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밭춘추] 막걸리 예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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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살 때의 일이다.
아랫마을 가게에 가서 주전자에 막걸리를 사서 가져오는 일이다.
논에 쟁기질을 하거나, 모내기, 바심 등 일꾼들을 사서 일을 할 때마다 막걸리 심부름을 필자가 도맡아 하곤 했다.
'남들은 막걸리를 술이라지만 내게는 밥이나 마찬가지다 막걸리를 마시면 배가 불러지니 말이다. 막걸리는 술이 아니다 옥수수로 만드는 막걸리는 영양분이 많다 그러니 어찌 술이랴 나는 막걸리를 조금씩만 마시니 취한다는 걸 잘 모른다. 그저 배만 든든하고 기분만 좋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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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살 때의 일이다. 큰집에서 바심(추수)를 하기 위해 술을 빚었다. 배가 몹시 고픈 필자는 큰집 부엌으로 몰래 숨어 들어가 술지게미(술을 거르고 남은 찌꺼기)를 훔쳐 먹고는 술에 취해 큰집 마루에 큰 大 자로 누워 버렸다. 이를 보신 할머니께서 "어린 놈이 벌써부터 술을 훔쳐 먹어!, 도대체 커서 뭐가 되려고 그러냐!" 하시며 부지깽이로 두들겨 팼다. 필자는 잠들어 있다가 혼비백산하여 뒷산으로 비틀거리며 도망가 누웠다. 이 소식을 들은 어머니가 오셔서 "얼마나 배가 고팠으면 술지게미를 먹어! 불쌍한 내 새끼." 하시며 집으로 업어 갔다.
초등학교 5학년 무렵, 심부름을 할 나이가 되자 아버지는 필자에게 '막걸리 심부름'을 시키셨다. 아랫마을 가게에 가서 주전자에 막걸리를 사서 가져오는 일이다. 막걸리가 밖으로 새어 나오지 않도록 주전자 주둥이를 콩잎이나 쑥잎을 뜯어 손바닥으로 비빈 다음 주전자 주둥이를 꼭 막고는 아주 조심스럽게 집에까지 오면 되는 일이었다.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 산길에 접어들면 주전자 주둥이를 열어 정말 딱 한 모금 막걸리를 몰래 마시곤 했다. 막걸리를 마시면 온몸에 힘이 솟고 배고픔도 금세 사라졌다. 논에 쟁기질을 하거나, 모내기, 바심 등 일꾼들을 사서 일을 할 때마다 막걸리 심부름을 필자가 도맡아 하곤 했다. 그때마다 막걸리 한 모금씩 아무도 모르게 마시곤 했다. 나중에 커서 돈을 벌면 막걸리를 원 없이 마시는 것이 필자의 소원 중에 하나였던 것이다. 이런 연유로 필자는 지금도 막걸리를 즐겨 마신다.
생전에 막걸리를 유난히 좋아하셨던 시인은 천상병 시인이었다. 시인은 밥보다도 막걸리를 좋아하셨는데 생전에 시인은 하늘나라에 먼저 가서 목로주점을 차릴 테니 꼭 막걸리를 마시러 들려 달라 하시며 목로주점을 찾아오는 사람들에게는 막걸리는 공짜라고 하셨다. 천상병 시인의 시 '막걸리'를 소개해 본다.
'남들은 막걸리를 술이라지만 내게는 밥이나 마찬가지다 막걸리를 마시면 배가 불러지니 말이다. 막걸리는 술이 아니다 옥수수로 만드는 막걸리는 영양분이 많다 그러니 어찌 술이랴 나는 막걸리를 조금씩만 마시니 취한다는 걸 잘 모른다. 그저 배만 든든하고 기분만 좋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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