로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그때 기억나십니까?
생생하게 기억나죠. <나쁜 자석>은 지금도 공연될 정도로 굉장히 좋은 작품이에요. 사실 저는 제작사에 있던 학교 선배의 소개를 받고 오디션을 봐서 기회를 얻었습니다. 그때 집과 대학로가 멀어서 처음으로 고시원에 살아봤어요. 연극 경력이 많은 친구들과 작업하기도 해서 서럽거나 불안하기도 했지만 낭만도 있었어요. 연습 끝나고 편의점에서 고추참치랑 소주랑 하나 사서 먹기도 하고요. 스스로 조금 우울한데 섹시한 느낌이 있잖아요.(웃음)
그때부터 성공을 확신하셨습니까?
전혀 못했죠. 그냥 연기가 즐거웠어요. 그게 다였어요. 사람들과 어울리는 게 재밌고 눈앞의 숙제들이 중요했어요. 스타가 되어야지, 대배우가 되어야지가 아니고 관객에게 압도되어 ‘내가 이 공연에서 숨이나 제대로 쉴 수 있을까’ 같은 고민을 했어요. 큰 배우, 유명한 배우가 되고는 싶었죠. 감히 꿈도 못 꿨지만요.
그런데 계속 좋은 일이 들어오고 좋은 성과를 냈습니다.
그때 생활비를 버는 일은 광고모델이었어요. 돈을 벌기도 하고, (광고) 매체에는 카메라가 있기도 하니까 이 방향이 나를 더 빨리 알릴 수 있는 길 같았어요. 공연에서 기초를 다져도 좋았겠지만, 광고 개런티로 생활을 한 덕에 버틸 수 있었어요. 수입은 중요하니까요. 연극할 때는 3개월 동안 1백만원 정도 벌어요. 그럼 생활은 쉽지 않죠. 광고에 고마운 건 그거예요. 나에게 여유를 줬으니까.
생활 중요하죠. 기반을 만들고 일을 하시면서 ‘자리를 잡는구나’ 싶은 순간도 왔습니까?
드라마 조연 데뷔했을 때가 2014년의 <고교처세왕>이었어요. 그 뒤 <오 나의 귀신님> <싸우자 귀신아>를 할 때쯤은 맛있는 거 사 먹을 정도는 되었던 것 같아요.
그렇게 일을 하시면서 느낀 배우 일의 매력은 무엇입니까? 남의 관심을 받고, 남의 삶에 잠깐 들어가는 게 보통 일이 아니죠.
<경이로운 소문2>는 특수효과가 있어요. 뭔가 소품이 있는데 제가 이렇게(손짓을) 하면 소품이 터지고, 일반인이 제게 공격을 하려 할 때 제가 가소롭다는 듯 싹 (손동작을) 날려버리면 무술팀 배우들이 확 날아가니까 너무 좋은 거예요. 실제로 강해진 것 같고. 그런 거 재미있어요. 언제 이렇게 살아보겠나 싶죠.
반대로 어려운 점은요?
무명일 때는 사람들이 나를 알아봐줬으면 좋겠고, 마스크 써야 하는데 안 쓰고 싶을 때가 있었습니다. 이제는 작품들이 잘되고 길에서 알아봐주시니 너무 신기하고 좋죠. 그런데 가족 등 저의 사생활과 일상이 고스란히 노출될 때는 편치 않기도 해요. 식당에서 아내하고 식사할 때는 사적인 이야기를 하잖아요. 그런데 옆에서 누가 알아보면 아는 사람이 옆에 앉은 것처럼 위축돼요. 내 말 한마디가 잘못 전달돼서 나의 이미지가 만들어질까 싶기도 하고요.
유명인은 비슷한 말씀을 하십니다. 몇 년 전에 추신수 선수 인터뷰를 한 적이 있었어요. 추 선수는 아무 종이에나 자기 사인을 받는 게 싫었대요. 그런데 미국 생활을 오래 하다 보니 이제 완전히 프로페셔널이 되셔서, 사람들 입장에서 생각하신대요. 저분들도 나(추신수)를 언제 볼지 모르니까 같은 식으로요. 그래서 그 이후 자신이 사인 종이를 가지고 다니신대요.
저도 똑같아요. 저희 동네에 집을 소개해주신 부동산이 있어요. 부동산 사장님께서 “와서 사인 좀 해주세요”라고 하셔서 제가 사인지에 사인을 해서 갖다드렸어요. 제가 가는 동네 병원 간호사분들도 사인을 부탁하셨어요. 제가 이름 알려달라고 하고 사인지에 사인해서 갖다드렸어요. 자전거 타고 가서 배달했습니다. 배우가 직접 배달해서 갖다주는 상황이 저도 재미있더라고요.
강기영의 인생 영화 5
<올드보이(2003)>, ‘영화가 정말 매력적인 장르구나’ 임을 느끼게 해준 영화.
<당신이 사랑하는 동안에(2004)>, 아내와 연애하던 때 봐서 추억에 남은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1997)>, 아버지가 되고 봤더니 남달랐던 영화.
<타이타닉(1997)>, ‘진짜 이게 영화다’ 싶었던 영화.
“아시아 콘텐츠는 자극적이어야 관심을 받나 싶었는데,이렇게 발랄하고 예쁜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도 반응하는 걸 보니장르가 문제가 아니구나 싶었습니다.”
배우 강기영의 모든 필모그래피가 중요하겠지만 특히 의미 있는 작품이 있었습니까?
모든 게 의미가 있는 중에도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를 꼽을 것 같아요. 그동안의 필모그래피는 저를 3도, 5도, 7도, 이런 느낌으로 바꿔줄 때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저를 확 바꿔주었죠. 예전에는 동시간대 대박 작품의 경쟁작을 한 적이 있어요. 제가 참여한 작품이니까 저는 너무 애정을 갖고 있지만 동시간대 타사 작품과 시청률이 10배 차이 난다면 부럽기도 하잖아요. ‘내게도 이런 작품이 왔으면 좋겠는데’ 싶기도 했고요. 그게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였죠. 촬영 현장도 너무 즐겁고 배우들 사이의 케미도 행복했지만 대박이 날 거라고는 생각 안 했어요. 글(대본)도 너무 예쁘고 감독님도 무척 다정하게 우리의 케미를 잘 만들어주셨고 배우들도 재미있었지만 이렇게 뻥 터질 거라고는 아무도 기대하지 못했던 것 같아요. 그리고 넷플릭스를 통해 방영된 것 중 해외에서 반응이 좋은 한국 콘텐츠는 주로 잔혹한 내용이었어요. <킹덤>이나 <지금 우리 학교는>처럼요. 그래서 아시아 콘텐츠는 자극적이어야 관심을 받나 싶었는데, 이렇게 발랄하고 예쁜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도 반응하는 걸 보니 장르가 문제가 아니구나 싶었습니다.
지금 인터뷰가 너무 재미있는 게요, 저는 막연한 인터뷰를 잘 못하겠습니다. 배우 인터뷰는 예술, 감정 등 이야기를 많이 하십니다. 예술론도 중요합니다만 제가 그런 이야기를 할 재주가 없어요. 지금 나누는 이야기는 손에 잡히는 이야기들이라 좋습니다.
저도 예전에는 좀 더 꾸몄던 것 같기도 해요. 더 배우인 것처럼. 그런데 그냥 나로서 하는 이야기가 가장 진솔한 것 같아요. 저로서 대답해야 재미있는 거고.
배우의 모습은 현장에서 많이 보여주시죠. 그건 잘 알고 있습니다. 최근 가장 기쁜 일은 뭔가요?
가장 기쁜 일도 19개월 된 제 아이예요. 제 일상은 일과 가정밖에 없어요. 너무 단순해요. 기쁜 일이라면 촬영하고, 개런티 정산되고, 그 정도인데 가장 큰 기쁨을 주는 건 제 19개월 된 베스트 프렌드예요. 이 아이의 손짓 하나하나가 저에게 기쁨이라서요. 저는 원래 세상이 저 중심으로 돌았는데 이제는 아이 중심이에요. 모든 걸 다 해주고 싶고. 사실 생후 1년까지는 몰랐어요. 예쁘고 귀엽긴 하지만. 그런데 정이 들잖아요. 그러고 나니까 헤어나올 수가 없더라고요. 얘가 와서 막 안아주고, 출근한다고 하면 제 무릎 부여잡고 울고 이런 감정이 쌓이니까 좋아서 미치겠더라고요. 그런데 어디 가서 먼저 이야기는 안 해요.(웃음)
앞으로 해보고 싶은 배역도 있습니까?
많죠. <경이로운 소문2>를 하면서 느낀 게, 스펙트럼을 넓히는 과정은 거창하게 표현하면 살갗이 찢어지는 것 같아요. 뜯어져서 새로운 살이 나오는 느낌. 고통스럽고 두렵고 힘들지만 이걸 내 것으로 조금 만들었나, 나의 스펙트럼이 넓어졌나라고 느끼는 순간이 또 동력이 돼요. 안 해본 역을 또 넓히면 계속 넓어지겠죠.
배우님이 스펙트럼을 넓히고 싶은 이유는 비슷한 이미지로는 일이 안 들어온다는 불안 때문입니까? 계속 넓히고 싶다는 건 프로로서의 욕심일까요?
맞아요. 욕심, 도전 의식 같아요. 막연하니까 두렵죠. 제 입장에서는 선택을 안 할 수가 없어요. 내가 배우로서 오래가고 싶으면 다양한 능력이 있어야 해요. 회사 생활도 똑같잖아요. 일상이 반복되지만 그 안에서 버티고 견디며 승진하는 것처럼요. 스펙트럼을 넓히며 그레이드가 높은 배우가 되고, 다양성을 겸비한 배우가 되어야 많이 기용될 테니까요.
계속 넓어지고 깊어질 거라 생각합니다. 어떤 배우로 기억되고 싶으십니까?
친근하고 편안한 배우가 되고 싶어요. ‘저 사람이 나오면 믿고 보는 배우’라는 게 있잖아요. 제가 듣는 칭찬도 ‘자연스럽게 연기를 잘한다’거든요. 저는 평생 이런 피드백을 받고 싶어요. 일상에 있을 것 같은 상황을 자연스럽게 표현하는 게 제 장점이고 필살기라고 생각해요. 그걸 계속 연마해서 매체나 영화 등 구분 없이 자연스러운 연기를 하고 싶어요.
일상의 자연스러움은 어떻게 연마합니까?
예전의 일상에서요. 재미난 상황은 어딘가 가야 나와요. 집에만 있으면 그걸 느낄 수는 없고, 예전에 갔던 자리가 저의 느낌을 많이 만들어줬어요. 집에 있으니 고갈된다 싶었는데 그렇지도 않아요. 그동안 쌓인 데이터가 많아서 그때 일들을 지금 응용하기도 해요. 그때 걸어온 강기영이 지금의 강기영을 만들어준 느낌이 듭니다.
Editor : 박찬용 | Photography : 김영민 | Stylist : 최진영 | Hair : 유석환(제니하우스) | Make-up : 최다영(제니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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