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대입 특혜, 인종은 안되고 부자는 된다?
미국 대입 전형의 소수 인종 우대 정책인 ‘어퍼머티브 액션(Affirmative Action)’에 내려진 위헌 판결의 후폭풍이 거세다. 소수 인종 우대 폐지를 입시뿐 아니라 장학금 등으로 확대하려는 움직임에 맞서, 주로 백인 학생들이 입학 혜택을 받아온 ‘레거시(legacy·동문 자녀 우대)’ 정책을 폐지하라는 요구가 커지고 있다. 교육의 공정성과 기회 창출, 그리고 미국 사회를 누가 어떻게 이끌어갈 것인가를 둘러싼 보수·진보 진영 간 이념 전쟁으로 비화하는 양상이다.
24일(현지 시각) 미국 학계에서 ‘최상위 부유층일수록 명문대 합격률이 높다’는 연구 결과가 나와 여론이 들끓고 있다. 하버드대에서 불평등을 연구하는 경제학자 모임인 ‘오퍼튜니티 인사이트’는 1999~2015년 아이비리그(북동부 8개 명문사립대)와 스탠퍼드·매사추세츠공대(MIT)·듀크·시카고대 등 12개 명문대 지원자 50만여 명의 부모 소득 수준과 합격률의 상관 관계를 전수 조사했다. 분석 결과 대학입학자격시험인 SAT 점수가 같을 경우, 연 소득 상위 1%(약 61만달러·7억8000만원) 부모를 둔 지원자는 그 이하의 수험생보다 합격률이 34%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초부유층이라 할 수 있는 상위 0.1%(약 300만달러·40억원) 가정 출신 수험생의 명문대 합격률은 2.2배 높았고, 부모가 해당 학교를 졸업한 동문 자녀일 경우 합격률은 8배까지 높아졌다. 결과적으로 명문 12개 대학 재학생 6명 중 1명은 상위 1% 가정 출신인 것으로 집계됐다. 미국 상위 1% 이상 계층의 96%는 백인이다.
부잣집 자식일수록 좋은 교육을 많이 받고 입시에도 유리할 것이란 인식은 미국에서도 일반적이지만, 시험 성적이 같은데도 부유층 자녀가 더 쉽게 합격한다는 사실이 광범위한 데이터로 실증된 건 처음이다. 뉴욕타임스(NYT)는 “명문 사립대가 부와 학벌, 기회의 대물림을 영속화하는 장(場)임을 보여주는 연구”라고 했다. 특히 미 명문대들이 100여 년간 도입해온 동문 자녀 우대 정책, 즉 레거시 입학 전형을 정조준했다는 점에서 파장이 일고 있다. 레거시 제도는 동문 자녀를 대(代)이어 입학시킬 경우 동문 사회가 커지고 기부금도 더 많이 확충할 수 있다는 이유로 명문대들이 선호해왔는데, 그 수혜자는 백인 부유층이라 ‘백인(부자)들의 어퍼머티브 액션’으로 불려왔다.
미국에선 신입생 선발권이 대학의 자율에 맡겨져 있어 기여 입학이나 레거시 전형, 어퍼머티브 액션 등 성적(成績) 외의 요소를 입시에 반영하는 여러 관행이 위법이 아니었다. 대학들은 한쪽에선 백인 부유층에게서 거액의 기부금을 받고, 다른 한쪽에선 소수인종 우대와 장학금 수여로 ‘경영과 윤리의 균형’을 동시에 맞추는 방식을 택해왔다. 그런데 이번에 레거시 제도가 표적이 된 것은 법원이 소수 인종 우대에만 메스를 들이댄 것과 관련 있다.
보수 우위의 연방대법원은 지난달 하버드대·노스캐롤라이나대의 어퍼머티브 액션에 대해 위헌 판결을 내렸다. “흑인과 히스패닉, 아메리카 원주민 등을 위한 정책으로, (성적이 우수한) 백인과 아시아계 지원자를 역차별했다”는 이유다. 1961년 사회경제적 약자를 우대하는 어퍼머티브 액션이 제도화된 지 60여 년 만에 폐기된 것이다. 그러자 즉각 “능력 중심의 공정한 경쟁이 목적이라면, 레거시 전형은 왜 그냥 두느냐”는 반발이 진보 진영을 중심으로 일었다. 복마전 같던 미 대입의 ‘판도라의 상자’가 한꺼번에 열린 셈이다.
지난 6일 미주리주와 켄터키주 등은 주내 공립대 등에 어퍼머티브 액션 입학 전형을 금지함은 물론, 장학금 수여 시에도 인종 고려를 중단할 것을 요구했다. 반면 노스캐롤라이나대는 내년부터 연 소득 8만달러 미만 가정의 학생들에게 무료 등록금을 제공하겠다며, 사실상 어퍼머티브 액션을 유지하는 조치를 내놨다. 다른 주 공립대학 등에서도 “인종과 계층 다양성을 유지하는 것 자체가 학문적·사회적 의미가 있다”며 어퍼머티브 액션을 어떤 식으로든 유지하겠다는 선언이 이어지고 있다.
미 언론들은 어퍼머티브 액션 위헌 판결로 흑인들의 명문대 학부 입학이 감소하고, 워싱턴 DC의 하워드대 같은 지역별 흑인 전용 대학 경쟁률이 높아질 것이라고 전망한다. 일각에선 유치원과 초·중·고교에서부터 인종별로 교육기관이 나눠져, 흑인 민권운동사 이전과 같은 ‘인종 분리 사회’로 회귀할 것이란 우려까지 나온다.
흑인·히스패닉의 의학·법학 전문대학원 진학, 고소득 전문직 진출도 연쇄적으로 타격받을 수 있다는 전망이다. 일부 기업에선 흑인이나 여성 등 소수자를 다양성을 명분으로 입사·승진에서 우대했던 정책들을 폐지하거나 축소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파월 “금리 인하 서둘러야 할 신호 없어”
- Netflix Series Zombieverse: New Blood Coins ‘Vari-Drama’ Genre, Mixing Humor, High Stakes, and Zombie Action
- 결국 4만전자 전락한 삼전, 용산은 2년 전부터 알고 있었다
- 10만~20만원대로 실현한 문페이즈 드레스워치
- 연일 완판 행진 카이스트 탈모 샴푸, 단독 구성 특가
- 무쇠솥에 밥·찌개 끓인 후 한껏 올라간 집밥 맛
- 벨트 하나로 EMS·온열·진동 3중 관리, 허리 통증에 온 변화
- 1++ 구이용 한우, 1근(600g) 7만2000원 특가 공구
- 84세 펠로시, 2년 뒤 또 출마?… 선관위에 재선 서류 제출
- ‘해리스 응원’ 월가 황제 JP모건 회장... 트럼프 “내각서 배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