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도의 숨은 명산 완주 연석산] 탐나는 암릉…숲 빽빽한 계곡은 하늘도 안 보여
완주군과 진안군의 경계에 위치한 연석산(928m)은 완주군의 최고봉이다. 한자를 보면 벼루 연硯과 돌 석石자를 쓰는데, 벼루를 만드는 돌이 많이 난다고 해서 주민들은 벼루돌산이라 부르기도 한다.
연석산은 기암괴석과 계곡, 조망, 명품소나무 등 볼거리가 많다. 약 2km에 달하는 연동계곡은 자연 그대로의 원시림 같은 비경을 간직하고 있다. 산신에게 치성을 드렸다는 산지당 주변과 마당바위, 베틀바위로 이어지는 암반계류는 계곡미의 절정을 보여 준다. 주변 운장산, 구봉산, 운암산 같은 쟁쟁한 명산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연석산은 여름철 피서지로서 인근 지역 주민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다.
원점회귀 산행도 가능하지만, 주변의 운장산(1,125.7m)과 구봉산(1,002m)을 연계하거나 약 250m 길이의 대슬랩이 있는 사달산(634.4m)과 연계산행도 할 수 있다. 나는 피서 산행이 목적이었기에 연석사 입구에서 출발해서 연동계곡으로 하산하는 코스를 선택했다.
가파른 오르막과 내리막, 등산 스틱 필수
초입부터 상당히 가파르다. 등산로가 거칠고 낙엽이 많아서 스틱이 꼭 필요하다. 40분 정도 땅바닥만 보고 올라간다. 앞선 사람은 머리가 땅바닥에 닿을 듯한 자세로 산에 오른다. 나는 그 모습이 재미있어 보여 훔쳐 웃었다.
명품 소나무 전망대에 올라서니 드디어 시야가 트인다. 앞으로 걸어야 할 연석산 주능선이 한눈에 들어온다. 아래쪽은 병풍처럼 깊은 골짜기와 숲으로 둘러진 첩첩산중이다. 완주 동상면은 우리나라 8대 오지 중 하나로 꼽힌다는데, 과연 그럴 만하다. 멀리 위봉산성이 있는 원등산, 종남산과 대둔산까지도 눈에 보인다.
5분 정도 더 오르자 수상한 동굴이 보인다. 소문에 의하면 동굴에는 박쥐가 산다고 하는데, 우리가 갔을 때는 외출을 한 모양인지 보이지 않는다. 동굴은 성인 2명이 비를 피하기 좋을 정도의 크기다. 동굴에 들어가 기념사진을 찍고 다시 정상으로 향한다.
박쥐 동굴 이후부터는 굵직굵직한 암벽들이 반겨준다. 등산로 옆 기암괴석 사이로 사진 찍기 좋은 곳들이 곳곳에 숨어 있다. 조금 더 진행하자 병풍바위로 이어지는 깎아지른 암릉들이 보인다. 이 바위들은 공룡들이 뛰어놀던 중생대 백악기에 생성된 퇴적암과 응회암인데, 바위표면이 미끄럽지 않고 울퉁불퉁해서 세미 클라이밍을 즐길 수도 있다. 바위를 보니 올라보고 싶어 몸이 근질거렸지만 이내 포기하고 돌아선다.
석벽같이 비탈진 암봉 옆으로 안전한 우회로를 따라 간다. 옆으로는 어른 키를 넘는 조릿대가 빽빽하게 자리하고 있다. 인삼에 버금 갈 정도의 약성을 가졌다는 조릿대. 하지만, 번식력이 강해 다른 식물의 생육에 피해를 주는 조릿대가 반갑지 않다. 허리까지 자세를 낮춰 빽빽한 조릿대 숲을 빠르게 지난다.
917봉에 도착한다. '원사동마을 3.6km' 이정표는 사달산으로 가는 갈림길이다. 여기부터 정상까지는 15분 정도 걸린다. 평지처럼 부드러운 길이 이어진다. 중봉에 있는 이정표에 누군가 '연석산 927m' 써놨지만, 무시하고 진행한다. 100m 더 가면 헬기장처럼 넓은 곳이 나오는데 여기가 정상이다. 아쉽게도 정상석은 보이지 않는다.
가슴이 확 트이는 조망이다. 덕유산과 마이산, 모악산까지 보인다. 동북쪽으로는 운장산 서봉이 시야를 막고 있다. 그래서 '혹시 여기가 정상이 아니라 운장산의 일부인가?'하는 착각이 들기도 한다.
초여름 비밀의 정원, 연동계곡
정상에서 연동마을까지는 3.7km를 내려간다. 정상에서 200m 아래에 있는 이정표는 연동계곡으로 가는 방향이 표시되어 있지 않다. 어디로 가야 하나 고민하던 순간, 일행이 "연동계곡은 걸어온 방향으로 쭉 가야 한다"고 일러준다. 우리는 가던 길 그대로 직진한다. 내려가는 길은 만만치 않다. 거칠고 심한 경사가 계속된다. 위험한 곳은 안전난간이 설치되어 있으나 잡석과 낙엽이 발목을 잡는다. 다치지 않기 위해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긴다.
잠시 후 집채만 한 바위들이 보인다. 거대한 바위들은 너덜처럼 엉겨 있다. 2km에 달하는 연동계곡의 시작이다. 물이 풍부한 계곡은 아니지만 하류로 내려갈수록 작은 폭포와 소沼들이 많아진다. 숲이 우거져 고개를 들어도 하늘이 보이지 않는다. 계곡을 따라 등산로가 나 있다. 졸졸 흐르는 물소리를 들으니 한층 시원해지는 기분이다.
성인 30명은 거뜬히 쉴 수 있는 마당바위가 나온다. 시원한 폭포를 감상할 수 있는 최고의 명당이다. 등산로에서 50m 들어간 산지당으로 간다. 연동계곡의 비밀 정원인 산지당은 꼭 들러야 할 곳이다. 거대한 암릉에 둘러싸인 폭포를 보고 일행들 모두 "와아~"하고 감탄한다. 바위를 타고 흘러내리는 폭포. 산새가 지저귀는 듯한 물소리를 듣고 있으니 산행의 피로가 녹아내린다.
연동마을로 내려가는 계곡 주변으로 키 큰 감나무들이 보인다. 일명 '왕의 곶감'이라고도 불리는 고종시 감나무다. 일행은 '고종시 곶감은 씨가 없어 먹기 편하고, 당도가 높아요!'라고 알려준다. 과거 고종황제의 진상품으로도 올렸다는데, 얼마나 맛있을까? 달달한 곶감을 한 입 베어무는 상상을 하며, 마른 침을 꿀꺽 삼킨다. 아쉽게도 곶감을 먹어보진 못했다. 고종시 곶감과의 만남은 다음으로 기약하고 산행의 시작점이었던 연동마을로 내려선다.
산행길잡이
연석사에서 출발하는 들머리를 찾으려면 주변을 잘 살펴야 한다. 공식적인 들머리는 연동마을 대형주차장에서 북서쪽 도로를 따라 300m 지점에 이정표가 있지만, 대부분 100m 지점에 있는 연석사 입구의 들머리를 이용한다. 이 길을 따를 경우 연석사 표지석에서 30m 올라가다가 밭 건너편 커다란 감나무를 이정표로 삼으면 된다. 참고로 연석사로 들어가면 연동계곡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유의해야 한다.
연석산주차장-연석사 입구-박쥐 동굴-병풍바위-연석산- 갈림길-연동계곡-주차장(8km 4시간)
연동마을-연석산-운장산-복두봉-곰직이산-명도봉-운일암반일암(19km 10시간)
신성마을-대슬랩-사달산-문필봉-사봉재-연석산삼거리-중봉-연석산-갈림길-마당바위-산지당-연동주차장(9.8km 5시간30분)
교통
전주에서 소양면으로 가는 820번 시내버스가 약 30분 간격으로 있다. 버스를 타고 소양면 소양농협 앞에 하차해 83번 공영제 마을버스로 갈아탄다. 연석산 들머리인 연동마을까지는 20분 거리다. 83번 버스는 하루 7번(08:25, 09:40, 13:15, 15:20, 1:15, 19:20, 21:20) 운행한다. 운임은 500원.
승용차로 갈 경우 내비게이션에 '연석산등산로주차장'을 입력하면 된다.
월간산 7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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