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해 민간 선박 공격할 수도”…러, ‘세계 식량’ 볼모 잡고 확전 위험까지 감수
EU, 러 흑해 차단에 “우크라 곡물 전량 우회수출 검토”
폴란드 등 5개국 협조 관건
확전 우려로 그 동안 자제해 왔던 나토 회원국 국경 지역에 대한 폭격까지 감행하는 등 우크라이나의 곡물 수출 차단에 집중하고 있는 러시아가 흑해에서 민간 선박을 겨냥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다. 유럽연합(EU)은 우크라이나 곡물을 흑해가 아닌 육로로 전량 우회수출 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영국 총리실은 25일(현지시간) 리시 수낵 총리가 이날 아침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통화하며 이처럼 말했다고 밝혔다. 총리실에 따르면 수낵 총리는 "러시아가 점점 더 흑해 상선을 겨냥하려고 하며, 영국은 동맹들과 함께 상황을 주의 깊게 모니터링하고 있다"고 말했다.
수낵 총리는 "최근 러시아의 오데사 공격으로 인한 피해에 경악했다"고 덧붙였다. 그는 "영국은 흑해곡물협정 복원을 위해 튀르키예와 긴밀히 협력하고 있으며, 러시아의 행위를 추가 규탄하기 위해 유엔 안보리 의장국으로서 역할을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바버라 우드워드 주유엔 영국 대사도 이날 영국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곡물 시설을 공격하는 걸 넘어서 흑해 민간 선박을 겨냥할 수 있다는 정보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고 로이터통신이 보도했다.
그는 수낵 총리가 이날 젤렌스키 대통령과 이 정보를 공유했다고 말했다. 그는 또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항구에 접근하는 경로에 수중 폭발 무기인 기뢰를 추가 설치했다는 정보도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이는 러시아가 흑해에서 민간 선박을 향한 공격을 정당화하고 우크라이나에 책임을 돌리기 위한 것이라는 미국의 평가에 동의한다"고 말했다.
이날 새벽 러시아가 나토 회원국인 루마니아와 우크라이나의 접경 지대인 다뉴브강 하구의 레니항 인근 곡물 창고를 공습하면서 사실상 다뉴브강을 통해 흑해로 가는 항로는 중단됐다. 이에 EU는 흑해로 수출되던 우크라이나산 곡물 전량을 EU 회원국 육로를 활용해 우회 수출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야누시 보이치에호프스키 EU 농업담당 집행위원은 이날 오후 벨기에 브뤼셀에서 27개국 농업장관회의를 마친 뒤 기자회견에서 "우리는 우크라이나 수출물량 거의 전부를 ‘연대 회랑’을 통해 수출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다.
EU 연대 회랑(Solidarity Lanes)은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우크라이나산 곡물 일부를 흑해 대신 우크라이나와 국경을 맞댄 동유럽 EU 회원국의 육로를 거쳐 발트해 항구를 통해 수출될 수 있도록 한 우회로다. 최근 러시아의 흑해곡물협정 일방적 파기로 현재로선 흑해로의 안정적 수출이 불가능해진 만큼, 이 우회로를 통한 수출을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는 의미다.
우크라이나산 곡물이 전쟁 이전 주로 아프리카 등 빈국으로 수출됐다는 점에서 글로벌 식량 안보를 위해 대안 마련이 시급하다고 EU는 판단하고 있다. EU 집행위는 러시아의 흑해곡물협정 파기 직전까지 우크라이나 전체 수출 물량의 60%가 연대 회랑을 통해 수출됐으며, 나머지 40%는 기존처럼 흑해로 수출됐다고 전했다. EU는 우크라이나산 곡물을 연대 회랑으로 우회 수출할 때 발생하는 추가 운송비를 예산으로 지원하는 방안도 논의할 방침이다.
연대 회랑을 통한 수출 시 운송비가 많이 들어 우크라이나산 곡물값은 비싸지게 된다. 이를 틈타 저렴한 가격에 러시아산 곡물을 시장에 내놓아 이득을 보려는 것이기 때문에 이를 차단하기 위해서는 지원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를 위해서는 폴란드, 슬로바키아, 헝가리, 루마니아, 불가리아 등 인근 동유럽 5개국의 협조가 필수다. 이에 따라 5개국은 자국 육로를 통한 우크라이나 곡물 수출 확대를 받아들이는 조건으로 각국 농업계 보호를 위한 사전 대책을 집행위에 더 강력하게 요구할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5개국은 이날 농업장관회의에서 오는 9월 15일부로 만료될 예정인 5개국으로의 ‘직접 수입 금지’ 조처를 연말까지 연장해달라고 요청했다고 EU는 전했다.
박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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