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 데 없어요" 이런 학생 다 모인다…'무료'공부방 17년 운영한 영웅

김지은 기자 2023. 7. 2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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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3일 김한철 구로경찰서장과 감사장을 받은 구로 주민 6명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오른쪽에서 세번째에 위치한 여성이 구로푸른학교 지역아동센터 교사 모희자씨다. /사진=구로경찰서


"아휴… 저보다 훌륭한 분들도 받은데 제가 이걸 받아도 될지 모르겠어요."

모희자씨(65)가 머리를 긁적이며 웃음을 지었다. 모씨는 17년간 구로푸른학교 지역아동센터에서 무료 공부방을 운영한 공로로 지난달 구로경찰서에서 '우리동네 숨은 영웅'으로 선정돼 감사장을 받았다. 기자는 지난 24일 서울 구로구 구로푸른학교 지역아동센터에서 모씨를 만났다.

지난 24일 서울 구로구 구로푸른학교 지역아동센터에 방문해보니 창문에는 아이들이 고사리 손으로 그린 그림이 붙어 있었다. /사진=김지은 기자


구로푸른학교는 2006년 지역 여성 단체인 '구로여성회'가 주축이 돼 세운 지역아동센터다. 이름은 학교이지만 실제 정규 교과 과정을 교육하지는 않는다. 학교를 마치고 갈 곳이 마땅치 않은 아이들이 찾아와 공부를 더 한다.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일종의 무료 공부방이다.

이 학교에는 아이들이 그린 형형색색 그림들이 창문에 붙어있었다. 여름 방학이 시작되면서 갈 곳이 마땅치 않은 초등학생 아이들은 이곳에 일찍 도착해 점심을 먹기도 했다.

모씨는 지난달 정년 퇴직을 했지만 자원봉사자로 이곳에 꾸준히 나와 아이들을 돌보고 있다. 그는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함께 해야 한다고 한다"며 "구로푸른학교는 일종의 작은 학교라고 보면 된다. 부모님이 모두 맞벌이라 아이가 집에 혼자있을 때 이곳에 와서 함께 뛰놀고 공부도 하고 사회성도 기를 수 있다"고 말했다.

구로푸른학교, 초1부터 중3까지 함께 하는 공간

서울 구로구 구로푸른학교 지역아동센터 모습. /사진=김지은 기자

2006년 초기에는 후원금을 받아 보증금 500만원에 50만원짜리 조그마한 월셋방에서 시작했다. 모씨는 "그 때는 밥도 제대로 못 먹고 동네를 떠돌던 아이들, PC방에서 생활하던 아이들이 찾아왔다"고 말했다.

이곳은 아침 9시30분부터 오후 8시까지 운영된다. 독서, 언어교육, 기타·피아노 수업, 공부방, 봉사활동, 체험학습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모두 무료다. 현재는 한부모가정, 다문화가정, 기초수급자 자녀 등 25명의 아이들이 주변 선생님이나 센터 소개를 받아 이곳에 다니고 있다. 나이대는 대체로 초등학교 1학년부터 중학교 3학년까지 다양하다.

이날도 구로푸른학교에는 앳된 얼굴의 베트남 꼬마가 찾아왔다. 모씨는 "엄마는 베트남 사람이고 아빠는 한국인"이라며 "아직 한국어가 미숙해서 1대 1 한글 교육을 해주고 있다. 학교 생활할 때 불편함이 없도록 예절 교육 등 사회성 연습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 구로구 구로푸른학교 지역아동센터 모습. /사진=김지은 기자


구로푸른학교에 찾아온 아이들은 보통 5년 이상 이곳에 다닌다. 모씨는 "아무래도 여기서 만들어지는 네트워크가 크다 보니까 초등학생 대 온 아이들이 중고등학생 때까지 다닌다"고 말했다.

모씨는 어두웠던 아이들이 점점 밝게 변할 때 큰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최근에는 초등학생 때부터 고등학생 때까지 이곳에 다닌 학생이 대학교에 입학해 찾아왔다고 했다. 그는 "이 아이 어머니가 지체장애였는데 처음엔 내성적이고 자신감도 없었다"며 "그런데 여기서 공부하고 생활하면서 전교 10등 안에 들더니 서울에 있는 대학도 갔다. '푸른학교가 나를 키워줬다' 이렇게 말하는데 너무 기특했다"고 말했다.

인덕션 2개로 25명 아이들 밥을 짓는 '지역아동센터'

서울 구로구 구로푸른학교 지역아동센터 모습. 좁은 공부방 안에 초등학생 10명이 들어가서 수업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다. 부엌도 공간이 좁아서 인덕션 두개로 아이들 밥을 짓고 있다. /사진=김지은 기자

모씨는 17년간 지역아동센터에서 일하면서 어려움도 많았다고 했다. 매번 열악한 재정 상황은 아이들에게도, 교사에게도 부담이 됐다. 현재 구로푸른학교는 보건복지부로부터 프로그램비 138만원을 지원 받고 있다. 하지만 이곳 월세만 143만원이다. 여기에 강사비, 활동지원비, 체험학습비, 교재비 등을 모두 합치면 통장은 항상 마이너스일 수밖에 없다.

모씨는 "선생님들 월급으로 월세를 충당할 정도로 상황이 심각한 적도 있었다"며 "지금은 지인들을 포섭해서 한 달에 1만원이라도 후원하도록 부탁한다. 한국장학재단, 롯데장학재단 등에 열심히 지원서를 넣어서 자원봉사자나 지원금 등도 받고 있다"고 말했다.

열악한 시설도 고민 중 하나다. 지금 입주한 곳도 이전 건물 주인이 보증금을 올린다고 해서 급하게 찾아온 곳이었다. 기업을 통해 보증금 4000만원은 지원 받았지만 그 외 도배, 인테리어, 이사 등은 모씨와 교사들이 직접 했다. 그는 "부엌도 워낙 좁아서 인덕션 2개로 25명 식사를 만든다"며 "아이들 공부방은 너무 좁아서 초등학생 10명도 못 들어간다. 아이들도 답답해서 계속 거실 밖으로 나오는데 그러다보면 수업이 제대로 이뤄지기 어렵다"고 말했다.

모씨는 계속해서 아이들을 위해 봉사하는 삶을 살고 싶다고 했다. 최근에는 경계성 지능장애 아이들을 위해 느린학습자 전문 교육을 배우고 싶다는 꿈도 생겼다. 그는 "지역아동센터은 사실 아이들에게 부모와 같다고 생각한다"며 "조금 느린 친구들도 서로 돕고 함께 나눌 수 있도록 돕고 싶다"고 말했다.

김지은 기자 running7@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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