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업승계의 나라 일본?…인구감소·고령화에 '대량폐업 시대' 온다[딥포커스]
정부 M&A 지원 및 사업승계 매칭 업체 등장
(서울=뉴스1) 권진영 기자 = 1860년 교토 우지(宇治)에 문을 연 작은 찻집에서 일본을 대표하는 말차 디저트 기업으로 성장한 '츠지리'. 6대에 걸쳐 일본 전통 찻집(茶寮·사료) 문화를 지키고 있다.
단순히 말차 카페를 운영하는 수준을 넘어 PB상품을 내고 미스터 도넛, 인터컨티넨탈 호텔 등 관련 업계 기업들과도 협업하는 등 사업 저변을 넓히고 있다.
하지만 장인정신과 가업승계의 나라라고 불리는 일본에서도 모든 기업이 츠지리처럼 대성하는 것은 아니다.
경영자 고령화 및 인구 감소라는 시대적 과제 앞에 일본은 지금 '대량 폐업의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후계자도 인수자도 없다
"지금 문을 닫으면 이 모든 게 낭비될 거예요. 누군가 와서 이 공장을 활용하기를 기다릴 뿐이죠"
일본 지바에서 기계부품을 생산하는'J&A사쿠라 주식회사'의 사장 하시모토 기요시 씨(82)는 AFP에 이렇게 푸념했다.
40년 전 회사를 설립해 정년을 훌쩍 넘긴 나이지만 지금껏 그의 뒤를 잇겠다는 후계자는 없다. 나름 충성도 높은 고객을 확보한 탄탄한 공장이지만 인수하겠다는 이도 좀처럼 나타나지 않는 상황.
한때 수십 명의 직원으로 북적이던 공장을 지키는 이는 이제 파트타임 직원 2명과 하시모토 사장뿐이다.
2019년 일본 경제산업성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2025년까지 후계자 없이 70세를 넘긴 중소기업 경영인은 약 127만 명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전체 중소기업 경영인 245만 명 중 절반이다.
보고서는 소상공인의 고령화로 인해 최대 650만 개의 일자리가 사라지고 일본 경제 규모가 22조엔(약 198조 원)가량 줄어들 것이라고 경고했다.
파산 관련 조사업체 제국데이터뱅크는 베이비붐세대가 일본 남성의 평균 기대수명인 81세에 도달하는 2029년쯤에는 상황이 더욱 악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아베 시게노부 제국데이터뱅크 정보편집과장은 AFP에 일본이 "대량 폐업의 시대"에 직면할 정도로 문제가 심각하다며 "많은 근로자가 이로 인해 생계를 잃을 것이 분명하다"고 경고했다.
◇축소사회와 함께 침체하는 장인정신
대량 폐업의 시대가 다가오면서 일본의 모노즈쿠리 문화도 위협받고 있다.
'모노즈쿠리(ものづくり)'는 물건을 뜻하는 '모노'와 '만들기'를 뜻하는 '쓰쿠리'의 합성어로 '혼신의 힘을 쏟아 최상급 물건을 만드는 장인정신을 의미하는 말이다.
대를 물려 내려오는 모노즈쿠리에는 초밥집, 수공예품 가게 등이 포함되는데 정교한 기술을 오랜 시간에 걸쳐 전수받아야 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하지만 일본 중소기업청의 조사 결과 저출생 및 전통산업 기피 현상 등 바뀐 시대의 흐름으로 모노즈쿠리의 명맥은 끊기고 있다.
AFP는 일본의 장기적인 경기 침체로 불안정한 중소기업은 더 이상 젊은이들에게 매력적인 선택지가 아니라고 덧붙였다.
문화적인 이유도 있다. 일본에서는 가문에서 이어오던 사업을 남에게 매각하는 것을 수치로 여기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흑자 중소기업임에도 후계자를 찾지 못하면 폐업하고 마는 사례를 다수 남겼다.
다나카 가즈호(田中一穂) 일본정책금융공고 총재는 지지통신에 "영원히 존재하는 것(기업)이란 있을 수 없다. 다만 중소기업 중에는 흑자가 나는데도 휴·폐업 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그는 "시장에서 좋은 평가를 받아 흑자가 나는데 이런 기업의 상품이나 서비스가 사라지는 것은 (사회적) 손실이다"고 안타까워했다.
◇대량 폐업 위기의 日, 가업승계에서 사업승계로 일본의 인수·합병(M&A) 전문 기업 '바톤즈(BATONZ)'는 2018년 개업 당시 연간 기업 매칭 건수가 80건에 불과했지만 현재는 연간 1000건 이상 성사시키고 있다.
바톤즈의 가미세 유이치 사장은 AFP에 "여전히 (M&A가) 필요한 사람 중 극히 일부에게만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며 "줄폐업으로 일본의 사회적 문화적 구조를 구성하는 전문화된 장인정신과 독특한 서비스, 독창적인 가게 레시피를 잃게 될 것"이라고 걱정했다.
그는 상실한 장인정신이 "관광지로서의 일본이 갖는 매력에도 심각한 타격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바톤즈의 도움으로 최근 60대 여성이 운영하는 소규모 트럭 운송 회사를 인수한 미야지 히로시씨(50)는 "후계자가 있든 없든, 고유한 강점과 특별한 노하우, 인적 자원을 보유한 기업에는 항상 구매자가 있다"고 말했다.
야시오 그룹을 운영하는 미야지씨에게 사업을 넘긴 스즈키씨 역시 "슬픔보다는 안도감이 더 크다"고 답했다.
한편 일본 정부도 지원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중소기업청은 2023년 봄부터 '후계자 네트워크'를 발족해 사업승계를 위한 매칭을 주선하고 있다.
M&A 중개 수수료 절약을 돕기 위해 전문가 활용을 장려하고 모집을 통해 우수사례까지 선정해 발표하는 등 지속 가능한 사업을 위해 지원 규모를 확대하고 있다.
realkwon@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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