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해훈의 고전 속 이 문장] <291> 그림을 보고 시를 지었다는 고려 말 시인 이숭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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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산 저 산에 오솔길 나뉘어 있고(山北山南細路分·산북산남세로분)/ 송화는 비를 머금어 어지러이 떨어지네.
위 시를 읽으면 한 폭의 그림이 상상되지만, 시원한 우물물을 마신 것처럼 청량한 느낌이 들지 않는가? 이숭인의 스승 이색(李穡)은 "이 사람의 문장은 중국에서 구할지라도 많이 얻지 못할 것이다"고 칭찬하였다.
그만큼 이숭인은 시와 글이 모두 우아한 품격(典雅·전아)이 있었다.
시인은 이처럼 그림 바깥에서 그림 속 경치를 구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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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松花含雨落繽紛·송화함우락빈분
이 산 저 산에 오솔길 나뉘어 있고(山北山南細路分·산북산남세로분)/ 송화는 비를 머금어 어지러이 떨어지네.(松花含雨落繽紛·송화함우락빈분)/ 도인은 우물물 길어 초가로 돌아가고(道人汲井歸茅舍·도인급정귀모사)/ 한 줄기 푸르스름한 이내가 흰 구름 물들이네.(一帶靑煙染白雲·일대청연염백운)
위 시는 고려 말 문인 이숭인(李崇仁·1347~1392)의 시 ‘절집에 쓰다(題僧舍·제승사)’로, 그의 문집인 ‘도은집(陶隱集)’ 권3에 들어있다. 위 시를 읽으면 한 폭의 그림이 상상되지만, 시원한 우물물을 마신 것처럼 청량한 느낌이 들지 않는가? 이숭인의 스승 이색(李穡)은 “이 사람의 문장은 중국에서 구할지라도 많이 얻지 못할 것이다”고 칭찬하였다. 명나라 태조(太祖)도 이숭인이 찬한 표문(表文)을 보고 “표의 문사가 참으로 절실하다”고 평가했다고 한다. 그만큼 이숭인은 시와 글이 모두 우아한 품격(典雅·전아)이 있었다.
위 시는 그림을 보고 지었다고 한다. 그림 내용이 짐작된다. 저 멀리 높은 산이 솟아 있고, 그 골짜기를 끼고 오솔길이 꼬불꼬불 나 있다. 솔숲에는 송홧가루가 노랗게 떨어져 있다. 승려 한 사람이 물을 길어 길을 따라 올라가고, 그 위에 작은 초가가 있다. 그 뒤쪽으로 흰 구름이 흘러가는데, 푸르스름한 이내가 한 줄기 피어오른다.
그림이 채색화인지, 묵화(墨畵)인데 시인이 시에 색상을 입혔는지 알 수 없다. 시에 등장하는 소재는 모두 색상을 가졌다. 승려는 풍경의 일부이다. 산수화에 사람이 없으면 좀 밋밋한 느낌이다. 시인은 이처럼 그림 바깥에서 그림 속 경치를 구경한다.
필자도 선경(仙境)을 감상하였다. 그제 비 내리는 가운데 하동 악양의 선생님들과 점심을 먹은 후 넓은 악양 들판과 섬진강, 맞은편 광양의 긴 산 능선이 내려다보이는 찻집에 앉아 함께 차를 마셨다. 바깥 풍광이 맑다가 아열대지방 스콜처럼 비가 쏟아지니 산 강 들판이 모두 허연 안개에 가렸다. 비 그치니 거짓말처럼 다시 선명해졌다. 필자가 “풍경이 천하절경 같습니다”고 하자 모두 “무릉도원도 이처럼 아름답지는 않을 겁니다” 하고 호응하셨다. 이날 풍경은 이숭인이 본 그림보다도 더 순수한 서경(敍景)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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