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 미국, 북한에 관심 갖게 할 책임
“북핵 문제에 관한 미국의 인식이 해결보다 관리로 기울고 있는 현실을 보게 될 겁니다.”
워싱턴에 오기 전 서울에서 만난 당국자와 전문가들이 공통적으로 건넨 말은 대체로 맞아떨어졌다. 지난 11개월 남짓 지켜본 결과 미국은 북한 문제에 대한 관심, 관심을 보일 의지, 여력 모두 바닥난 상태다. 미군 이병의 월북 파동으로 ‘노스 코리아’가 모처럼 외신들에 오르내리는 것은 돌발 사건의 여파다.
2022년 한 해 북한은 역대 가장 많은 39차례의 미사일 도발을 감행했다. 조 바이든 행정부는 그때마다 ‘복붙’ 수준의 규탄 성명을 발표하고, 외교적 해법을 강조하며 북한에 대한 ‘조건 없는 대화’ 제안을 상기했다. 하지만 북한의 응답을 무작정 기다린다는 것이 바이든 정부 대북 전략의 요체라면 버락 오바마 행정부 시기 ‘전략적 인내’보다도 후퇴한 것이다. 비록 실패로 돌아갔지만 적어도 그 시기 미국은 특사 파견, 북·미 고위급 회담 등을 성사시켰다. 북한이 선제 핵 사용 문턱을 낮춘 핵무력 법령을 채택한 이후 미국의 초점은 확장억제 강화로 완전히 쏠렸다. 북한의 위협을 억제하고 한국 내에서 커지는 독자 핵무장 지지 여론을 달래는 게 시급해진 탓이다. 한 외교소식통은 “미국은 북한이 작정하고 제 갈 길을 가겠다는데 별수 있냐, 당장 할 수 있는 억제력 확보에 주력하자는 생각을 하는 것 같다”고 전했다.
북한도 미국과의 협상에 관심이 없거나 우선순위로 여기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신형 무기를 포함한 북한의 거듭된 미사일 도발이 대미 협상력 제고를 위한 셈법과 전혀 무관할 리는 없다. 하지만 그보다는 김정은이 2021년 제시한 ‘국방력 발전 5개년 계획’ 달성을 위한 시간표에 따라 움직이고 있다. 북한은 연쇄 도발의 명분으로 한·미 확장억제 강화, 한·미·일 공조를 내세우고 있고, 당분간 미·중 경쟁,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조성된 전략적 환경에서 입지를 높이는 데 집중할 것으로 예상된다.
어차피 북·미가 당장 대화를 시작할 여건이 아닐 바에야 상황 악화 방지에 방점을 둔 ‘관리 모드’가 현실적인 접근이라고 주장할 수도 있다. 그러나 교착이 길어질수록 비핵화는 더 요원해지고, 한반도 핵 위기와 남북 간 우발적 충돌을 둘러싼 우려는 커지게 된다.
미국은 늘 한국에 대한 ‘철통 같은 안보 공약’을 강조하지만, 군사적 긴장 고조로 인한 불안을 감당하며 일상을 꾸려가야 하는 건 우리다. ‘워싱턴 선언’ 이후 확장억제 실효성을 높이기 위한 조치가 더욱 중요해졌지만, 동시에 미국이 북한과의 외교에 관심을 놓아버리지 않도록 한국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하는 까닭이다.
어느 미측 인사는 “미국은 그렇다치고 한국 정부도 북한에 별로 관심이 없어 보인다”고 말했다. 한국이 북한 문제에 신경을 쓰지 않는 것 같다는 뜻으로 한 말은 아니었다. 그보다는 미국의 대북 접근을 견인하거나 아니면 적어도 보완하려는 한국의 ‘인풋’이 부족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었다.
‘역대 최상’이라는 한·미관계에서 미국은 어느 때보다 한반도 문제에 관한 한국의 견해를 경청할 준비가 돼 있을 것이다. 그런데 정작 한국의 대북 구상은 좀체 보이지 않는다.
김유진 워싱턴 특파원 yj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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