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0년대 중국서 사업하며 자유로운 화풍 펼쳐…다시보는 월북화가 임군홍

이한나 기자(azure@mk.co.kr) 2023. 7. 26.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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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 예화랑 ‘화가 임군홍’전
월북 화가 70년 만에 재조명
1930∼1950년대 120여점 소개
임군홍, 가족 (1950), 96x126.5cm,Oil on canvas 예화랑
붉은빛 주단 테이블 옆에 아내와 둘째 아들, 큰딸이 있다. 임신 6개월 아내 배 속에 막내딸도 있다. 청화백자와 목단이 그려진 민화, 독일제 맥주컵과 꽃신, 백합 등 집에 있던 귀하고 좋은 물건들이 총출동했다.

1950년 6·25전쟁이 발발하기 보름 전부터 국전에 출품하려고 시작한 화가 임군홍(1912~1979)의 마지막 국내 작품이다. 그림을 완성하기도 전에 동족상잔의 비극으로 북한에 끌려가 30년 이상 존재가 지워졌다.

강남구 예화랑은 오는 27일부터 9월 26일까지 정전 70주년을 기념해 대규모 개인전 ‘화가 임군홍’을 열고 1930~1950년대 120여점을 선보인다.

임군홍의 둘째 아들 임덕진(75)씨는 25일 그림 속 어머니 품에 안긴 본인을 가리켜 보이며 “아버지가 떠난 후 명륜동 집을 팔고 이사나올 때까지 마루에 이젤 위에 그대로 서 있던 그림”이라며 “어머니처럼 내 품에서 절대 놓고 싶지 않은 작품”이라고 했다.

일제 강점기에는 중국 우한에서 광고 디자인 사업을 하며 서양의 다양한 사조를 자기식으로 소화하고 독학으로 자기만의 그림 세계를 펼쳤던 풍운아 화가 임군홍이 재조명되고 있다.

임군홍, 자화상(1948). 작가가 옥살이를 하고 나와 그린 자화상으로 30대인데도 불구하고 노인처럼 표현한 것이 인상적이다. 예화랑
김방은 예화랑 대표는 “예화랑 45주년 기념전을 계기로 임군홍을 발견했다”며 “일제강점기 중국에 자유롭게 오가며 독학으로 일군 화풍이 미술사적으로 재평가되고 기려야 할 작가라고 본다”고 했다. 상업화랑이 판매수익을 얻기 힘든데도 미술관 같은 전시를 무료로 여는 이유다.
임군홍, 자금성 풍경(1940년대) ,60x71.5cm, Oil on canvas 예화랑
임군홍은 1948년 월북 무용가 최승희의 얼굴을 달력에 썼다는 혐의로 옥고를 치른 뒤 국군 수복 전 북한에 끌려갔다. 그의 아내는 자식 다섯과 시어머니 시아주버니까지 혼자 부양해야 했기에 시장 좌판부터 시작해야 했다.

임군홍 유족은 어려운 가정형편과 연좌제 고통 속에서도 작가의 작품과 사진, 스케치 등을 고이 보관해 작가 연구의 기본을 갖췄다. 임덕진씨는 “식구들이 좁은 방에 몰아 지내던 시절에도 부친의 작품을 위한 공간을 따로 두고, 집을 구할 때도 작품 보관을 최우선했다”고 전했다.

어머니를 돕던 아들은 부친에 대한 그리움에 미술사를 공부하고 작품 한 점 한 점 연구해 왔다. 어렵던 시절 일부 그림을 팔아야했지만 목돈이 생기면 액자도 새로 짜고 국내 최고 복원전문가에게 훼손된 부분 복원도 맡기며 100여점을 보관해 왔다.

임군홍은 1984년 롯데백화점 롯데화랑 전시와 1985년 국립현대미술관 특별전을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미술사가 김은혜는 “(유족 기증후) 국립현대미술관 소장품으로 처음 접한 임군홍 작품은 1930~1940년대 제작된 것으로 믿기 어려웠다”며 “베이징 풍경화는 특히 동일한 대상도 다양한 정조로 표현하는 능력이 탁월하다”고 했다. 천단과 북해공원 등 같은 장소를 여러 차례 그리며 본인 감성을 투영하니 80년 세월을 거슬러 사뭇 현대적이다.

임군홍, 모델(1946), 90x71.5cm,Oil on canvas,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전시작 중 국립현대미술관이 소장한 ‘모델’(1946)은 과감한 화면구성과 색채 선택이 마티스를 연상시키고 ‘소녀상’(1937)은 시원시원한 붓질로 옷감과 인물을 표현한 것이 마네처럼 매력적이다.

주변 인물을 주로 그렸던 임군홍은 둘째 아들이 태어나자 백일된 아이 얼굴과 영묘한 고양이 그림을 맞닿게 겹쳐서는 금칠을 한 고급 액자를 맞추고 걸어뒀다. 따스한 부정이 전해진다.

예화랑 ‘화가 임군홍’전에서 작가가 직접 고급액자를 맞춰 보관했던 ‘덕진 초상’(1948·왼쪽)과 그 뒤에 붙었던 그림 ‘아들을 지켜주는 고양이’(1948) 를 따로 빼 전시로 보여줬다. 이한나 기자
임군홍의 둘째 아들 임덕진씨가 부친의 ‘소녀상’(1937)앞에서 설명하고 있다. 이한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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