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혁기의 책상물림] 배움의 여유, 일의 여유
<천자문>은 중복 없는 한자로 각운과 대구도 맞추면서 의미를 살려 지은 4언고시다. 당연히 어려울 수밖에 없다. 하지만 내용이 좋고 암송에 유용해서 오랫동안 초학자용 교재로 사용되었다. 천자문은 많은 수량의 사물에 순서를 매기는 용도로 쓰이기도 했다. 한양도성에는 1번 천(天)에서 97번 조(弔)까지 구역의 순서가 천자문으로 적혀 있다. 십진법이 아닌 천진법인 셈인데, 그만큼 많은 이들이 외우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논어> 첫 구절에 나오는 학(學)은 천자문에서 몇 번째 글자일까? 77번째 구 “학우등사(學優登仕)”로 등장하니 305번이다. <논어>에 실린 자하(子夏)의 말 “벼슬살이에 여유가 있으면 배우고, 배움에 여유가 있으면 벼슬살이한다”에서 따온 구절이다. 벼슬살이에 매몰되지 말고 여유를 내서 배워야 벼슬살이도 더 잘할 수 있고, 배움에 여유가 생긴 뒤에 벼슬살이해야 배움을 널리 실천할 수 있다. 인격 수양으로서의 배움과 경세 실천으로서의 벼슬살이가 모양은 달라도 이치는 같다고 보았기 때문에 가능한 말이다.
천자문 306번 우(優)는 보기만 해도 기분 좋아지는 글자다. 요즘은 열(劣)의 상대자로 우등, 우월 등의 어휘에 주로 사용되지만 본뜻은 ‘넉넉하다’이다. 모든 것이 풍요롭고 여유로워서 조화와 관용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평안한 상태를 가리킨다. 결핍으로 인한 콤플렉스가 없으니 늘 부드럽고 따뜻하며 우아한 아름다움이 배어난다. 써먹기 위해 배우고 배운 그대로 써먹는 게 아니라, 그사이에 전제로 놓이는 마음의 여유, 우(優)를 생각한다.
옛사람이라고 해서 배움과 벼슬살이를 오가는 사이에 갈등과 조바심이 왜 없었겠는가마는, 마음 깊은 지향으로든 상투적 수사로든 간에 학우사우(學優仕優)의 여유를 떠올리며 권면하곤 했다. 오늘 우리의 배움은 인격 수양과 거리가 멀고 우리의 일 역시 경세 실천과는 대개 무관하긴 하다. 다만 미래를 준비하는 청년에서 백세시대를 대비하는 노년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배움과 일이 지나친 압박 아래 놓여 있다는 게 문제다. 나의 배움에, 나의 일에, 남겨둔 여유가 있는지 가끔은 돌아볼 일이다. 각박함 너머 우아한 아름다움을 꿈꾸며.
송혁기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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