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두현의 문화살롱] 그리스 탈레스와 조선 허생이 큰돈 번 사연
탈레스 "내년엔 올리브 풍년"
기름 짜는 착유기 '옵션 투자'
엄청난 돈 번 뒤엔 사회 환원
허생, 과일·말총 사서 10배 이득
나가사키 무역으로 거액 벌어
인플레 우려해 절반만 들여와
고두현 시인
고대 그리스 철학자인 탈레스는 가난했다. 유럽 철학의 시조이자 수학·지질·천문에 밝았지만 돈 버는 일에는 무관심했다. 별자리를 관찰하며 걷다가 우물에 빠지는 바람에 “하늘의 이치를 알려면서 제 발밑도 볼 줄 모르냐?”는 핀잔을 듣기도 했다. 툭하면 “철학이 밥 먹여 주냐?”는 조롱에 시달렸다.
참다못한 그는 팔을 걷어붙였다. 기원전 6세기에 벌써 일식을 예측할 정도로 천문학에 능한 그는 이듬해 올리브가 풍작일 것을 알고 한겨울에 기름 짜는 착유기(搾油機)를 미리 빌렸다. 정확하게는 ‘수확기에 일정 금액으로 빌릴 수 있는 권리’를 샀다. 착유기 주인들은 사용하지도 않고 밀쳐둔 기계로 돈을 벌 수 있으니 너도나도 응했다.
수확기가 되자 예상대로 풍작이었다. 올리브 농가들이 일제히 착유기를 빌리러 나섰다. 사용권을 가진 탈레스는 비싼 값에 착유기를 빌려줬다. 당장 기름을 짜야 하는 농가들은 탈레스가 제시한 가격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해서 그는 엄청난 돈을 벌었다. 파생금융 상품의 한 종류인 ‘옵션거래’에 성공한 최초의 사례다.
피라미드 높이를 그림자로 측량
그는 큰돈을 번 뒤 흔쾌히 사회에 환원했다. 이를 두고 아리스토텔레스는 “철학자들이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부자가 될 수 있으며, 그것은 단지 그들의 진지한 관심사가 아닐 뿐이라는 점을 알려주기 위해 직접 돈벌이하는 모습을 보여준 것”(<정치학(Politics)> 제1권)이라고 평했다. 탈레스의 진짜 관심사는 돈이 아니었다. 어떻게 하면 미래를 예견할 수 있는지, 그런 혜안을 통해 경쟁자를 어떻게 물리칠 수 있는지, 어떤 원리로 돈을 벌 수 있는지를 보여주고 싶어 했다.
그는 피라미드의 높이를 처음으로 계산하기도 했다. 누군가를 탑 옆에 세운 뒤 그의 키와 그림자 길이가 같아질 때를 기다렸고, 그림자 길이를 통해 높이를 알아냈다. 이 원리로 이집트 쿠푸 왕의 대피라미드 높이를 측정했다. 전문적인 토지 측량과 해발 고도 측정의 시초였다. 그는 이를 돈벌이가 아니라 수학과 기하학 연구에 활용했다. 그 결과 ‘이등변삼각형의 두 밑각 크기는 같다’는 등 ‘탈레스의 정리’를 완성했다.
"고작 1만냥에 나라가 흔들리니"
이와 비슷한 이야기의 주인공이 조선 후기 연암 박지원의 ‘허생전’에 나오는 허생이다. 궁핍 속에 글만 읽던 허생은 아내의 절절한 하소연을 듣다가 한양 갑부 변씨에게 거금 1만냥을 빌린다. 이 돈으로 안성시장의 과일과 제주도의 말총을 싹쓸이해 떼돈을 번다. 과일은 잔치와 제사에 꼭 필요하고, 말총은 망건과 갓을 만드는 데 필수 재료다.
이를 매점매석해 거액을 취한 그는 나라 안의 도적들을 무인도로 데려가 새 삶을 살게 한다. 그리고 일본 나가사키의 기근을 해결해 은 100만냥을 번다. 그런 다음 조선으로 돌아오며 50만냥을 바다에 버린다. 10만냥을 변씨에게 돌려주고 나머지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준다.
허생이 1만냥으로 시장을 뒤흔든 것은 당시 조선 경제를 쥐락펴락하던 물주(큰손)들의 상술을 비꼰 것이다. 떼돈을 벌어 기쁘지 않으냐는 시종의 말에 허생이 “1만냥만 가지면 팔도를 뒤흔들 수 있으니 심히 한탄스럽도다”라며 낙후된 조선의 경제 체계를 꼬집는 대목이 이를 대변한다.
나가사키는 쌀과 은을 대규모로 교환하던 무역 중심지였다. 거기에서 번 돈 중 절반을 바다에 버린 이유는 뭘까. 당시 조선의 통화량은 500만냥에 불과했다. 허생이 일본에서 번 100만냥은 전체 통화량의 5분의 1에 해당한다. 이를 그대로 들여오면 통화량이 갑자기 늘어 물가가 치솟는 인플레이션이 일어난다. 허생이 “100만냥은 우리나라에도 용납할 곳이 없거늘”이라고 말한 게 이 때문이다. 그는 조선 후기에 현대적인 경제 개념에 통달한 사람이었다.
"돈, 뜨겁게 사랑하고 차갑게…"
탈레스와 허생 모두 탁상공론만 일삼은 딸깍발이가 아니라 실용적인 지식인이었다. 그 실용성이 ‘돈도 안 되는’ 순수 학문에서 나왔다는 게 역설적이다. 탈레스는 세계를 구성하는 물질의 근원을 밝힌 최초의 사람으로서 그것을 ‘물(水)’이라고 했다. 또 ‘무엇이 가장 어려운가’라는 질문을 받고 ‘자기 자신을 아는 것’이라고 대답했다. ‘너 자신을 알라’는 소크라테스 명언의 원류가 바로 그였다. 그래서 아리스토텔레스는 탈레스를 “철학의 아버지”라고 불렀다.
탈레스의 주요 어록 여덟 개 중 부자에 관한 것이 두 개나 된다. “나쁜 방식으로 부자가 되지 말라.” “게으르지 말라. 부자가 되어도 게으르지 말라.” 뒤집어 생각하면 ‘좋은 방식으로 부자가 되고, 성실하게 부를 쌓으며, 부를 일군 뒤에도 근면하라’는 교훈이다.
오늘날 경제를 의미하는 영어 ‘이코노미(economy)’의 어원이 그리스어로 가족 생계와 관련된 일을 뜻하는 ‘오이코노미아(oikonomia)’라는 점을 감안하면 ‘최초 철학자’의 오랜 가르침이 새삼 신선하고도 웅숭깊게 다가온다.
돈에 관한 이런 사상의 원류는 현대의 새로운 투자 철학으로 이어진다. 그중 하나가 유럽의 전설적인 투자자 앙드레 코스톨라니의 명저 <돈, 뜨겁게 사랑하고 차갑게 다루어라>에 함축돼 있다. 그는 ‘돈’보다 ‘생각’을 중시한 덕분에 ‘투자 귀재’가 됐다. 그 비결이 철학과 미술사를 전공한 인문학적 감각에서 발원한 것이어서 더욱 흥미롭다.
종합해 보면 서양철학사의 첫 페이지를 장식한 탈레스와 조선 후기의 가난한 선비 허생, 현대적 투자 가치를 정립한 코스톨라니가 동일한 물줄기를 이루고 있다. 새로운 진실은 종종 몇 사람의 예감과 깨달음에서 시작되고, 몇 세기의 시간이 흐르면서 하나의 가치로 확립되며, 이윽고 세계를 뒤흔드는 발견과 진리로 빛난다는 것을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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