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호기 칼럼] 실익 없는 아시아나 합병, ‘플랜B’가 필요하다
최근 TV 채널마다 해외여행 프로그램이 넘쳐난다. 한동안 해외에 나가지 못한 이들이 나라 밖 여행 계획을 짜도록 유혹한다. 한국관광공사 출입국 통계를 보면 올해 1~5월 해외 출국자는 일평균 5만4037명이다. 해외여행객이 가장 적었던 2021년 같은 기간(일평균 2484명)에 비해 20배 넘게 폭증했다. 코로나 팬데믹 전인 2019년(8만2861명) 수준에는 이르지 않아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국내 2위 항공사인 아시아나항공은 호황과 동떨어진 채 크고 작은 사고에 시달리고 있다. 며칠 전 미국 시애틀에서 인천으로 출발하려던 여객기에 결함이 발생해 출발이 약 19시간 지연됐다. 기내식에서 이물질이 나오고 비행 도중 비상구 문이 열리기도 했다. 조종사노동조합은 임금 인상을 요구하며 파업을 예고했다가 가까스로 잠정합의했다.
2020년 11월 대한항공과의 합병 발표 이후 아시아나는 수년째 경쟁력 약화에 시달리고 있다. 아시아나가 보유한 항공기는 2019년 85대에서 현재 78대로 줄어 최근 10년 새 가장 적다. 인력은 지난 3월 말 8248명으로 3년여 만에 1000명 가까이 회사를 떠났다. 2020년 1월 이후 새로 뽑은 인력은 없다. 국내 항공업계가 신규채용에 나서고 있어 아시아나에서는 인력이 더 빠져나갈 가능성이 크다.
아시아나가 갈수록 쪼그라드는 것은 당초 2021년 6월로 예정됐던 대한항공과의 합병이 지연된 탓이다. 기업결합심사를 남겨둔 유럽연합(EU)과 미국, 일본 경쟁당국이 독과점 우려를 들어 합병을 탐탁지 않게 여기고 있기 때문이다. EU는 8월 초 합병 승인 여부를 결정하기로 했다가 두 달 연기했다. 미국 법무부는 합병이 독과점 소지가 있다며 소송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은 공식 발표를 하지 않고 있다. 이들 국가 중 한 곳이라도 반대하면 합병은 무산된다.
부정적 반응은 예견된 것이었다. 한국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해 2월 대한항공·아시아나의 합병을 승인하면서 경쟁제한 우려가 큰 중복 노선의 슬롯(특정 시간대 공항을 이용할 수 있는 권리)과 운수권을 10년간 이전해야 한다는 단서를 달았다. 영국과 중국 경쟁당국도 슬롯 반납을 조건으로 합병을 승인했다. 아시아나가 보유한 런던 히스로공항 슬롯 7개는 영국 항공사에 모두 넘기기로 했다. 중국에도 슬롯 46개를 반납해야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핵심 자산인 슬롯을 축소하면 항공사의 경쟁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EU와 미국이 심사를 지연시키는 것은 대한항공과 아시아나가 보유한 슬롯을 받아내 자국 항공사에 배분하려는 속내 때문이다. 지난달 열린 ‘무엇을 위한 양대 항공사 합병인가’ 국회 토론회에서는 심사 과정에서 반납할 슬롯이 국제선 40개 노선 300개라는 추산 결과가 나왔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의 합병은 시너지 효과는 고사하고 마이너스가 될 공산이 커지고 있다. 특히 피인수 기업인 아시아나에는 온갖 불이익이 집중될 수 있다. 아시아나의 한 관계자는 “EU와 미국의 슬롯 반납 요구를 모두 받아들인다면 최악의 경우 아시아나는 국제선 알짜 노선에서 모두 철수하는 결과가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더 큰 우려는 인력 구조조정이다. 슬롯 반납에 따라 항공기가 10대만 줄어도 유휴인력 1000여명이 생긴다는 게 아시아나 노조의 주장이다.
3년 전 코로나 팬데믹 상황에서는 부채와 적자가 누적된 아시아나를 대한항공에 합치는 게 사실상 유일한 대안이었지만 지금은 달라졌다. 항공 수요가 살아났고 아시아나는 최근 2년 연속 영업이익 흑자 등 실적이 개선됐다. 지난해 1565억원 당기순이익을 내 5년 만에 흑자전환했고, 영업이익률도 13%로 상장사 평균(5.6%)을 웃돌았다. 올해 1분기에도 925억원 영업이익을 냈는데, 금융비용을 내느라 당기순손실을 기록했다. 아시아나에 자금을 빌려준 산업은행은 연 7% 안팎의 이율로 지난해 1400억원가량을 받아갔다.
상황이 달라진 만큼 새로운 해법을 찾아야 한다. 두 항공사의 합병은 대규모 슬롯 반납에 따라 국내 항공산업 약화와 소비자 편익 감소를 초래할 게 뻔하다. 아시아나 노동자 8000여명의 일자리를 지키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합병 발표 당시 산은은 인수 기업인 대한항공에까지 자금을 지원하는 무리수를 동원해 뒷말이 무성했다. 관련 부처 내부에서도 반발이 적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플랜B는 없다”(강석훈 산은 회장)고 엄포만 놓을 게 아니다. 합병 추진 과정에 잘못은 없었는지 꼼꼼히 살펴보고 지금이라도 바로잡는 게 최선이다.
안호기 사회경제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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