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베르 씨, 오늘은 뭘 쓰세요?』 베르베르 “작가가 할 수 있는 단 한 가지, 포기하지 않고 작품 완성해내는 것뿐” [김용출의 문학삼매경]
“혹시 우리도 생사여탈권을 쥔 어떤 거대한 존재에게 관찰되고 있는 건 아닐까? 만약 그 거대한 존재가 외계에서 온 어린아이거나 초보 신이라면 우리에게 어떤 일이 벌어질까?”(37쪽)
어릴 때부터 여러 종류의 반려 동물을 길렀다. 물고기부터 시작해 거북이, 햄스터, 기니피그까지. 가장 흥미를 끄는 것은 역시 개미들이었다. 딸기와 토마토 사이의 정원에서 개미 떼를 자주 관찰하곤 했다. 그러다가 어느 날, 개미 몇 마리를 유리로 된 잼통에 담아온 뒤 찬찬히 관찰했다. 개미들이 펼쳐 보여주는 흥미진진한 세계, 그것은 우리 인간들이 처한 조건을 생각하게 했다. 여덟 살 육 개월 즈음, 소년 베르베르는 관찰 결과와 상상력을 덧붙여 8장짜리 이야기를 써냈다.
세계 35개 언어로 작품이 출간돼 모두 3000만부가 팔린 프랑스 출신의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출발점이 됐던 첫 소설 『개미』는 여덟 살 무렵 개미들이 담긴 유리로 된 잼통에서 시작됐다. 베르베르의 작가적 여정과 글쓰기 방법론이 담긴 첫 자전적 에세이 『베르베르 씨, 오늘은 뭘 쓰세요?』(열린책들)가 최근 번역 출간됐다. 잘 알려져 있듯이, 베르베르는 한국에서만 무려 누적 판매 1300만부를 기록한 베스트셀러 작가다.
베르베르는 자신의 에세이에서 스물 두 장의 타로 카드를 하나씩 소개하며 문을 연 뒤 첫 단편소설 「벼룩의 추억」을 쓴 유년기부터, 학생신문 「오젠의 수프」를 창간한 청소년기, 아프리카로 날아가 ‘마냥개미’ 떼를 취재하던 청년기, 120여 차례 개작과 퇴고 끝에 소설 『개미』로 데뷔한 신인 시절을 거쳐서 출간하는 책마다 큰 사랑을 받는 현재까지 유쾌하게 풀어낸다. 압도적인 상상력과 지치지 않은 열정의 작가 베르베르는 도대체 어떻게 탄생한 것일까.
“옛날 옛적에....” 아버지 프랑수아 베르베르는 매일 밤 잠들기 전, 1961년 프랑스 옥시타니 툴루즈에서 태어난 그의 침대에 걸터앉아서 이야기를 들려주곤 했다. 엄마는 그에게 종이와 크레용을 쥐어주었고.
“나는 수벼룩 아빠와 암벼룩 엄마 사이에서 태어난 벼룩이다.” 1968년, 그는 자신의 최초 단편소설 「벼룩의 추억」을 썼다. 벼룩 한 마리가 사람의 발에서 출발해 바지, 속옷, 셔츠 속을 거쳐 머리 꼭대기로 올라가며 인체를 탐험하는 이야기였다.
“이것이 아마 내가 발단과 전개, 결말의 구조를 염두에 두고 그럴듯하게 쓴 최초의 픽션이 아니었나 싶다. 이야기꾼으로 살아온 내 역사의 출발점이었던 문장. 이걸 쓸 때 나이는 여덟 살이었다. 자유로운 소재로 네 장 분량의 글을 써오라는 학교 작문 과제를 위해 지었던 이 이야기에 「벼룩의 추억」이라는 제목을 붙였다.”(33쪽)
“그때부터 나는 미래가 그것을 일관성 있게 상상하는 이들의 것이라고 확신하게 되었다. 아시모프 덕분에 현실의 뉴스를 나만의 시각으로 읽어 내고 그에 따른 후속 시나리오를 상상할 수 있게 됐다. 체스에서 말의 움직임과 위치에 따라 게임의 시나리오가 달라지듯, 현실에 미래의 여러 가능성이 내포되어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73쪽)
아시모프의 작품 세계에서 영감을 받아서 다양한 형식을 글을 쓰기 시작했다. 대학입학 자격시험인 바칼로레아에 합격한 뒤에는 소설 『개미』를 집필하기 시작했다. 특히 프레데리크 다르의 인터뷰에서 “소설가가 되는 비결은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 아침 같은 시간에 글을 쓰는 것”이라는 코멘트를 본 그는 법대에 진학한 이후 이를 실천했다. 매일 오전 8시부터 12시30분까지 글을, 그것도 무조건 하루 열장씩 썼다.
“규칙을 실행에 옮기자 「향기와 음악이 있는 만화」의 시나리오로 썼던 단편 「개미 제국」이 콩나물 크듯 자라 몇 달 만에 1백장 가량의 중편으로 변했다. 그러고는 순식간에 5백장, 1천장짜리 대작이 되었다.”(102쪽)
독서량도 크게 늘렸다. 글을 쓰면서 책을 읽게 되자, 독서는 단순히 읽기 위한 독서가 아니라 쓰기 위한 독서, 즉 기술적인 독서로 바뀌어 갔다. 1981년 “단순히 소설이 아니라 하나의 물리적 경험”이라고 할 수 있던 SF장편 『듄』과 프랭크 허버트를 알게 된 그는, 이듬해 필립 K. 딕을 알게 됐다. 그리하여 과학과 공포와 광기의 세계로 인도됐다.
“딕은 일필휘지로 단편들을 써놓았다가 나중에 그중에서 독창적인 아이디어를 골라 발전시키는 방식으로 중편과 장편을 쓴다고 말했다. 독창적인 아이디어가 무서운 속도를 글을 끌고 나갈 때 타자 속도가 방해가 되지 않게 그도 나처럼 아주 빠르게 타자한다고도 했다. 딕의 작품은 하나같이 다른 작가들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는 독창적인 플롯을 갖추고 있었다. 경이롭게 느껴질 정도였다.”(126쪽)
딕의 글쓰기에 영향을 받은 그는 기존의 글쓰기 규칙에 새 규칙 하나를 더했다. 매일 오전 네 시간 글을 쓰는 것 외에도 추가로 한 시간을 짧은 글을 하나씩 쓰기로 한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글을 썼다.
스물아홉에는 중편 소설 네 개를 모아 놓은 스티븐 킹의 소설집 『사계』를 읽으면서 페이지터너 효과를 높이기 위해 어떻게 공포를 활용하는지를 배웠다. 서스펜스를 쌓아 올리는 스티븐 킹의 기술을 흡수하게 된 것이다.
“그의 작품에서 특히 서스펜스 장치가 작동하는 방식을 눈여겨봤다... 솔직히 그때까지 나는 공포 문학에 큰 관심이 없었다. 에드거 앨런 포나 러브 크래프트가 주는 짜릿한 전율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는데, 스티븐 킹을 읽고 생각이 바뀌었다. 더욱 과감해지자.”(203-204쪽)
1991년 2월, 마침내 소설 『개미』를 출간하면서 작가로 데뷔했다. 압도적인 작품 세계와 상상력에 ‘천재 작가’라는 말이 쏟아졌지만, 그건 진실과 다른 것이라는 걸 그의 여정이 웅변하고 있었다. 어릴 때부터 개미를 관찰해왔고, 열여섯 살 때 소설을 구상했으며, 글쓰기 공부를 갱신하면서 무려 120번 이상 수정과 퇴고를 반복하며 12년간 잉태해온 책이었으니까.
우리는 매일 오전 파리 제16구의 클래식 카페 ‘보졸레 도퇴유’의 창가 테이블에서 노트북을 켜고 작업 중인 키가 크고 마른 베르베르를 볼 수 있을 것이다. 오전 7시 전후 일어나서 꿈을 기록하고 아침 체조를 한 뒤 간단하게 아침 식사를 하고 나선 그. 손님이 많지 않은 오전 8시30분쯤 들어와 낮 12시30분 정도까지 글을 쓴다. 카페가 봄비기 시작하면, 그도 점심을 먹으러 간다. 오전 글쓰기의 루틴을 위해서, 방한 행사 때조차 오전 일정을 비워달라고 요청한 그였다.
점심 식사를 한 뒤에는 ‘몰리토르 파리’ 호텔의 카페에서 오후 작업을 할 것이다. 주로 오전에 쓴 글이나 이미 쓴 글을 다시 읽어본다. 오후 3시부터 5시까지는 자료를 조사하거나 소설 이외의 작업을 한 뒤, 오후 5시부터 1시간 동안 유산소 운동을 하고 집으로 돌아온다.
그 외에도 그에 대한 소소하고 다채로운 것도 알 수 있다. 예를 들면, 꽃 알레르기가 있다거나, 사진 촬영을 즐긴다거나, 매주 일요일에는 밖에서 조깅을 한다거나, 좋아하는 음료는 녹차와 그린티 라테라거나.... 가히 베르베르에 대한 친절한 안내서이자, 그의 글쓰기 방법을 배울 수 있는 참고서라 하겠다.
“의심과 당혹감과 도저히 마침표를 못 찍을 것 같은 자신감의 결여는 창작 과정의 일부다. 위기에 봉착했을 때 작가가 할 수 있는 일은 단 한 가지, 포기하지 않고 새로 시작하는 마음으로 작품을 완성해 내는 것뿐이다. 독자들이 쉬지 않고 책장을 넘기다 마지막에 와우 하는 탄성과 함께 책을 덮게 할 강력한 엔진을 찾아내는 것뿐이다.”(467쪽)
김용출 선임기자 kimgija@segye.com, 사진=출판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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