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朝鮮칼럼] 公論場의 조건
진영논리·이기심·국가주의 넘어 열린 시각, 타인에 대한 공감을
성숙한 공론장 구현 위해 수준 이하 새떼부터 걸러내야
한국 사회가 비틀대고 있다. 광화문광장을 마비시키는 과격 시위, 공영방송 수신료의 전격적이고도 실질적인 폐기,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를 둘러싼 국론 분열, 양평 고속도로 건설 계획의 백지화. 얼마든 사례를 더할 수 있는 이 문제들은 모두 한 방향의 병리 현상을 가리킨다. 민주적 공론 형성 과정, 이른바 공론장 기능의 파행이다.
그 난장(亂場) 양상을 언론학자 박승관은 다음과 같이 서술했다(2023, 1~2쪽 발췌 정리). “갈등, 분열, 혐오가 전면적으로 확산되고 극단화되고 있다. 이러한 갈등은 특히 정치 영역에서 총성 없는 내전 상태로 치닫고 있다. 사회 구성원들은 극단적 소통 단절과 상호 고립에 내몰리고 합리적 토론과 상호 조정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이는 국가 외부로부터의 침략보다도 더 위험한 내부 분열과 상호 총질, 국가 위기의 근원으로 작용하고 있다.”
7월 초부터 중순까지 전 언론중재위원회 위원장, 중견 언론인, 언론법 연구자들과 함께 공론 영역에서의 허위 사실 공표 및 명예훼손 판례들을 살피는 공부 모임을 가졌다. 표현 행위의 위법성을 가리는 법원의 판결로부터 공론장의 파행을 해결할 수 있는 지혜를 얻고자 함이었다.
지나친 단순화의 위험은 있지만, 판결은 일관되었다. 공직 선거 후보자가 TV 토론에서 한 거짓말부터 시사 프로그램의 허위 보도에 이르기까지 법원은 표현의 자유를 두껍게 옹호했다. 진실과 허위가 다투는 공론장에서 “진실의 공표가 제한될 위험”을 “허위 사실의 공표가 초래할 위험”보다 엄중하게 본 것이다. 그 결과 현시대 한국 사회에서 표현은 음란, 장기 매매, 문서 위조, 총기 거래, 도박, 가짜 약 광고 등 불법 정보(이러한 정보들은 또 얼마나 많은가)를 제외하면 사실상 무제한의 자유를 누린다.
공론장의 파행을 법원 탓으로 돌리려 함이 아니다. 표현이 극도로 옥죄였던 삼엄한 권위주의 시대에 청년기를 보낸 필자 입장에서 이처럼 표현의 자유를 옹호하는 법원의 태도는 내심 반갑기까지 하다. 하지만 공론장을 어지럽히는 무책임한 표현들이 국민을 분열시키고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문제에 대해 법원은 답을 주지 못하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사실 이 결론은 처음부터 예상된 것이었다. 밟히고 걸리는 게 미디어고, 개인의 사사로운 의견과 검증되지 않은 주장이 몇 단계 연결을 거쳐 순식간에 수천 수만의 사람들에게 확산되는 상황에서, 공론장의 파행을 바로잡는 과제는 이미 법의 손을 떠났다고 보아야 한다. 공론 형성 과정의 오작동은 누구의 잘잘못 내지 법적 책임을 따지기에 앞서, 우리 모두의 문제로 인식되어야 한다. 그때 비로소 우리는 이 문제에 바로 접근할 수 있다.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논란을 예로 들어보자. 15년 전 광우병 파동과 마찬가지로, 이 문제는 허위 사실 내지 이른바 가짜 뉴스를 바로잡으려는 과학적 사실 규명 노력 내지 정부의 홍보 활동 강화로 해결하기 어려운 우리 사회 전반의 미성숙에 뿌리를 두고 있다. 성찰적 평정, 열린 시각, 타인의 고통에 대한 공감, 이웃 국가에 대한 선린 의식이 아닌, 비이성적 흥분, 맹목적 진영 논리, 이기심, 편협한 국가주의가 빚어내는 불협화음이다. 이웃에 누가 살며, 아기가 태어났는지 사람이 죽었는지 하등 관심 없지만, 장애인 학교 건립은 그 부모들의 눈물겨운 호소에도 집값 떨어진다고 가로막는 우리 삶의 행태가 바뀌지 않는 한 해결이 요원한 과제다.
하지만 힘겹고 더디어도 우리 국민은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호우피해 실종자 수색과정에서 희생된 장병 부모의 절제된 슬픔이 그러했다. 문제는 정치권이다. 동일본 대지진 및 그에 따른 원전사고는 국경을 넘어선 국제사회 차원의 대참사였다. 일본이 그간 겪은 고통이 무엇이든, 우리가 오염수 방류 문제에 대해 국익을 앞세우는 건 불가피할 것이다. 하지만 국회의원이란 이들이 고통을 겪은 나라에 가서 항의 시위를 하고, 방한한 국제기구(IAEA)의 장을 욕보이고, 역으로 그 무해함을 입증한다고 어시장 수조의 물을 떠 마시는 데는 차마 할 말이 없다.
검열로부터 자유로운 공론장의 이념을 정립한 존 밀턴은 적었다. “고상하고 강한 국민이 잠에서 깨어나는 모습이 보입니다. (중략) 이와는 대조적으로 황혼의 어스름을 좋아하는 겁 많고 떼 지어 몰려다니는 새들은 독수리가 품은 생각에 대경실색하여 시기하듯 찍찍거리는 소리와 함께 날개를 푸드덕거리며 분파와 분열의 한 해를 예언하는 조짐을 보일 것입니다.”(아레오파지티카, 박상익 역, PP.141~142 발췌 정리).
400여 년 후의 한국 사회를 내다본 듯하다. 내년 총선에서 이 새 떼들을 걸러내는 것만으로 우리는 성숙한 공론장의 구현에 한층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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