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권붕괴 부메랑… 김상곤표 ‘학생인권조례’ 대수술 [뉴스초점]
임태희 도교육감, 연내 개편 나서... 사실상 13년 만에 ‘폐지’ 수순
경기도교육청이 전국에서 가장 먼저 도입했던 김상곤 전 경기도교육감표 학생인권조례가 대대적인 수술대에 올랐다. 책임은 없고 권리만을 나열한 조례가 지금의 교권붕괴 주범으로 지목받으면서다. 전국 학생인권조례의 시발점이었던 도교육청은 학생인권조례를 가장 먼저 도마 위에 올린 채 대폭 변화를 예고했다.
25일 교육계에 따르면 학생인권조례는 진보성향의 교육감인 김 전 교육감이 선거 과정에서 공약 했던 사업 중 하나다. 김 전 교육감은 취임 이후인 2009년 7월30일 경기도학생인권조례를 만들기 위해 전 서울시교육감이던 곽노현 당시 방송대 교수를 위원장으로 ‘경기도학생인권자문위원회’를 꾸렸다.
또한 13명으로 구성된 자문위원부터 인권단체, 교원단체, 교육·학부모단체 관계자, 학생 등 수백여명이 모여 학생인권조례에 대해 논의하는 장을 열기도 했다.
그렇게 학생인권조례는 ‘ 대한민국헌법 제31조, 유엔 아동의 권리에 관한 협약, 교육기본법 제12조 및 제13조, 초·중등교육법 제18조의4에 근거해 학생의 인권이 학교교육과정에서 실현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및 자유와 권리를 보장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는 목적 조항을 시작으로 경기도의회의 문턱을 넘었다.
경기도학생인권조례는 그 목적 조항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 학생의 존엄과 가치 및 자유와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다.
세부적으로는 체벌이 금지됐다. 또한 복장이나 두발 검사 역시 금지시켰고, 강제로 야간 자율학습은 물론 보충수업도 시킬 수 없게 됐다. 소지품 검사는 학생의 동의를 반드시 받아야 했으며, 휴대전화의 경우 부분적으로만 허용해 과거 등교 이후 휴대전화를 제출했던 문화도 사라지게 됐다. 이러한 학생인권조례는 학칙 등 학교 내부에서 정한 교칙들보다 상위 법안인 만큼 조례안을 넘어서는 학칙들도 만들 수 없었다.
특히 조례가 통과될 당시 도내 일부 기숙사 학교를 비롯해 각종 현장에서 체벌이라는 이름으로 가장한 폭력들이 자행되고 있던 만큼 목적 자체를 부정하는 이는 없었다.
경기도학생인권조례의 제정 이후 광주와 서울, 전북, 충남 등 전국에서 연이어 학생인권조례를 만들었다. 현재는 6개 시도교육청이 학생인권조례를 두고 있다.
학생인권조례 도입 13년차를 맞으면서 긍정적인 효과를 기대했던 학생인권조례는 학생의 인권을 보호하자는 취지로 만들어진 조례가 오히려 학생의 인권'만' 보호하는, 교사의 권한을 박탈한 조례로 자리했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임태희 경기도교육감은 최근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학생인권조례의 대대적인 수술을 예고했다. 이미 취임 이후 학생인권조례의 연내 개편을 예고했던 임 교육감이 최근 연이어 발생한 교권침해 사건들로 동력을 얻은 것이다. 학생인권조례의 이름도 학생권리·책임조례로 바꾸기로 했다. 사실상 13년 만에 학생인권조례는 폐지 수순을 밟게 됐다.
■ 징계·생활지도권 박탈... 무력감에 빠진 교사들
경기도학생인권조례는 미국 뉴욕시의 학생권리장전(Student Bill of Right)을 참고해 만들어졌다. 그러나 학생인권조례의 첫 시작인 경기도학생인권조례와 학생권리장전 사이 가장 큰 차이점이 있다. 학생권리장전에는 있는 ‘학생의 책임(의무)’이 조례에는 빠졌다는 점이다. 전문가들은 지금이라도 학생인권조례에 학생의 책임을 강조한 조항을 담아 교권붕괴를 막고, 진정한 의미에서의 교육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25일 교육계에 따르면 학생인권조례의 모티브가 된 학생권리장전은 1947년 전문가들이 협의를 통해 만들어낸 것으로 1789년 제정된 미국의 수정헌법 10개조를 권리장전으로 부른 것에서 이름을 따 학생권리장전이라고 명명했다. ‘학생 권리와 책임 장전’으로 불리기도 하는 학생권리장전은 상호 존중의 정신을 강조하면서 학생의 책임 규정을 따로 두고 있다. 사상은 자유이나 외설·모욕적 표현을 삼가해야 하고, 책임을 위반하면 징계를 받을 수 있다고도 명시해 뒀다.
그러나 후발주자로 만들어진 경기도학생인권조례에는 ‘책임’이 빠졌다. ‘학생 자신의 권리’만을 강조할 뿐 어떤 책임 규정도 두지 않으면서 헌법에도 명시한 ‘권리와 의무’라는 기본적인 민주시민의 의식조차 담아내지 못한 반쪽짜리 조례였던 셈이다.
조례를 만들 당시부터 이 같은 지적은 꾸준히 있어 왔다. 학생들의 인권 보호 만큼 중요한 것이 자신의 행동에 책임질 수 있는 자세이며,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도록 할 안전장치였기 때문이다.
반쪽짜리로 출발한 학생인권조례의 부작용은 생각보다 컸다. 단 13년 만에 교육 현장이 무너졌다. 학생이 대놓고 잠을 자거나 교사의 수업을 방해해 다른 학생들에게 피해를 주더라도 제지할 길이 사라졌다. 잠을 자는 학생에게 교실 뒤편에 서있게 했다는 이유로 고소를 당하는 교사들이 비일비재했다.
교사들의 즉각적인 징계권과 생활지도권이 박탈당하면서 교사들의 무력감은 커졌다. 엇나가는 아이들을 지도할 근거가 사라진 채 교단에 선 교사들의 권한은 무너져 내렸다.
경기도교육청이 학생인권조례의 명칭을 ‘학생권리·책임조례’로 바꾸고 학생의 책임 조항을 대폭 추가하겠다고 하자 일각에서는 반대 목소리도 나오고 있지만, 전문가들은 적절한 조치라고 입을 모은다.
박남기 광주교육대학교 교수는 “조례 제정 초기부터 책임에 대한 내용이 빠져있다는 점이 문제로 지적됐었다”며 “지금이라도 학생들의 책임을 명시하는 방향으로의 개정은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권리만 강조하고 교육하는 것은 괴물을 키워내는 것과 같다”며 “(교육적 측면에서도)권리와 책임을 함께 가르치는 것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김경희 기자 gaeng2da@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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