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형원전 '2030년 실증' 속도 내지만... "아직은 그림의 떡"
한국, 속도전 가세... 해외서 러브콜도
"검증 안 돼... 아직 종이에만 있는 기술"
안전성·경제성 의문... '그림의 떡' 될라
원전 선진국들이 2030년 전후로 소형모듈원자로(SMR)를 실증하겠다며 개발 속도를 끌어올리고 있다. 빌 게이츠가 세운 미국 테라파워가 최근 자사의 핵심 설비가 있는 워싱턴주(州) 벨뷰시 에버렛 연구소를 처음으로 한국 언론에 공개하면서 업계의 홍보전도 본격화하는 모양새다.
탄소 감축 중요성이 커지는 시기에 SMR이야말로 차세대 주요 전력원이 될 수 있다고 원자력계는 강조한다. 한국도 올해 다시 SMR 개발을 시작한다. 그러나 세계 어디서도 실증된 적이 없는 데다 안전성과 경제성도 다져지기 전이라 장밋빛 미래를 그리기엔 섣부르다는 우려가 나온다.
"우리도 2031년 첫 건설 가능"
25일 원자력계에 따르면 가장 먼저 SMR 건설에 착수한 나라는 중국이다. 불과 3년 뒤인 2026년 SMR '링룽 원' 가동을 목표로 하고 있다. 2020년 세계 최초로 해상부유식 SMR을 상용화한 러시아는 2028년 육상 SMR 건설 목표를 내건 상태다. 민관이 협력 중인 미국은 뉴스케일파워와 테라파워가 각각 2029년 아이다호주, 2030년 와이오밍주에 SMR을 세운다는 계획이다.
한국의 목표는 2031년이다. 지난 10일 출범한혁신형 SMR(i-SMR) 기술개발사업단의 김한곤 단장은 "2025년까지 개발을 완료하고, 2028년쯤 인허가를 받을 것"이라며 "2031년이면 첫 건설이 가능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우리나라는 2012년 이미 일체형 소형 원자로 'SMART'를 개발해 표준설계인가를 받은 경험이 있기 때문에 속도를 낼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은 원전 설립 경험이 많아 해외의 '러브콜'도 이어지고 있다. 테라파워는 이번에 연구소를 공개하며 한국과 협력 의지를 강조했다. 뉴스케일파워는 GS에너지 등 우리 기업과 협력해 경북 울진에 SMR 단지를 짓겠다고 밝혔다.
"안전성 향상" VS "말하기 이르다"
SMR은 설비용량 30메가와트(MW) 이하의 소형 원자로를 공장에서 '찍어내듯' 제작하고 이를 모듈로 삼아 여러 개를 설치해 운영하는 방식이다. 멈추더라도 출력이 작아 외부 전력이나 냉각수 공급 등 없이 냉각이 가능해 방사성 물질 유출 같은 중대사고를 방지할 수 있다고 원자력계는 설명한다. 특히 냉각재로 물을 쓰지 않는 소듐 고속로, 용융염(고온에서 액체 상태로 존재하는 화합물) 원자로(MSR), 고온 가스로 같은 4세대(차세대) SMR은 안전성이 더욱 높다는 것이다.
이동형 한국원자력연구원 MSR 원천기술개발사업단 단장은 테라파워의 소듐 고속로에 대해 “소금을 구성하는 소듐을 액체 상태로 이용하기 때문에 끓는점이 높아 별도의 압력 조절이 필요 없어 구조를 단순화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규모가 작아 수요지 인근에 지을 수 있고, 모듈화하기 때문에 공기가 줄어드는 것도 SMR의 장점으로 꼽힌다.
이렇게 장점이 많은 원전이라면 진작 활발히 상용화됐어야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관련 기술이 나온 지 30여 년 지났는데 선진국들도 아직 실증 단계를 넘지 못한 데다 성공 가능성도 담보하기 어렵다. 김용수 한양대 원자력공학과 교수는 "SMR은 검증되기 전이라 공학적으로는 아직 종이상에만 있는 기술이나 다름없다"며 "안전성이 향상됐다고 말하기엔 이르다"고 지적했다.
한국원자력연구원은 SMART를 개발하고도 실증 모델을 짓지 못했고, 지금에야 캐나다 앨버타주에 수출을 검토하고 있다. 원자력연 관계자는 "현지 발전회사 등과 합작 회사를 만들기 위한 마케팅 단계"라고 말했다. i-SMR 사업단도 실증 목표 시기만 내놓았을 뿐 "건설 국가는 미정"이라고 했다. 국내에 지을 수 있을지 불확실하다는 의미다. i-SMR은 4세대 SMR과 달리 냉각재로 물을 사용하는 경수로형이라 기존 대형 원전과 원리 면에서 크게 다르지 않다.
"차라리 재생에너지에 더 투자를"
기존 원전과 규모와 원리 등이 다르기 때문에 SMR은 새로운 규제 체계가 필요하다. 안전성도 기존 원전과 다른 관점에서 철저히 따져봐야 한다. 하지만 아직 SMR 관련 규제 체계를 완비한 나라는 없다. 규제가 느슨하다고 알려진 중국과 러시아를 제외하면 기술 면에서 가장 앞선 미국마저 규제 체계 부재로 건설에 시간이 지체될 수 있다. 뉴스케일파워가 한국에 SMR을 짓겠다고는 밝혔지만, 이 역시 원자력안전위원회의 인허가 체계 마련이 우선이다. 원안위는 지난 4월 큰 틀에서 안전 규제 방향만을 공개한 상황으로, 구체적인 규제 기준 마련에는 시간이 오래 걸릴 전망이다.
경제성 확보도 난관이다. SMR은 비용 대비 뽑아낼 수 있는 전력이 적기 때문에 '모듈화'로 빠르게 많이 지어야 경제성을 갖출 수 있다. 박종운 동국대 원자력에너지시스템 공학과 교수는 "원전이 크기를 키운 것은 규모의 경제 때문이다. (SMR이) 모듈화를 통해 여러 개를 지을 수 있다고는 하지만 원전이다 보니 지역주민 수용으로 이어지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탄소중립을 위해 원전 비중은 현상 유지하고, 재생에너지 기술 개발에 투자해 최대한 많이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오지혜 기자 5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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