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로] 익명에 숨어 특권 누리는 국회, 둘 중 하나는 포기하라

황대진 논설위원 2023. 7. 26.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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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대통령 겁내지 않는데 시대착오적 불체포특권
체포동의안 표결만이라도 선진국처럼 기명 투표해야
국회 본회의장. 2023.6.12/뉴스1

우리 법엔 국회의원을 ‘약자’ 취급하는 조항이 꽤 있다. 헌법의 불체포·면책특권은 불의(不義)한 권력자를 전제하고, 그로부터 의원을 보호하는 취지를 담고 있다. 군사정권을 겪은 탓이다. 국회법도 권력자에게 밉보일 수 있는 사안에 대해서는 익명, 즉 무기명 투표를 보장한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해 환부된 법률안 재투표, 대통령이 지명한 국무총리·대법원장 등 임명 동의안, 대통령과 국무위원 탄핵안 투표 등이 그렇다. 여기에 의원 체포동의안 표결까지 무기명 투표를 한다.

하지만 요즘 정치인들은 대통령을 무섭게 생각하지 않는다. 민주당 의원들은 윤석열 대통령에게 “이런 작자” “말 안 듣는 머슴” 등 막말을 서슴지 않는다. 취임하자마자 퇴진과 탄핵을 주장했다. 여당도 30대 당대표가 대통령과 공개적으로 맞서는 세상이다. 의원이 소신 투표를 한다고 불이익을 줄 수도, 받을 리도 없다.

무기명투표가 의원의 양심과 소신에 따른 투표를 돕는다는 주장도 있다. 예컨대 기명투표가 되면 민주당 의원이 이재명 대표 체포동의안에 찬성표를 던질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민주당 의원들로선 대통령보다 자신의 공천권을 쥔 이 대표가 더 무서울 것이다. 하지만 공천 불이익이 두려워 소신을 접는 의원이 있다면 그 또한 기록에 남겨야 한다. 평가는 유권자 몫이다.

국회법상 반드시 기명투표를 해야 하는 것도 있다. 헌법 개정안이다. 국민의 기본권과 나라의 권력 구조 같은 중요한 사안을 변경할 때 의원이 어떤 표결을 했는지 반드시 공개하고, 그것을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는 취지다. 국회의원은 국회에서 개인 자격으로 투표하는 것이 아니다. 국민은 자신이 뽑은 대표자가 어떤 표결을 했는지 알 권리가 있다. 그래야 다음 선거에서 의원에 대한 평가를 반영할 수 있다.

민주당 혁신위가 2호 혁신안으로 체포동의안 기명투표를 제안했다. 국회법만 바꾸면 되는 일이다. 민주당 의원들은 “비밀투표 원칙에 어긋난다”며 반발했다. 하지만 지금도 각종 법안 투표는 전부 기명으로 한다. 비밀투표는 국회 표결이 아니라 선거에 적용되는 원칙이다. 또 “불체포특권은 헌법에 보장된 권리인데, 이를 무력화하려는 시도 자체가 위헌”이라는 지적도 있다. 불체포특권은 개헌하기 전에는 포기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게 사실이다. 선진국도 대부분 불체포특권을 두고 있다. 하지만 실제 운용 방식은 차이가 크다. 우리 국회는 제헌 의회부터 현재까지 체포동의안 가결률이 24%에 불과하다. 독일은 93%, 일본은 80%다.

더 중요한 차이는 표결 방식이다. 미국 의회는 무기명 투표 제도 자체가 없다. 독일은 2021년 코로나 사태 때 정부 방역 마스크 조달과 관련해 뇌물을 수수한 여당 원내 부대표 체포동의안을 기명투표로 가결했다. 일본도 국회의장, 부의장 선거 외에는 모두 기명투표를 한다. 총리대신을 뽑을 때도 기명투표다.

국회의원은 약자가 아니다. ‘갑 중의 갑’이다. 연간 1억5000만원이 넘는 봉급을 받는다. 명절 휴가비만 830만원이다. 여기에 무료 KTX, 항공기 비즈니스석 등 186가지 특혜를 받는다고 한다. 그래 놓고 하는 일은 정쟁과 방탄, 입법 폭주와 꼼수뿐이다. 불체포특권은 뇌물 등 개인 비리 방탄에, 면책특권은 가짜 뉴스 생산에만 쓰인다. 돈 봉투를 받은 의원 20명이 준 의원 체포동의안 표결 때 어떤 표를 던졌는지조차 알 수가 없다. 우리도 선진국처럼 체포동의안은 기명투표를 해야 한다. 의원이라면 자신의 소신을 떳떳하게 밝히고, 유권자로부터 검증받아야 한다. 민주당 의원들만 결심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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