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생 페어의 '사상 최연소 월드컵 데뷔전' 통해 벨 감독이 말하고싶었던 건...[女월드컵 현장]
[스포츠조선 전영지 기자]대한민국이 국제축구연맹(FIFA) 2023 호주-뉴질랜드 여자월드컵 첫 경기에서 콜롬비아에 패한 25일, 세계 축구계에서 뜨거운 화제가 된 건 미국 출신 케이시 페어의 월드컵 데뷔전이었다.
페어는 25일(한국시각) 콜롬비아에 0-2로 뒤지던 후반 33분 최유리와 교체돼 그라운드를 밟았다. 16세26일의 월드컵. 1999년 나이지리아 대표 이페아니 치에진의 16세34일, 최연소 출전 기록을 24년 만에 8일 당겼다.
지난해 15세 이하 대표팀의 일원으로 호주 전지훈련에 참가했던 페어가 불과 1년 만에 성인 월드컵 무대를 밟는 드라마의 주인공이 됐다. 지난 4월 2024 AFC 여자 U-17 아시안컵 예선 3경기에서 5골을 몰아친 이 선수는 지난달 파주NFC 최종 소집훈련 명단에 처음으로 A대표팀에 이름을 올린 후 최종 엔트리까지 발탁되더니, A매치 데뷔전을 호주-뉴질랜드 월드컵 첫 경기에서 치르는 드라마를 썼다. 17세 이하, 20세 이하 월드컵을 경험하기도 전에 성인 월드컵을 먼저 경험하는, 파격적인 사건의 주인공이 됐다. 콜롬비아의 20세 이하 월드컵 8강을 이끌고, 여자 코파아메리카 최우수선수로 뽑힌 '콜롬비아의 검증된 자원', 이날 쐐기포로 첫 승을 이끈 2005년생 린다 카세이도(18)와는 전혀 다른 여정이다.
A매치 평가전에서 단 한번도 써보지 않은 선수를 월드컵에서 데뷔시키는 건 전세계적으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일이지만 호주 훈련장에선 이미 어느 정도 예견됐던 일이었다. 페어의 최종 엔트리 발탁 당시에도 벨 감독은 "팀을 도울 수 있는 즉시 전력감이라서 선택한 것이다. 실험하는 시간이 아니다. 케이시는 이번 월드컵에 승객으로 탑승하는 것이 아니다"라며 주전으로 기용할 뜻을 표했었다. 페어는 호주 입성 이후 줄곧 지소연, 조소현 등 주전조 언니들과 함께 발을 맞췄다. 빠르고 강한 콜롬비아를 상대로 피지컬과 스피드가 좋은 페어를 어떤 식으로든 활용할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었다. 호주 현지에선 월드컵 최연소 선수, 한국 어머니, 미국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한국 여자축구 사상 첫 혼혈 국가대표에 대한 국내 및 외신 기자들의 인터뷰 요청이 쇄도했지만 벨 감독은 페어를 극도로 아꼈다. 콜롬비아전 공식 기자회견에서 페어에 대한 질문이 계속 나오자 "어린 선수이기 때문에 미디어로부터 보호가 필요하다. 경기 관련 질문만 해달라"며 선을 그었다. 벨 감독이 페어를 숨기면 숨길수록 '뭔가 있다'는 생각을 들게 했다.
그리고 예상대로 벨 감독은 페어를 기용했다. 이겨야 사는 콜롬비아와의 1차전, 0-2로 밀리는 후반 33분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그라운드를 휘저으며 확실한 찬스를 만들어줄 '게임체인저'가 필요한 시점에서 A매치가 처음인 '비밀병기'페어를 투입했다. 2골을 넣고 기세등등한 콜롬비아를 상대로 16세 어린 선수가 나홀로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스피드와 활동량으로 상대를 압박하는 데 주력했다. 1986년생 박은선과 최전방 트윈타워로 높이를 활용한 득점을 노렸지만 이마저도 여의치 않았다.
이기고 있는 상황이 아닌 위기 상황에서 '16세 소녀의 월드컵 데뷔전'이라는 깜짝카드를 내민 벨 감독의 속내는 무엇일까. 콜롬비아전 직후 케이시의 데뷔전에 대한 외신 기자들의 질문이 쏟아졌다. 벨 감독은 "케이시 페어는 지난 6월 18일 최종소집 훈련 때부터 함께 했다. 그녀는 다른 어느 선수들 못지 않게 잘 훈련받았다"면서 중용의 이유를 밝혔다. "뿐만 아니라 이것은 하나의 시그널(signal, 신호)이기다. 그것은 바로 미래다. 케이시는 미래다. 우리에겐 피지컬을 갖춘 강하고 빠른 선수가 필요하다. 우리 모두가 배워야할 교훈이다"하고 말했다. "한국에선 더 강한 선수가 필요한데 나는 그런 선수를 찾고 있다. 케이시도 그런 선수들 중 한 명이고 우리 팀에 그런 에너지와 그런 파워를 주는 선수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월드컵은 실험하는 자리가 아니라 검증하는 자리'라는 상식에 비추어 이날 페어의 기용은 상식 밖이었다. 단 한번도 A매치에 나서지 않은 선수를 월드컵 무대에서 본다는 건 남자월드컵이었다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손흥민, 이강인 같은 재능들의 월드컵 데뷔도 하루아침에 이뤄지지 않았다.
WK리그 선수들이라면 누구나 열망하는 월드컵 무대, 올 시즌 '토종 공격수' 득점 1위 이정은(화천KSPO·18경기 8골), 여민지(경주한수원·17경기 8골)도 기회를 받지 못한 이 월드컵 무대에 16세 어린 선수를 내세운 벨 감독의 메시지는 분명하다. "한국 축구의 미래를 위해선 더 강한 선수가 필요하다"는 것.
그리고 WK리그를 향해서도 이번 월드컵이 보여준 여자축구의 세계적 기준에 합당한 '강도 높은 훈련'과 '더 강한 체력'을 가진 선수를 키워달라는 메시지로 읽힌다. 그는 수차례 대표팀 합류 후의 '반짝' 고강도 훈련이 아닌 평소 WK리그 클럽 레벨에서부터 고강도 훈련과 관리가 이뤄져야 하며, 빠른 템포와 치열한 경쟁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해왔다.
무엇보다 등록선수 1487명(2023년 4월 기준)의 여자축구의 열악한 저변 속에 케이시만큼 탁월한 신체 조건을 지닌 선수를 찾기란 쉽지 않다. 이번 대한민국 유니폼을 입고 여자월드컵에 데뷔, 더 이상 미국대표로는 뛸 수 없게 됐다. 한국 여자축구의 확실한 미래자원을 확보했다고 볼 수 있다. 25일 뉴질랜드를 상대로 첫승을 거둔 필리핀의 경우에도 미국-필리핀 이중국적 선수를 영입해 탁월한 피지컬로 경쟁력을 끌어올렸다.
팀이 어려운 상황에서 교체로 월드컵 무대를 밟게 된 페어는 "처음엔 부담도 되고 긴장도 됐지만 뛰다 보니 괜찮았다"면서 "한국 국가대표 유니폼을 입고 뛰게 돼 영광이다. 월드컵 무대라는 엄청난 기회룰 주신 데 감사드린다"고 고개 숙였다. "미래에 기회가 온다면 더 좋은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다"고 했다. 그녀는 "나의 배경인 엄마의 나라를 대표할 수 있다는 것은 내게 큰 의미다. 앞으로 더 열심히 최선을 다하겠다"는 각오를 전했다. 이제 한국대표팀은 30일 애들레이드에서 펼쳐질 모로코(72위)와의 조별예선 2차전에서 다시 첫 승에 도전한다.
시드니(호주)=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
Copyright © 스포츠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강유미, 줄담배 피우는데도 동안 "하루 세갑이 기본…매일 번따 당해"
- 이동욱 "장도연에게 조만간 고백하겠다…'너 정말로 예뻐'" ('살롱드립') [종합]
- '유승준의 그녀' 서희옥, 前 매니저 성희롱 폭로→"3억 배상" 패소판결
- '3년째 활동無' 주진모, 드디어 얼굴 공개…♥민혜연 꼭 안고 스킨십
- "샘 해밍턴, 24억원에 대저택 매입…윌벤져스 출연료로 마련" ('프리한닥터')
- 지드래곤, '조카 바보' 어깨 올라가는 온가족 지원사격...조카도 'PO…
- [SC이슈] "세상이 억까" 이홍기, 최민환 빠진 첫 공연서 '피의 쉴드…
- [SC이슈] 박수홍♥김다예, 백일해 논란 사과에도 갑론을박 "'슈돌'은 …
- "40대 안믿겨" 송혜교, 핑클 이진과 또 만났다..주름하나 없는 동안 …
- 쯔양 '전 남친 착취 폭로' 그후 겹경사 터졌다 "1000만 다이아 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