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죽지않고 일할 권리 보장
우리나라 산업현장에서 매년 수십만 명이 산업재해로 부상을 당하고 수천 명이 목숨을 잃고 있다. 고용노동부의 산업재해 발생현황에 따르면 2022년도 발생한 재해자수는 13만348명이고, 사망자수는 2223명이다. 우리 삶의 터전인 부울경 지역에서도 지난 1년 동안 2만1303명이 산업재해를 당했고, 이 중 271명이 사망했다. 산업재해는 노동자의 건강과 생명을 앗아갈 뿐만 아니라 가족 전체의 불행으로 이어진다. 사회적으로도 엄청난 경제적 손실을 초래한다(2021년 산업재해 손실액 32조3000억 원).
산업재해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그 원인을 알아야만 효율적인 대책을 수립할 수 있다. 선행연구에 따르면 산업재해의 원인은 개인의 부주의보다는 산업안전관리시스템의 미비와 장시간노동 등 사회구조적 요인이 더 크게 영향을 미친다. 사업체 규모별 산업재해 현황을 살펴보면 상대적으로 안전관리시스템이 취약한 중소기업의 산업재해 발생률이 더 높다. 전체 재해자의 69.9%(9만1122명)가 50인 미만 소기업에서 발생하고 있다. 근로자수를 고려한 재해율(규모별 재해자수/근로자수)도 사업체 규모가 작을수록 높게 나타나고 있다(5인 미만 1.12%, 1-49인 0.76%, 1-299인 0.68%, 300인 이상 0.48%). 따라서 산업재해를 감소시키기 위해서는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중소기업에 대한 산재예방시스템과 감시·감독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정부의 정책과 제도는 현실과 정반대로 움직이고 있다. 2021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은 5명 미만 사업장에 대한 적용을 제외했으며, 50명 미만 사업체에 대해서는 3년간 법 적용을 유예했다.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2024년 1월부터 50명 미만 사업체의 법 적용이 예정된 상황에서 최근 경총과 중소기업중앙회 등 사용자단체에서 ‘준비 부족’을 이유로 또다시 법 적용 유예를 요구하고 있다는 점이다.
노동자의 생명과 직결되는 산재예방 정책은 자본의 이익보다 우선돼야 한다. 대한민국 헌법 제34조 6항에는 ‘국가는 재해를 예방하고 그 위험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기존 법과 제도만으로는 산업재해로부터 노동자의 건강을 보호할 수 없다는 사회적 합의에 의해 중대재해처벌법이 제정됐다. 이러한 입법취지를 무시하고 3년간의 준비기간을 주었음에도 준비가 부족하다는 사업주의 일방적인 요구를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재해율이 더 높은데도 단순히 규모와 영세성만을 이유로 법 적용을 배제하는 것은 헌법의 기본권인 노동자의 건강 보호의무에 결코 부합하지 않는다.
산업재해는 눈에 보이는 사고재해와 진폐증, 뇌심혈관질환 등 눈에 보이지 않는 질병재해로 나눠지는 데 최근에는 질병재해가 더 많이 발생한다. 2022년 고용노동부 자료에 따르면 산재사망자 2223명 중에서 사고사망자는 874명이고, 질병사망자는 1349명이다. 질병에 의한 사망자가 증가하는 원인은 다양하지만 장시간 노동도 중요한 요인이다. 한국노동연구원의 연구(김정우, 2021년)에 따르면, 주40시간 미만 노동자(0.101)보다 주52시간 이상 노동자(0.484)의 산업재해율이 5배 정도 높았으며, 뇌졸중 등 심혈관질환도 33~35% 정도 더 높은 것으로 분석됐다(ILO&WHO, 2021).
우리나라는 장시간노동 국가이자 산업재해 왕국이라는 불명예를 갖고 있다. 우리나라의 연간 노동시간은 2022년 기준 1901시간으로 OECD 회원국 중 4번째로 높고, 사망10만인율(근로자 10만 명당 사망자수)은 4.8명(2017~2021 5년 평균)으로 나타나 노동시간이 가장 긴 멕시코(7.9명) 등에 이어 네 번째로 높다.
모든 생명은 고귀하고 존중받아야 한다. 중소·영세사업장 노동자의 생명도 소중하고 존귀하다. 사업주의 입장만을 고려해 산업재해 위험성이 더 높은 중소사업장 노동자의 생명과 안전을 방기해서는 안 될 것이다. 오히려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준비가 부족한 중소·영세사업장에 대한 지도와 감독을 강화하고 산재예방시스템 구축을 지원할 필요가 있다. 중소기업 자체적으로 여력이 안된다면 공단별로 산업안전관리시스템을 구축할 필요가 있으며 중소·영세사업체가 많은 부산시에서도 적극적으로 나설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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