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동물원] “역시 별미로군!”…고래고기에 맛들인 ‘미식가 늑대’

정지섭 기자 2023. 7. 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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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고래 몸뚱이 입에 문 장면 포착
평소에는 덩치 큰 동물 협업사냥하지만, 상황에 따라 사체 파먹고, 바다동물 사냥도
돌고래, 해달, 수달에겐 새로운 천적이 나타난 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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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만 먹으면 마련할 수 있는 식재료가 아니라는 점에서 고래고기는 매혹적인 음식입니다. 모든 음식이 그렇듯 사람에 따라 호불호가 엇갈리긴 하지만요. 그 희소가치를 이 늑대 녀석도 알았나봅니다. 오늘의 노획물을 입에 문 표정이 의기양양하기 그지없습니다. 얼핏보면 조금 커다란 물고기인 것처럼 보이지만, 이 늑대가 물고 있는 것은 반토막난 어린 쥐돌고래의 몸뚱아리입니다. 먼저 사진부터 보실까요?

글레이셔 만 국립공원에서 늑대가 쥐돌고래의 반토막난 몸뚱이를 물고 있는 모습이 포착됐다. /Glacier Bay National Park and Preserve Facebook

이 사진이 찍힌 곳은 미국 알래스카주의 생태 관광 명소인 글레셔만 국립공원 일대입니다. 이 늑대는 이 전리품을 어떻게 포획했을까요? 물가 근처에서 헤엄치던 경험 일천한 어린 돌고래를 물 밖으로 끄집어낸 뒤 단박에 날카로운 송곳니로 두동강 낸 것일까요? 아니면 이미 반토막난채 죽어있는 몸뚱아리를 우연히 찾아낸 것일까요? 우리가 추측할 수 있는 건 이 늑대가 이날 별미 고래고기로 든든히 속을 채웠을 것이라는 점입니다.

미국 알래스카 주 글레이셔만 국립공원에서 쥐돌고래의 반토막난 몸뚱이를 물고 있는 늑대가 포착됐다. /Glacier Bay National Park and Preserve

늑대는 인간의 벗 댕댕이를 비롯해 여우, 재칼, 코요테, 너구리 등을 아우르는 갯과 패밀리의 원류이자 맏형입니다. 응큼함, 야성미, 길들여지지 않은 순수한 난폭... 이런 이미지로 포장돼 대중문화에서도 활발히 소비돼왔고요. 늑대를 늑대답게 해주는 대표적인 기질은 무엇일까요? 뭐니뭐니해도 적응력입니다. 주변 지형지물에 맞게 생활 패턴을 바꾸고, 오랜 식습관까지 변형하는 적응력이죠. 글래셔만 일대의 새로운 최고 포식자로 떠오른 늑대들의 생태가 그런 기질을 보여줍니다.

글레이셔 만 국립공원에서 연어를 입에 물고 있는 늑대가 포착됐다. /National Park Service. D. Morda

늑대 하면 떠오르는게 바로 무리짓는 사냥이죠. 말코손바닥사슴, 사향소, 와피티사슴, 순록 등 자신보다 훨씬 덩치가 큰 대형 초식동물을 무리를 지어 협업하며 끈질기게 쫓아가 결국에는 뒷다리를 물어서 거꾸러뜨리고 마는 늑대표 사냥 말입니다. 이 협업사냥은 때로는 곰까지 겨냥합니다. 이런 사냥은 험준한 고원, 울창한 침엽수림, 눈부신 설원처럼 내륙에 서식지에 최적화됐습니다. 그러나 내륙을 나와 바닷가에 터잡은 늑대들은 다른 스타일을 선택했습니다. 주변 환경에서 더 쉽게 잡을 수 있는 쪽으로 사냥감을 전환한 한 것이죠. 그렇게 타깃이 된게 바로 바다동물들입니다.

글레이셔 만 국립공원에서 늑대가 수달을 먹고 있는 장면이 포착됐다. /National Park Service

미 국립공원관리청이 파악한 글래셔만 지역 늑대들의 식단을 한번 볼까요? 물개, 물새, 연어, 게와 조개 등 갑각류와 연체동물.... 이 중에서 최근 과학자들의 시선을 잡아끄는 두 가지 먹잇감이 해달과 고래입니다. 족제비과 맹수 중에서 유일하게 바다에서 살고 있고, 상대적으로 귀여운 외모로 인기가 많은게 해달이죠. 늑대와 함께 식육목(개목)을 이루는 육식동물입니다. 한 집안 사돈의 팔촌뻘쯤 된달까요? 그러나 그런 촌수는 그저 인간의 시선으로 분류한 것일 뿐입니다. 해달 역시 늑대에게는 덩치는 좀 작지만 그런대로 배는 채워줄 반찬거리입니다. 해달 뿐 아니라 일부 지역에서는 늑대가 수달 사체를 물고 가는 장면도 포착됐습니다. 족제비과 전반의 천적으로 늑대가 군림할 수 있다는 단서이죠.

늑대는 먹잇감이 부족할 경우 사체도 먹는다. 늑대 무리가 뼈가 훤히 드러난 혹등고래의 사체를 먹고 있다. /National Park Service

늑대가 고래고기에 맛들였다는 점도 흥미로습니다. 종을 가리지도 않고, 날고기인지 썩어문드러진 사체인지도 가리지 않습니다. 죽어서 해안가로 밀려와 뼈가 훤히 드러나있는 혹등고래 사체에 늑대들이 떼로 몰려와 가능한한 많은 살점들을 발라먹는 장면도 포착이 됐거든요. 늑대 역시 살아남는게 우선인지라, 살아있는 먹잇감을 쉽게 구할 수 없는 엄혹한 계절이 되면 살점이 떨어져나간 앙상한 짐승 뼈다귀라도 달려들곤 하죠. 늑대 무리들이 죽은지 제법 오래 된 것으로 보이는 돌고래 사체에 달려들어 피와 살의 만찬을 벌이는 장면을 담은 동영상 잠시 보실까요?

내륙의 늑대에 비해 바닷가를 주무대로 삼은 늑대들의 활동상은 상대적으로 연구가 덜 된 편입니다. 이들의 흥미진진한 식습관은 조금씩 베일을 벗기고 있는 중입니다. 쥐나 물개·물범·해달 같은 육고기부터 연어 같은 생선, 그리고 뭇 사람들도 쉽게 먹지 못하는 고래고기까지 늑대의 식단에 포함돼있는 것입니다.

알래스카주 카트마이 국립공원에서 어린 해달을 물고 가는 늑대의 모습이 포착됐다. /National Park Service

다시 글의 처음에 소개해드렸던 고래입에 물려 반토막난 가련한 쥐돌고래의 이야기로 돌아가봅니다. 만일 이 쥐돌고래가 살아있는 상태에서 늑대에게 사냥당한 것이라면, 늑대 사냥터의 범위가 바닷가까지 확대되는 흐름으로 볼 수 있습니다. 늑대는 원래 헤엄을 잘 치는 동물입니다. 이동 중에 신변의 위협을 느끼면 강으로 뛰어들어 능숙하게 헤엄치면서 자신의 냄새를 없애는 신공을 발휘하기도 합니다. 이런 습성이 완벽한 적응력과, 무엇이든 잘 먹는 왕성한 먹성과 결합한다면, 늑대는 전대미문의 수륙양용괴수로 입지를 굳힐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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