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계권 최초 분리' 여자 월드컵, 출범 32년 만에 남자 월드컵에서 '독립'하다 [이종성의 스포츠 문화&산업]

이종성 한양대 스포츠산업학과 교수 2023. 7. 26. 0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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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뉴스 | 이종성 한양대 스포츠산업학과 교수]
지난 25일 여자월드컵 한국-콜롬비아의 경기 모습. /사진=대한축구협회
지난 20일(한국시간) 개막한 2023 호주·뉴질랜드 여자 월드컵은 개최국 호주와 뉴질랜드의 개막전부터 선풍적인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두 경기 관중 수가 모두 합쳐 11만 명을 넘을 정도였다.

어쩌면 이같은 인기는 이번 대회가 남자 월드컵으로부터 독립한 첫 번째 여자 월드컵이라는 점을 확실하게 해주는 증거다.

2023년 여자 월드컵은 상업적 측면에서 하나의 글로벌 축구 메가 이벤트로 자립한 첫 번째 대회다. 지금까지 여자 월드컵의 중계권과 스폰서십 판매는 남자 월드컵과 패키지로 묶여 있었다. 쉽게 얘기하면 과거의 여자 월드컵은 남자 월드컵 중계권과 스폰서십을 팔 때 돈을 조금 더 받고 덤으로 판매하는 상품이었다.

하지만 국제축구연맹(FIFA)은 지난 2019년 프랑스 여자 월드컵에서 전 세계 TV 시청자 수가 직전 대회인 2015년 캐나다 월드컵에 비해 무려 106%나 상승하자 정책을 바꿨다. 한 마디로 FIFA는 이제 여자 월드컵 중계권과 스폰서십 판매를 따로 해도 충분히 성공을 거둘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된 셈이었다.

미국 여자축구 대표팀 선수들이 지난 22일 여자월드컵 조별리그 E조 베트남과 경기에서 골을 넣은 뒤 기뻐하고 있다. 미국이 3-0으로 이겼다. /AFPBBNews=뉴스1
FIFA가 여자 월드컵 중계권 판매를 남자 월드컵과 분리해 진행하는 방식은 순탄치만은 않았다. 우선 여자 월드컵에 관심이 가장 높은 미국의 경우부터 꼬였다. FIFA와 미국은 이미 2026년까지 남녀 월드컵 중계권을 패키지로 판매해 놓은 상태였기 때문이다.

더욱이 유럽 시장에서는 여자 월드컵 중계권을 저평가했다. 영국, 프랑스, 독일, 스페인, 이탈리아 등 유럽 축구 강국은 지난해 카타르 남자 월드컵 중계권료로 국가당 1억~2억 달러(약 1284억~2568억 원)가량의 돈을 지불했다. 그렇지만 이 국가의 중계방송사들은 호주·뉴질랜드 여자 월드컵 중계권료로 100만~1000만 달러(약 12억8400만~129억 원)라는 FIFA의 기대에 한참 못 미치는 낮은 가격을 제시했다.

결국 FIFA는 유럽 국가들과의 개별적 중계권 협상이 난항에 빠지자 유럽방송연합(EBU)과 호주·뉴질랜드 여자 월드컵 중계권 계약을 체결해야 했고 EBU에 가입된 34개 유럽 국가의 지상파 TV가 이번 여자 월드컵 대회의 중계 방송사가 됐다.

현재까지 FIFA는 호주·뉴질랜드 여자 월드컵 중계권료에 대해 대략적인 숫자도 공개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이번 중계권료가 FIFA가 당초 기대했던 것에 비해 매우 낮은 가격이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2023 여자월드컵이 열리고 있는 호주 시드니의 올림픽 스타디움. /AFPBBNews=뉴스1
중계권과는 달리 호주·뉴질랜드 여자 월드컵의 스폰서십 판매는 나름대로 성공을 거뒀다. 이번 여자 월드컵을 앞두고 FIFA가 체결한 스폰서십 계약 총액은 연간 3억 달러(약 3854억 원)를 넘어 섰다. 하지만 대부분의 스폰서십 업체는 여전히 남자 월드컵과 여자 월드컵을 함께 후원하는 방식을 선호했다. 과거와 달라진 점이 있다면 남녀 월드컵 스폰서십 계약을 분리해서 했다는 점뿐이다.

물론 예외적인 기업도 있었다. 지난 2021년 비자카드는 여자 월드컵만을 후원하는 사상 최초의 톱 티어 기업이 됐다. 비자카드에 이어 뉴질랜드의 소프트웨어 업체 제로(Xero)도 여자 월드컵 대회의 스폰서십 업체로 선정됐다. 특히 제로는 양성평등을 존중하는 기업이라는 이미지를 보여주기 위해 여자 월드컵에만 후원을 한 사실이 알려져 화제를 모았다.

제로의 사례에서도 볼 수 있듯 FIFA는 21세기 들어 더욱 중요해진 사회적 가치인 '양성평등'을 여자 월드컵 후원을 통해 실현하려는 기업이 점점 더 늘어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지난 20일 호주-아일랜드의 개막전이 열린 호주 시드니 올림픽 스타디움 전경. /AFPBBNews=뉴스1
무엇보다 여자 월드컵이 궁극적으로 남자 월드컵과 대등한 수준의 대회가 되기 위해 가장 중요한 부분은 참가 팀에 수여하는 상금이다.

FIFA는 지난 2019년 프랑스 여자 월드컵 참가국에 총 3000만 달러(약 385억 원)를 상금으로 내놓았다. 2022년 카타르 월드컵 총상금과 비교하면 격차가 크게 벌어진다. 카타르 남자 월드컵 총상금은 4억 4000만 달러(약 5632억 원)였다.

물론 상업적인 측면에서 남자 월드컵이 벌어들일 수 있는 수입이 훨씬 큰 것은 사실이지만 총상금의 차이가 너무 크다는 지적이 나왔던 이유다.

그래서 FIFA는 이번 2023년 여자 월드컵 총상금을 1억 1000만 달러(1413억 원)로 상향 조정했다. 지난 2019년 프랑스 대회보다 참가국 수가 8개국(24→32개) 늘어났다는 점을 감안해도 확실히 상승한 셈이다.

지난 25일 한국-콜롬비아전 모습. /사진=대한축구협회
여자 축구의 발상지인 잉글랜드에서는 1차 세계대전 때 여자 축구의 인기가 매우 높았다. 남자 선수들 대부분의 군입대로 남자 축구의 공백이 생겼기 때문이다. 당시 여자 축구 경기는 주로 자선기금마련을 위해 개최됐다.

하지만 1차 대전이 끝나고 영국사회에서 여자 축구를 바라보는 시선은 싸늘해졌다. 잉글랜드축구협회(FA)는 1921년 여자 축구 선수들이 FA에 가입된 남자 축구 클럽의 경기장에서 경기를 할 수 없도록 규칙을 제정했다. 이후 잉글랜드 여자 축구 선수들은 낙후된 경기장을 전전하며 명맥을 이어가야 했다.

1991년 중국에서 제1회 여자 월드컵이 개최됐을 때 전 세계 미디어들은 '전족(纏足·어린 소녀의 발을 인위적으로 묶어 성장하지 못하도록 하는 풍속)의 전통이 있었던 중국이 이제는 여자 축구의 국가가 됐다'는 흥미 위주의 논평을 쏟아냈었다.

그때부터 32년이 지난 2023년에 진행 중인 여자 월드컵은 이제 그저 신기한 대회가 아니라 남자 월드컵으로부터 독립한 의미 있는 대회로 발돋움했다.

이종성 교수.

이종성 한양대 스포츠산업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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