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L판 숀 켐프, 잊혀지지 않을 하이라이트 외인
농구 팬들은 마르커스 힉스(196.5cm)를 다양한 시선으로 기억하고 있다. 빠른 스피드와 엄청난 탄력으로 끊임없이 달리고 뛰었던 야생마같은 움직임을 높이사서 역대 외국인선수중 최고다고 극찬을 아끼지않는 이들이 있는가하면 임팩트에 비해 순수한 기량은 S급에 미치지못한다는 냉정한 평가가 공존한다.
좋은 팀에 잘맞는 퍼즐로 우승에 공헌했다는 점에서 삼성을 첫 우승으로 이끈 아티머스 맥클래리와 비슷하다는 의견도 있다. 다른 점이 있다면 맥클래리는 화려함과는 다소 거리가 있었다면 체공력이 남달랐던 힉스의 플레이는 보는 사람들을 매료시키는 매력이 남달랐다는 점 정도다.
당시 동양은 첫 우승 당시의 SK와 비슷하게 베스트5의 조합이 매우 좋았던 팀으로 꼽힌다. 김승현(44‧175cm)의 시야와 패싱센스는 천재라고 불리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특히 뛰는 농구에서 강점이 돋보였는데 스피드, 높이에서 최고의 위력을 발휘했던 힉스와는 정말 잘맞는 콤비였다.
거기에 힉스의 부족한 몸싸움 능력과 제공권 문제는 수비, 리바운드에 특화된 라이언 페리맨(47‧198.7cm)이 잘 메워줬다. 이들 빅3를 중심으로 쇼타임 농구가 펼쳐졌고 김병철, 전희철의 외곽 지원사격이 더해지면서 상대팀을 정신없이 몰아칠 수 있었다는 평가다. 특히 김승현, 힉스는 둘다 유독 화려함이 부각되는 유형이었던지라 인기가 높을 수밖에 없었다. 지금까지도 동양 우승 당시가 회자되는 이유다.
일부에서는 당시 힉스가 압도적인 선수가 아니었다는 점을 들어 그 자리에 안드레 페리, 퍼넬 페리 등 다른 선수가 있었어도 동양의 우승이 가능했을 것이다고 보는 이들도 적지않다. 여기에는 다른 테크니션 외국인선수와의 맞대결시 종종 고전을 했던 이유도 크다. 리온 트리밍햄과의 매치업에서는 영혼까지 털려버렸다고 표현할만큼 경기내내 아무 것도 하지못한채 무기력하게 무너진바 있다.
힉스는 종료 시간을 얼마 남겨놓지않고 파워 덩크를 터트리며 짐승같은 포효를 내뱉었지만 얼굴에는 분노가 가득차있었고 트리밍햄은 이를 여유로운 표정으로 쳐다보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개인 기량이 곧 팀 성적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마이클 매덕스같은 경우 KBL무대에 들어온다고 했을 때부터 이전 시즌 외국인선수 MVP 맥클래리 등 다수의 외국인선수들이 오버스러울 정도로 호들갑을 떨어댔지만 지금은 이를 기억하는 이들 조차 많지않다. 해외무대에서는 매덕스가 대단했을지 몰라도 국내 기준으로는 맥도웰, 맥클래리에게도 미치지못한다.
이를 입증하듯 힉스와 같은 시기에 활약했던 테크니션 유형의 외국인선수중 우승의 영광을 차지한 것은 오직 힉스 밖에 없다. 실력의 유무를 떠나 그들보다 힉스가 먼저 떠오르는 이유다. 힉스는 팬들에게는 보는 재미를 안겨주는 흥미로운 외국인선수였고 팀원들에게는 팀플레이까지 잘하는 든든한 동료였다. 때문에 당시를 기억하는 동양 팬들은 ‘힉스의 자리를 대체할 외국인선수는 역대로 아무도 없다’고 자신있게 말하고 있다.
김진 감독의 승부수, 빠른 농구 구상하고 데려왔다가 대박
당시 오리온스 김진 감독은 외국인 드래프트에서 전체 1순위로 힉스를 뽑았는데 이에 대해 처음에는 의외다는 의견이 많았다. 안드레 페리가 유력한 1순위 후보였으며 기타 후보군과 비교해도 힉스는 많이 알려지지 않았던 상태였기 때문이다. 여기에 대해 김감독은 '농구人터뷰'와의 인터뷰를 통해 힉스를 뽑았던 배경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한 바 있다.
김감독은 오리온스 사령탑을 맡기 1년전 코치 시절에 겪었던 경험을 바탕으로 외국인선수 선발에 대한 나름대로의 철학이 생겼다고 했다. 당시는 지금과 달리 외국인선수에 대한 정보를 얻기 어려웠던 시대다. 잘 걸리면 대박 안되면 운이 없었다고 치부될 정도였다. 그런 상황에서 에이전트로부터 외국인선수를 한명 추천받았으니 다름아닌 막슛으로 유명한 데니스 에드워즈였다.
오리온스는 해당 선수를 선발하기로 염두에 두고있었는데 또 다른 정보망을 통해 NBA 경력자에 대한 추천이 들어왔고 결국 당시 코칭스탭은 후자를 선택했다. 결과적으로 에드워즈를 뽑은 SBS는 쏠쏠한 혜택을 봤던 것에 비해 오리온스는 실패의 쓴맛을 보고 말았다. 그때를 계기로 김감독은 '이름 값이나 경력보다 직접 눈으로 보고 뽑아야겠다'고 확신했다고 한다.
“사실 첫 인상은 그저 그랬습니다. 일단 너무 말랐고 슛폼이라던지 그런 부분에서 매끄럽지 못하더라고요. 그래서 반신반의하고 있었는데 힉스를 데리고 있던 전임 감독이 장점에 대해서 어필을 계속해줬습니다. 공격 패턴은 다르지만 에드워즈만큼의 득점력을 보유하고 있고 거기에 더해 그에게는 없는 패싱능력, 높은 점프에서 오는 블록슛 능력 등을 겸비한 선수라고. 한마디로 업그레이드 에드워즈인 셈이죠. 그 말이 맞다면 안 뽑을 이유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천천히 확인 작업을 거쳐 가면서 확신을 가지게 됐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감독은 처음에는 힉스같은 유형보다는 골밑 장악력을 갖춘 무게감있는 외국인선수를 원했다고 한다. 하지만 변수가 생겼다. 김감독이 그런 생각을 한 배경에는 신인드래프트에서 고려대 듀얼가드 전형수를 데려올 가능성이 컸기 때문이다. 진짜 원하는 선수는 천재 포인트가드로 불리던 김승현이었지만 아쉽게도 오리온스는 3순위 지명권을 가지고 있었다.
2순위였던 골드뱅크가 김승현을 넘어갈리가 없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골드뱅크는 득점력있는 가드를 원했고 예상을 깨고 전형수를 지명한다. 김감독은 쾌재를 불렀고 김승현을 지명한후 힉스 선택으로 마음을 바꾼다. 김승현의 패싱능력을 제대로 뽑아내려면 잘뛰고 잘달리는 젊은 포워드가 제격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힉스 선택은 페리맨 지명으로도 연결됐다. 내외곽을 모두 오가며 전천후 공격이 가능했던 힉스였지만 마른 체형에 몸싸움을 좋아하지 않았던 스타일상 포스트에서 활약할 선수는 무조건 필요했다. 1순위로 힉스를 뽑았던지라 2라운드 지명권은 마지막(20순위)에 있었다. 선택지가 굉장히 좁은 가운데 페리맨을 추천받았지만 미덥지 못했다고 한다.
빅맨으로서 언더사이즈에 윙스팬까지 짧았던 이유가 크다. 하지만 당시 미국대학농구 협회 책자를 보다 리바운드 2위를 한 부분이 마음에 들었고 그 부분을 높이 사서 최종적으로 페리맨을 낙점했다. 예상대로 다른 팀에서는 페리맨에 아무도 관심을 두지않아서 여유있게 지명할 수 있었다.
힉스에 대해 신기성 SPOTV 해설위원은 “빠르기도 했지만 탄력이 정말 좋아서 마치 새처럼 나는 느낌을 받았다. KBL판 숀 켐프같았다. 거기에 워낙 영리했던 선수인지라 어떤 포인트가드와도 궁합이 잘맞을 스타일이었다. 그런 가운데 (김)승현이 같은 최고의 파트너와 호흡을 맞출 수 있어서 역대급 콤비가 탄생하지 않았나 싶다”는 말로 당시를 회상했다. 이제는 하늘의 별이 됐지만 힉스가 보여준 화려한 농구는 팬들의 가슴 속에서 잊혀지지않고 최고의 하이라이트로 남을 것이 분명하다.
#글_김종수 칼럼니스트
#사진_KBL 제공
Copyright © 점프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