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에서] 초임만 떠맡는 ‘재난 대응 부서’
“현재 기피 부서 1순위가 안전 관련 부서다. 주말 출근, 새벽 출근은 일상. 몸 갈아서 일 잘해야 본전이고, 사고 나면 감방 간다.”
최근 한 지자체 공무원은 온라인 익명 게시판에 ‘오송 참사가 또 일어날 수밖에 없는 이유’란 제목의 글을 올리고는 이렇게 썼다. 이 공무원은 “공무원 2년만 해도 (재난·안전 부서) 탈출하려 애쓰고, 정 안 되면 그냥 휴직한다”며 “매번 신규 발령자가 그 자리에 앉곤 하는데, 다들 탈출할 생각밖에 없는 사람들뿐이라 (사고가 나면) 팀·과장에 물어봐도 어떻게 대처할 줄 모른다”고 했다. 재난 대비 업무는 진짜 전문가에게 맡겨도 어려운데 대졸 초임들이 떠맡으니 참사가 안 나려야 안 날 수 없다는 게 이 공무원 생각이다.
마치 ‘오송 참사’를 미리 내다본 듯이 지자체 현장 문제를 앞서 지적한 이도 있다. 참사 일주일 전쯤 국민참여 온라인 플랫폼 ‘온국민소통’엔 “(일선 지자체) 재난안전부서 대부분은 재난에 관심조차 없으며 재난법조차 읽어본 부서장이 드물다. (재난) 현장에 나가면 전화는 누가 받고, 보고서는 누가 쓰며, 상황실 운영은 누가 하느냐”는 글이 올라왔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7일 수해 현장을 방문한 자리에서 “공무원들은 집중호우가 올 때 사무실에 앉아만 있지 말고 현장에 나가 상황을 둘러보고 미리미리 대처하라”고 지시했다. 대통령 지시가 있으니 아마 한두 달은 지켜질지 모른다. 하지만 재난·안전부서 현장 공무원들은 금세 탈출 생각으로 돌아갈 게 명약관화하다. 한 지자체 공무원은 “사고 나기 전에 통제하면 ‘네가 뭔데’, 사고 나면 ‘제발 살려주세요’, 수습 끝나면 ‘사전 예방 못 한 네 탓’이란 분위기에 무슨 일을 하겠느냐”고 반문했다.
요즘 세종 관가에선 사후약방문(死後藥方文)이 한창이다. 각 부처 수장들이 연일 수해 현장을 찾아 “최선을 다해 지원하겠다”고 약속한다. 그러나 근본적인 문제 해결이 없으면 제2·제3의 ‘오송 참사’와 같은 피해 재발을 막기 어려워 보인다.
올해는 특히 수퍼 엘니뇨 여파로 장마철 폭우 뒤에도 폭염, 태풍 등 각종 자연재해가 연달아 터질 수 있다는 경고가 있다. 더구나 해마다 이상기후가 뉴노멀(New normal·새로운 표준)이 되면서 근본적인 재난 대응 시스템을 시급히 수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이어진다. 전문성 있는 재난대응 인력을 키우고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는 부서·인력 운영이 필수란 뜻이다. 일선 지자체에 재난 대응 전문직 인원을 확충하고, 재난방재 공무원들이 긍지를 갖고 일하도록 하는 근본 대책이 없으면 인재는 반복될 수밖에 없다.
“안전 우선의 나라를 만드는 모든 노력이 진정한 방재다.” 5년 전 한 부처 보도자료에 적혀 있는 당시 해당 부처 장관의 말이다. 반복도 지겹다. 이젠 행동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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