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자가 글쓰는 이유? 이해시키는 순간 짜릿하니까
인터뷰가 꼭 수학 문제를 푸는 것 같았다. 그의 책 ‘수학이 필요한 순간’(2018)을 읽을 때처럼 여러 번, 여러 각도로 물은 뒤에야 제대로 곱씹은 답변이 나왔다. 세계적 수학자로 꼽히는 김민형(60) 영국 에든버러대 수리과학 석좌교수(에든버러 국제 수학연구소장) 이야기. 영국 시각 오전 11시 그의 트레이드 마크인 곱슬곱슬한 머리에 다소 혈색 없는 얼굴로 화상 통화에 등장했는데, “수학에 대한 관심은 항상 반갑다”며 오랜 시간 고민하며 답했다.
서울대 개교 이래 첫 조기 졸업생(수학과)으로 예일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그는,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에서 유래된 산술대수 기하학의 고전적인 난제를 위상수학의 혁신적인 방법으로 해결해 세계적으로 이름을 알렸다. 미국 퍼듀대 교수, 영국 워릭대 석좌교수 등을 지냈고 2011년엔 한국인 최초로 영국 옥스퍼드대 수학과 정교수로 임용됐다. 현재 국내에선 서울고등과학원 석학교수를 맡고 있다.
그는 ‘수학의 세계’로 대중을 초대하려 노력하는 수학자로도 유명하다. ‘소수 공상’ ‘역사를 품은 수학, 수학을 품은 역사’ ‘아빠의 수학여행’ 등 2013년부터 지금까지 낸 대중서만 9권. 1년에 한 권씩 낸 셈으로, 여러 권이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문답을 통해 수학의 역사부터 수학을 통해 우주의 모양을 계산하는 이야기까지 차근차근 소개해 나가는 ‘수학이 필요한 순간’은 10만 부 넘게 팔리며 수학 서적으로서 큰 성공을 거뒀다. 방학에는 한국에 와 대중 강연도 한다.
연구 시간을 쪼개 이런 일에 나서는 이유로 “사람들이 몰랐던 걸 이해하는 순간이 그저 재미있어서”라고 했지만, 인터뷰가 끝날 즈음엔 세상 사람들에 대한 걱정 같은 것이 느껴졌다. “인공지능(AI), 여러 경제 지표, 지금 쓰고 있는 화상 통화 등 오늘날 모든 발전이 고등수학 없이는 불가능해요. 점점 수학을 모르면 막연한 두려움이 커지는 시대거든요. 하지만 이해하고 나면 생각보다 변화가 무섭지 않아요. 수학을 알아야 하는 이유예요. 제 두 아들이 어렸을 때도 이런 이야기를 하곤 했죠.” 수학자의 시선에서 코로나 사태도 대표적인 사례였다. 그는 “코로나 극복에 수학의 역할이 상당히 컸다”며 “의식하지 못하더라도 감염 확산 예측 등을 위한 수학적 모델링과 통계 분석, 백신과 치료제 개발 등에도 수학의 역할이 있었다”고 말했다.
그의 책 곳곳에는 세계 각국의 시인과 예술가, 철학에 대한 이야기가 등장한다. 인문학자 김우창 고려대 명예교수의 아들인 그는 유년 시절부터 예술과 철학과 가까웠다. 글쓰기도 여기에서 시작돼, “10대 때는 엉터리로 시, 소설 등을 썼다”고 했다. 대중서와 칼럼 등 인문적인 글쓰기를 지속하는 원동력이 됐다. 책을 집필할 때 원칙은 “독자를 과소평가하지 않는 것.” 그는 “오만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제 마음에 드는 다른 대중 과학서나 수학서가 별로 없다”며 “술술 읽히게, 적당히 이해할 수 있게 쓰려다 보니 부정확한 부분이 많은 것 같다”고 했다. “중간점을 찾는 것이 매우 어렵지만, 독자가 단번에 이해하기보다 여러 번 읽으면서 진정한 이해에 도달할 수 있도록 쓰는 게 제 원칙”이라고 말했다.
세계적인 수학자는 언제 책을 쓰고 여가 시간엔 뭘 할까. “아침, 점심, 저녁 먹는 시간은 있지만 연구하는 시간, 책 쓰는 시간, 쉬는 시간 구분은 없어요. 대부분 수학자들이 퇴근 개념이 약해 오전 6시 30분쯤 일어나 자정쯤 잘 때까지 연구의 연장선상에 있습니다.” 마감이 다가오는데 글이 안 써질 땐 우선 아무렇게나 쓰고 여러 번 고치고 다듬는다. 페이스북에 올려 친구들에게 비판해달라고 요청하는 게 도움이 된다고 했다. 학술적 글쓰기와 책을 쓰는 일이 서로 아이디어를 주기도 한다고.
그는 독자에게 이 말을 전했다. “마음에 드는 통계나 정보일수록 틀린 것을 찾으려 하세요. 비판 없이 받아들이면 ‘고장난 기계’가 되는 길입니다. 또, 세상에 극적인 데이터는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을 유념하면 숫자로 인해 쉽게 불안함에 휘둘리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의 답변을 듣다 보니 문과생 기자도 고등수학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기사 작성을 위해 교수님의 업적을 쉽게 설명해줄 수 있나요” 물었다. 화면 너머 그가 천진하게 웃으며 말했다. “설명을 할 수는 있는데, 칠판이 필요하거든요….”
[김민형이 몰두하는 것들]
‘인류를 위한 수학’ 프로젝트
최근 ‘인류를 위한 수학’(Mathematics for Humanity)이라는 이니셔티브를 이끌고 있다. 인류의 복지를 증진하고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드는 데 수학을 적용하는 연구자를 지원하고, 이들의 네트워크를 만드는 것이 목표. 테런스 타오 등 세계 유수의 수학자들이 위원회 멤버로 참여 중이다. 인류를 위해 수학으로 노력할 수 있다는 것을 우리나라 젊은 학자들에게도 널리 알리고 싶다.
다른 분야 수업 청강하고 소통하기
특별한 취미 생활은 없지만, 시간이 나면 대학 내 다른 분야 강연이나 연구 세미나에 참석한다. 역사, 음악 등 분야는 다양하다. 수업이 끝난 뒤 의견을 나누며 소통한다. 추상적인 ‘아름다움’보다는 ‘이해’를 추구한다. 다양한 방식으로 세상을 이해하고 싶다. 가장 좋아하는 작가는 체호프와 보르헤스. 카페라테와 산책도 즐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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