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베르사최, 스트레이 키즈와 'K팝 도상학' 계보 만들다

이재훈 기자 2023. 7. 26. 05:47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JYP 퍼블리싱 작곡가
쓰리라차와 협업한 '신메뉴'·'매니악' 등 주목
"동갑내기 방찬, 음악적으로 통하는 부분 많아"
"스키즈, 처음부터 끝까지 능동적으로 작업할 수 있는 팀"
"K팝의 특징, '지루하지 않다'는 거"
[서울=뉴시스] 베르사최. 2023.07.26. (사진 = JYP엔터테인먼트 제공)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미국 빌보드 메인 앨범차트 '빌보드 200' 3연속 1위에 빛나는 글로벌 대세 K팝 그룹 '스트레이 키즈'(Stray Kids·스키즈)의 대표곡 '신메뉴'와 '매니악'.

K팝의 문법과 담론을 적절히 흡수하면서 작가 고유의 상상력을 가미해서 쓴 명곡들이다. '특이함이 특별함이 될 수 있다는 진리'를 K팝 신(scene)에 새삼 알려준 노래들이다.

곡에 확실한 주제 의식을 각인시킨 스트레이 키즈 그룹 내 프로듀싱 팀 '쓰리라차'(3RACHA, 방찬·창빈·한), 곡의 밑그림을 단단히 그린 프로듀서 겸 작곡가 베르사최(VERSACHOI·최승혁·26)의 협업이 빛을 발했다.

역시 빌보드 차트를 강타한 스트레이키즈의 최근 앨범인 정규 3집 '★★★★★(5-STAR)'(파이브스타)' 수록곡인 '위인전'과 '아이템'도 베르사최의 손길이 묻어나는 곡으로 명석함이 넘친다.

무엇보다 스트레이 키즈와 베르사최가 함께 빚어낸 요소들은 곡의 가청성(可聽性)을 높이는 데 쏠쏠히 기여하고, 이는 지루하지 않는 것이 특징인 K팝 도상학의 계보를 만들고 있다.

웅장하고 지루하지 않으면서도 실험을 거듭한 곡들을 들려준 러시아계 미국 작곡가 라흐마니노프부터 현재 미국 힙합 최전선에 있는 이트(yeat), 코치세(cochise)까지 한번에 아우르며 동시에 고유성을 갖는 게 베르사최의 힘이다. Z세대 작곡가의 재기발랄함과 실험성 그리고 그를 만나기 이전까지는 중장년 작곡가의 미덕이라고 믿었던 수용력·포용력까지 갖춘 베르사최는 누구보다 낯선 음악과 다른 사람의 의견을 잘 들어냈다.

이런 개성 강한 작곡가가 몸 담은 곳은 JYP 퍼블리싱. 자신의 인장이 박힌 음악을 하고 싶은 프로듀서, 작곡가들이 앞다퉈 지원서를 내는 곳이다. 최근 이곳에서 베르사최를 만났다. 웃을 때 양반탈의 눈을 꼭 빼닮은 눈매를 갖고 있는 그는 좋은 작곡가이기 전에 좋은 사람이었다. 다음은 그와 나눈 일문일답.

-베르사최라는 예명은 어떻게 짓게 된 건가요?

"처음에 음악 활동을 시작을 할 때는 '탈더최(taalthechoi)'를 사용했어요. 친형이 제가 웃을 때 '양반탈'을 닮았다며 '탈(taal)'을 제안했는데 괜찮은 거예요. 하하. 한국적인 분위기도 갖고 있어서 좋았죠. 구글에 taal을 검색하니까 필리핀 화산명이 나오길래 더최를 붙인 거죠. 이후에 K팝 쪽에서 활동을 하려고 하다 보니까, 새로운 이름이 필요했어요. K팝에 기억에 남는 작곡가분들 이름이 많잖아요. 신사동호랭이, 용감한형제처럼 대중이 들었을 때 한번에 기억할 수 있는 강렬한 무엇이 필요할 거 같았죠. 그래서 그 당시에 제가 좋아했지만 사기 힘들었던 브랜드랑, 제 성씨랑 합치면 재밌겠다는 생각이 들어 지금의 이름을 짓게 됐어요. 지금은 브랜드 취향이 바뀌기는 했습니다. 하하. 베르사최, 탈더최는 K팝 음악과 개인적인 음악을 하는 저의 음악적 자아를 분리하기도 해요."(베르사최가 베르사최라는 이름을 가장 먼저 쓰기 시작한 곡은 '2PM' 멤버 준케이의 솔로곡 '나의 20대'(Feat. 더블케이) 작곡·편곡에 참여하면서다.)

-음악을 어떻게 좋아하게 됐고, 업으로 삼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서울=뉴시스] 스트레이 키즈. 2023.06.02. (사진 = JYP엔터테인먼트 제공)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제가 초등학교 6학년 때 '일지매'(2008)라는 드라마를 보다 OST를 듣고 피아노를 치고 싶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어요. 피아노 선율이 너무 좋게 들렸거든요. 여러 피아노 연주를 찾아 듣다가 재즈 피아니스트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데, 어머니께서 '이왕 하는 거 클래식 음악을 전공 해보는 게 어떻겠니'라고 제안 주셔서 클래식 피아노를 연주하게 됐죠. 학교 입시를 위해 중학교 2학년 때부터 고등학교 2학년 때까지 하루에 12시간씩 피아노만 연주했어요."

-그러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전환점이 생긴 거네요?

"피아노 연습을 한 뒤 독서실에서 공부하고 새벽 2시에 집으로 가기 위해 밖으로 나왔는데 '왜 이렇게 살고 있을까'라는 생각이 갑자기 드는 거예요. '번아웃'이 왔던 거죠. 입시 준비를 관두고 연주도 공부도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6개월 동안 집 안에만 있었어요. 그러다 친형이 듣고 있던 힙합 음악에서 신선함을 느꼈죠. 클래식의 정해진 규칙, 만들어 놓은 걸 재현해야 하는 것에 대한 싫증이 있었나 봐요. 그런 상황에서 힙합처럼 제약 없이 음악을 만들 수 있다는 게 말이 안 되는 거 같으면서도 되게 멋있게 느껴진 거죠. 결국 고등학교 2학년 말 쯤에 음악 만드는 걸 배워야겠다고 결심했어요. 그 때 스승님을 소개 받아서 미디를 배우기 시작했고 전자음악에 빠지게 됐죠. 부모님이 대중음악을 하더라도 대학에 갔으면 하셔서 서울예대(전자음악과)를 목표로 했고, 그렇게 준비를 하다 보니까 더 재미가 생기더라고요. 음악을 만드는 거 뿐 아니라 음향적인 부분, 테크닉적인 부분에 대한 공부가 즐거웠어요."

-영향을 준 뮤지션들은 누가 있나요?

"입시 준비할 때는 (캐나다 출신 DJ 겸 프로듀서) 데드마우스를 진짜 좋아했어요. 10분 정도 되는 곡이 있는데 열여섯 마디 같은 루프로 계속 돌거든요. 보통 지루해야 하는데 전혀 지루하지 않아요. 그 이유를 생각해 봤을 때, 사운드가 정갈하게 잡혀 있기 때문이더라고요. 데드마우스처럼 사운드가 지루하지 않고 정돈이 잘 돼 있는 곡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했죠. 힙합 음악을 계속 좋아했어요. 21 새비지, 드레이크를 많이 들었어요. 현재 빠져 있는 아티스트는 이트(yeat)예요. 딥한 아티스트죠. 코치세(cochise) 노래도 요즘 많이 듣고 있어요. 제가 많이 공부한 신시사이저 계열의 악기를 많이 녹여낸 게 제 취향에 맞더라고요."

-작업에서 꼭 지키고자 하는 신념이 있나요?

"따로 없는데, 별로인 건 안 만들려고 노력해요."

-2016년 몽키즈 '느낌이 와'(Taalthechoi Remix)가 데뷔작입니다.

"고 2때 만난 스승님이 해롭(haerop) 프로듀서님이거든요. 몽키즈 밴드를 프로듀싱했는데 리믹스 트랙이 들어가면 좋겠다고 하셔서 제가 운 좋게 기회를 얻게 됐죠. 제가 뜻이 있다고 해서 앨범을 내기가 쉽지 않았던 상황인데, 좋은 기회였어요. 음원사이트에 제 크레디트가 올라갔다는 자체가 큰 전환점이었습니다."

[서울=뉴시스] 베르사최. 2023.07.26. (사진 = JYP엔터테인먼트 제공)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주변 사람들과 잘 인연을 만들어가시는 거 같아요.

"제가 사회성이 있지는 않아요. 친한 사람들도 많지 않고요. 다만 한 사람 한 사람 깊은 사이가 되는 건 있습니다.

-음악 작업도 협업이 많아지니까 그런 관계성이 큰 도움이 될 거 같아요. 그래서 스트레이 키즈의 쓰리라차와도 긴밀하게 계속 작업을 이어나갈 수 있는 거 같고요.

"스트레이키즈와 처음 작업한 건 4년 전이에요. 편곡(미니 4집 '클레 원 : 미로(Clé 1 : MIROH)' 수록곡 '믹스테이프#4(Mixtape#4)' 작업으로 함께 했죠. 조현우 형(JYP 퍼블리싱 A&R)이 찬(방찬)이를 소개 시켜주셨어요. 그렇게 처음 만나 얘기를 나눠 보니까 음악적으로 통하는 부분이 많았어요. 제가 편곡하거나 만든 음악을 좋아해줬어요. 나이도 동갑이라 자주 이야기를 나눴죠. 지금은 절친이기도 하고, 음악적 동료이기도 해요."

-스트레이 키즈는 자체 프로듀싱을 하는 팀인데, 그들과 마치 한팀처럼 작업할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인가요? 그리고 스트레이키즈와 작업은 어떤 시너지가 있습니까?

"나이대가 비슷하다는 걸 떠나 쓰리라차는 자신들이 무엇을 표현하고 싶은지 정확히 알고 있어 작업이 수월해요. 또 음악 작업을 하다 보면, 여러 사람이 함께 해 의견이 안 맞는 부분이 있기 마련인데 저희는 그런 적이 한번도 없었어요. 가고자 하는 방향이 서로 수긍이 되기 때문이에요. 서로 말하지 않아도 어디가 아쉬운 지 바로 짚을 수 있는…. 추구하는 방향, 스타일이 비슷한 거죠. 아울러 쓰리라차는 누군가가 색을 만들어 입혀주는 팀이 아니라 자신들이 색을 만들어서 입기 때문에 자연스러워요. 그렇게 만든 곡을 퍼포밍하니 무대 위에서도 당연히 자연스럽죠."

-추구하는 방향성이 같다는 건 어떤 지점을 가리키나요?

"음악적으로 어떤 느낌을 원하는지, 제가 좋아하는 음악 장르가 무엇인지 이미 친구들이 잘 알고 있거든요."

-평상시에도 음악적 대화를 많이 하나요?

[서울=뉴시스] 스트레이 키즈. 2023.06.02. (사진 = JYP엔터테인먼트 제공)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방찬이랑 종종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데, 음악 이야기를 많이 하지는 않아요. 일상 대화를 많이 하죠. 그래서 찬이가 평소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어떤 표현을 하고 싶은지 자연스럽게 알게 된 거 같아요. '이런 곡을 만들자'라며 일부러 콘셉트를 잡는 대신 자연스럽게 곡이 나오는 이유죠."

-스트레이 키즈와 작곡가님에게 동시에 전환점이 된 곡은 무엇인가요?

"'신메뉴(神메뉴)'(정규 1집 '고생(GO生)'의 타이틀곡)요. 제가 처음으로 스트레이 키즈 앨범의 타이틀곡을 작업한 곡이기도 했어요. 사실 처음엔 실감을 하지 못했는데 주변에서 좋은 말들을 많이 전해주셨고, 그래서 전환점이 됐다고 느끼게 됐죠."

-스트레이 키즈와 작곡가님의 협업은 Z세대 방식의 전형이기도 해요. 서로 인정하고 존중하는 걸 바탕 삼아 대등하게 작업한다고 해야 할까요. 요즘 Z세대 아티스트들의 협업 특징 중 하나는 동등성을 기반으로 하는 독립성이라고 생각하는데 스트레이 키즈와 작곡가님의 작업 방식이 딱 그래 보입니다. 인간적인 믿음에만 의지하는 게 아니라 실력을 믿어 더 프로 같다고 할까요?

"제일 중요한 건 멤버들이 뭘 하고 싶어하는지 아니까 거기에 맞는 옷을 만들 수 있고 색깔을 칠할 수 있는 거 같아요. 스트레이 키즈가 처음부터 끝까지 능동적으로 작업할 수 있는 팀이라는 게 참 매력적인 것 같아요."

-JYP 퍼블리싱은 대형 K팝 기획사 내 여러 회사들 중에서도 가장 창조적인 이미지가 강한 집단이에요. 이곳에 속해 있다는 건 어떤 장점이 있나요?

"음악 작업을 하다 보면 음악 외에도 신경 쓸 다른 지점이 생기거든요. 작곡가라고 해도 곡만 잘 쓰면 되는 게 아니고 대외적으로 신경 써야 하는 부분이 많죠. 그런데 JYP 퍼블리싱에선 곡을 만드는 환경에만 집중하게 해주세요. 행정적인 부분들은 알아서 확실하게 정리해주시죠. 그런 부분들이 제일 좋아요. 작곡가가 행정적인 일, 비지니스에 몰두하게 되면 본업에 신경 쓰는 물리적인 시간이 확실히 줄어들거든요. JYP 퍼블리싱에 입사하게 된 건 제가 속한 힙합 프로듀싱팀 '타이거서울(TIGERSEOUL)'(이해솔·BUSH·베르사최)가 연관이 있어요. 부시(BUSH) 형의 아는 지인이 JYP퍼블리싱 오디션이 있다는 걸 알려줬고, 저희는 경험이 부족해 기대 없이 지원했다가 운 좋게 좋은 결과가 나왔죠."

-K팝의 매력을 서서히 알아 가시다가 이제 K팝의 중심에 들어오시게 됐는데 K팝의 매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지루하지 않다'는 거요. K팝은 듣는 음악 뿐 아니라 보이는 음악이 됐잖아요. K팝과 다른 장르의 가창 큰 차이점인 거 같아요. 3, 4분 길이 안에 춤, 영상미 그리고 음악적인 변화도 많이 들어가 있죠. 마치 하나의 완결된 작품을 감상하는 느낌이죠."

[서울=뉴시스] 베르사최. 2023.07.26. (사진 = JYP엔터테인먼트 제공)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작곡가님도 음악을 만들 때 시각적인 걸 감안하시는 거죠?

"춤의 디테일을 생각한다기 보다 무대에서 어떤 느낌일지에 대해 생각해요. 무대에 대한 팬분들의 반응을 생각하죠. 대중음악이니까, 제가 들어 좋은 것보다 더 많은 분들이 좋아하실 만한 음악을 만드는 게 중요하죠."

-대중음악 작곡가로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소질이 있나요?

"대중음악 작곡가라면 의견 수렴을 잘할 필요가 있어요. 순수 음악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여러 제작팀이랑 함께 일해야 하는데 의견을 원활하게 수용하는 것도 덕목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일을 못하죠."

-음악 작업이 힘든 때도 있었나요?

"지금까지 그런 적은 없었어요. 다만 스케줄이 힘든 때는 있었어요. 하하. 2021년 스트레이 키즈가 엠넷 '킹덤'에 출연할 당시 스케줄이 빡빡했거든요. 정신적, 체력적으로 힘들 정도였죠. 다행히 스트레이 키즈가 우승해서 결과론적으로는 뿌듯했죠. 저희에게 꼭 필요했던 경험이기도 했어요. 분기점이 됐으니까 잘 된 거죠."

-작곡가로서 음악적 목표는 무엇인가요?

"목표를 가지고 음악 작업을 시작한 건 아니었어요. 지금 생각이 드는 건, 현재 대중음악 작곡가로 이름이 알려져 있는데 다양한 개성이 있는 고유한 음악가로 기억이 되면 좋겠어요. 노래를 들으면 '이건 베르사최 작곡이다'라고 바로 알 수 있을 정도의 개성을 살리고 싶어요. 저만의 개성으로 제 인장이 박힌 곡들을 만들고 싶어요. 전위적이고 실험적인 음악들은 아직은 취미로만 작업하고 있어요. 발매는 하지 않고 있지만 대중음악 틀에만 갇히지 않고 다양한 시도, 실험을 꾸준히 해나가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JYP 퍼블리싱은 뮤직랩이기도 하니까 그런 시도도 환영하며 적극 지원해주시죠."

☞공감언론 뉴시스 realpaper7@newsis.com

Copyright © 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