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입국자 강에 밀어넣어” 텍사스 수중장벽… 美정부 “불법” 소송

워싱턴=문병기 특파원 2023. 7. 26.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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텍사스 주지사 “불법 이민 침공 차단”… 300m 구간 일부엔 칼날 철조망
백악관 “잔인하고 비인간적” 비판
이민 문제 내년 대선 이슈 떠올라
멕시코 “철거해야”… 외교갈등 가능성
‘가시 철조망’ 장벽 설치 강행 11일 미국 텍사스주와 멕시코 국경에 있는 리오그란데강에서 미국으로 밀입국하려는 중남미 불법 이민자들이 대형 주황색 부표를 연결해 강바닥에 고정하는 텍사스주의 수중장벽 설치 작업을 지켜보고 있다. 부표 위로 가시가 달린 철조망이 보인다. 조 바이든 미 행정부의 반대에도 야당 공화당 소속인 그레그 애벗 주지사가 장벽 건설을 강행하고 있다. 이글패스=AP 뉴시스
미국과 멕시코 국경지대를 관통하는 리오그란데강. 현재 이곳에서는 직경 120cm 크기의 주황색 부표들을 연결해 강물에 부유식 장벽을 건설하는 작업이 한창이다. 이는 야당 공화당 소속인 그레그 애벗 텍사스 주지사(사진)가 지난달 이 강을 통한 불법 월경(越境)을 막겠다며 수중장벽 설치 계획을 발표한 데 따른 것이다. 이후 강폭이 좁아 중남미 사람들이 미 입국 통로로 즐겨 찾는 ‘이글패스’ 등 곳곳에 설치되고 있다.

미 법무부는 24일 “연방정부의 승인이 없는 장벽 설치는 불법”이라며 텍사스주에 소송을 제기했다. 애벗 주지사는 즉각 조 바이든 미 대통령에게 서한을 보내 “(불법 이민자의) ‘침공(invasion)’을 막겠다. 법정에서 대통령을 만나겠다”고 맞섰다. 대통령이 국가를 방어해야 할 의무를 위반했기에 자신이 대신 장벽을 설치했다고도 주장했다. 양측이 한 치의 양보 없는 대치를 벌이면서 내년 대선에서도 이 사안이 쟁점으로 떠오를 가능성이 높아졌다.

● 백악관 “비인간적” vs 애벗 “국가 방어”

바니타 굽타 미 법무부 부차관은 24일 “이 장벽은 공공안전에 위협을 가하고 인도주의적 우려를 불러일으키며 미 외교정책을 훼손할 위험이 있다”며 텍사스주를 ‘하천·항만법’ 위반으로 고소했다고 밝혔다. 커린 잔피에어 백악관 대변인 또한 같은 날 애벗 주지사가 “잔인하고 비인간적인 방법으로 모두를 위험에 빠뜨리고 있다”고 비판했다.

실제 이 장벽의 일부 구간에는 면도날 같은 가시가 달린 철조망이 부착됐다. 밀입국자뿐 아니라 국경 경비대원 또한 임무 수행 중 큰 부상을 당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CNN에 따르면 최근 텍사스주는 경비대원들에게 “불법 이민자를 강물에 다시 밀어 넣거나 이들에게 마실 물을 주지 말라”는 비인간적 명령도 내렸다.

텍사스주는 지난달 연방정부가 제공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구호기금 100만 달러(약 13억 원)를 사용해 이민자의 주요 월경 루트에 총 1000피트(약 300m)의 수중 장벽을 설치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이달 초부터 본격적인 건설에 돌입했다.

반면 바이든 행정부는 장벽 설치는 일개 주(州)의 권한을 넘어선 월권 행위라고 맞선다. 멕시코는 이 장벽이 양국의 공동수역에 설치됐고, 이로 인해 멕시코의 수자원이 타격을 입는다며 철거를 요구하고 있다. 이 사안이 외교 문제로 비화할 가능성도 있다.

● 대선 의제로 떠오른 ‘이민’

이민 문제는 내년 대선의 주요 의제로 꼽힌다. 하버드대와 여론조사회사 해리스폴의 24일 조사에 따르면 “이민이 대선에서 가장 중요한 의제”라는 응답자는 24%였다. 물가(34%), 경제(26%)에 이어 세 번째로 많았다.

4년 전에도 이런 비극 있었는데… 2019년 6월 멕시코 북동부 마타모로스의 리오그란데 강변에서 미국으로 밀입국하려다 익사한 채로 발견된 엘살바도르 부녀. 텍사스주와 인접한 이곳에서는 중남미 불법 이민자의 익사 사고가 끊이지 않는다. 마타모로스=AP 뉴시스
미국의소리(VOA) 방송에 따르면 이글패스 일대를 거쳐 미국에 오는 불법 이민자는 연 27만 명. 반(反)난민 정책으로 일관한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이민자를 강하게 단속했음에도 ‘기회의 땅’ 미국을 찾아 몰려드는 중남미 사람들의 행렬이 여전하다. 2019년 6월에는 이 강을 건너다가 익사한 엘살바도르 부녀의 사진이 공개돼 큰 충격을 안겼다.

보수 텃밭 텍사스에서 3선 주지사로 재직 중인 애벗 주지사는 강경한 반(反)난민 정책을 주도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바이든 행정부에서 이민 정책을 관장하는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의 관저에 불법 이민자를 태운 버스를 보내는 ‘퍼포먼스’도 선보였다. 불법 이민자로 고생하는 남부 주요 주의 현실을 도외시하고 이상론만 앞세운다는 것이다.

공화당 대선주자 또한 일제히 애벗 주지사를 지지했다. 텍사스 못지않게 불법 이민자가 많은 플로리다의 론 디샌티스 주지사는 지난달 말 이글패스를 찾아 “대통령이 되면 텍사스주의 불법 이민자 강제 추방을 허용할 것”이라고 했다. 버지니아, 오하이오 등 공화당 주지사가 있는 일부 주는 애벗 주지사의 협조 요청에 따라 텍사스에 주방위군도 파견했다.

워싱턴=문병기 특파원 weapp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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